비록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당구 여제'의 품격을 또 한번 보였다. 프로당구(PBA) 남녀부를 통틀어 최다 결승 진출 기록 행진을 이었고, 과감하고 파격적인 복장으로 실력뿐 아니라 외모까지 매력을 발산하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김가영(하나카드)은 18일 경북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여자부 결승에서 김민아(NH농협카드)에 아쉽게 우승컵을 내줬다. 풀 세트 접전 끝에 김민아가 4 대 3(5:11, 11:10, 6:11, 11:7, 10:11, 11:8, 9:7) 신승을 거뒀다.
개인 첫 개막전 정상을 노렸지만 김가영은 2년 만의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김가영은 역대 개막전에서 모두 4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PBA가 출범한 2019-20시즌과 다음 시즌, 지난 시즌 3위에 올랐고, 2021-2022시즌에는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와 결승에서 맞붙어 준우승했다.
김가영으로서는 너무도 아쉬운 결승이었다. 김가영은 1세트 연속 5득점 등을 앞세워 7이닝 만에 11 대5로 먼저 앞서갔다. 2세트를 내줬지만 3세트를 10이닝 만에 가져오며 다시 리드했다. 4세트도 김민아가 따냈지만 김가영은 5세트를 잡으며 우승에 한 걸음만을 남겼다.
하지만 김민아가 경기 후반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민아는 6세트 6 대 8로 뒤진 5이닝 3점을 뽑아내 분위기를 바꾸며 승부를 마지막 7세트로 몰고 갔다. 운명의 7세트 김가영은 8 대 7로 앞서 우승에 단 1점만을 남겨뒀으나 김민아가 12이닝에서 과감한 원 뱅크 샷으로 역전한 뒤 비껴치기로 대접전을 마무리했다. 김가영은 후배의 2번째 우승을 축하해줬다.
만약 김가영이 정상에 올랐다면 여자부 다승 단독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김가영은 임정숙(크라운해태), 스롱과 통산 5승으로 다승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김가영도 경기 후 "기분이 별로"라면서 "늘 지고 나면 씁쓸하다"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어 "시즌 준비를 많이 했지만 여러 모로 나오지 않았다"면서 "성적은 만족스럽지만 내용적으로 불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가영은 통산 10회 결승 진출의 위업을 이뤘다. 스롱이 8회, 남자부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가 7회로 김가영의 뒤를 잇고 있다. 그만큼 꾸준히 정상급 성적을 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가영은 지금까지 31번 투어에 출전해 16번이나 4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절반 이상의 확률이다.
승리를 거뒀지만 김민아도 김가영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김민아는 일단 "지금 제일 잘하고 있는 선수와 결승에서 붙어 좋았고 이겨서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전에는 김가영 선수와 스스로 비슷하다 여겼지만 공의 속도나 포지션 플레이 등 많은 것들이 뛰어나다"면서 "여차하면 4~5점 두드려 맞는다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민아는 또 "노련하고 자기 당구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노력하고 업그레이드한다"면서 "집중해서 차분하게 치는데 본받아야 하고 아직은 김가영 선수와 비교할 단계가 아니다"고 인정했다.
김민아의 평가처럼 김가영은 또 자신의 당구를 발전시킬 태세다. 김가영은 "이번 대회에서 좋았던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았던 부분도 있는데 업다운이 있어 안정적이지 못했다"면서 "김보미(NH농협카드)와 4강전 치르면서도 난조도 있어 위태했다"고 반성했다. 이어 포켓볼 여제로 군림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포켓볼은 체력 배분이 되는데 3쿠션은 안 된다"면서 "승수는 중요하지 않지만 3쿠션 선수로서 올라갈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아직 근처도 오지 못한 것 같아 화가 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번 대회 김가영은 파격적인 경기복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검은 색 민소매는 물론 호피 무늬 민소매 복장으로 여성미를 과시했다. 이에 대해 김가영은 "전혀 파격적이지 않았고 변화를 준 게 아니었다"면서 "그냥 예전에 입었던 것, 포켓볼 선수 때 입었던 것도 있었는데 수수하게 입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대한당구연맹(KBF) 여자 랭킹 1, 2위 한지은(에스와이), 장가연(휴온스) 등이 새롭게 가세했다. 한지은 조기에 탈락했지만 장가연은 임정숙과 강지은(SK렌터카) 등 챔피언 출신 강호들을 꺾고 깜짝 8강에 올랐다. 김민아, 김보미 등과 함께 여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적잖다.
이에 김가영은 "도전자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기존 선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내가 내 기량을 발휘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당구 여제다운 여유와 위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