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재난' 부르는 지하 폐기물 시설…갈등 숨기고 건강 위협

[폐기물처리시설 '지하화'가 답인가 ③]
2030년 직매립 금지법 시행…전국 폐기물 시설 '지하화'
주민 설득 용이한 '하남 유니온파크' 모델, 너도나도 벤치마킹
전문가들 지하화 시설은 '느린 재난'…외국은 지상화 추세
지하는 갈등 은폐의 공간…지자체, 지하화 재고해야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환경기초시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 전국환경노동조합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비타민D 결핍에 청력 재검만 5년째…화재 나면 다 죽어요"
② '위험천만' 지하로 간 폐기물 처리장…노동자 안전은 논외?
③ '느린 재난' 부르는 지하 폐기물 시설…갈등 숨기고 건강 위협
(끝)

2030년 비수도권 쓰레기 직매립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이 폐기물 처리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반발이 예상돼 눈에 띄지 않는 지하로 두는 추세다. 대신 지상에는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와 같이 화려한 랜드마크와 편의시설을 세워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남 순천시, 광주광역시의 경우가 그렇다.

일찍이 순천시는 민선 7기 입지선정위원회의 심의와 연구 용역을 거쳐 월등면 송치재를 폐기물 처리시설 후보지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전면 백지화가 됐다.

복숭아와 매실 생산지인 월등면에 소각 시설이 들어서면 토양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과수 사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다급해진 순천시는 2029년까지 5만㎡ 규모의 매립시설과 소각시설, 재활용선별시설을 갖춘 폐기물 처리시설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번에는 주민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1년여간 시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남 유니온파크로 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폐기물 처리시설 1순위 후보지로 선정된 월등면 주민들의 반대 기자회견. 박사라 기자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하화' 시설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현아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원은 '느린 재난'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1일 용혜인 국회의원실 주최로 열린 '환경기초시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금 연구원은 "그곳은 많은 시민의 환경을 지켜주기 위한 필수적인 공간이지만, 내부 노동자의 건강은 지켜주지 못하는 열악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느린 재난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호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라면서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건강의 위협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도 "만약 매일 8시간 20~30년을 일한다고 했을 때, 그 노동자는 당연히 질병을 앓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가는 것"이라며 "그것이 시민들한테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지하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의 동생이 거기서 일을 한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서울시 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선정위원회 위원장인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환경공학과 교수는 "폐기물 시설은 님비 시설로 수용성이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일단 안 보이게 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전제 조건으로 지하로 들어가자는 시도가 된 것"이라면서도 "지하로 안 들어가면 더 좋다"고 말했다. 지상시설 설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40~50년 노하우로 소각시설이 굉장히 안정화 됐다"며 "아파트 인근에 설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폐기물 시설을 통해 경제적 피해가 아닌 경제적 이득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여 주민들이 살고 싶게 하는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선진시설 역시 지하가 아닌 지상을 택했다. 프랑스 파리의 이쎄안 소각장, 덴마크 코펜하겐 로스킬레 소각장이 대표적이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마이시마 소각장은 유니버설스튜디오 테마파크에서 2km 떨어진 곳으로, 지상에 주민 편의시설을 갖추고 도시 경관에 독특한 디자인을 가미했다.
 
일본 마이시마 소각장. 연합뉴스

20여년 전에도 주민 반발이 컸지만 수차례 설명회를 진행했고, 편의시설 설치 및 수거 차량 동선 공개 등 주민들의 세부적인 요구도 수용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유명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형형색색의 외관은 마치 동화에 나올 법한 성을 연상케 해서 해마다 1만 6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폐기물 처리장 건립을 추진할 때,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복지시설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주민 참여와 이해의 과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남 유니온파크 실내.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내부. 박사라 기자

김명수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하는 훨씬 비가시화되고 갈등이 은폐되기 쉬운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까 지상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땅 밑의 세계로 입지를 옮기거나 어려움을 우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간이 생활하면서 누릴 수 있는 햇볕을 보는 권리나 환기, 위생, 휴식 시간 등 이런 기준들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다 보니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지키기 못하는 문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기자가 하남 유니온파크 취재를 마치려고 나가려고 할 때 함께 있던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벌 옷 가져오셨죠. 그대로 가시면 대중교통 이용하기 힘들어요.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요."

지자체들의 시선이 지상 위 고층 타워에 머물고 있는 사이, 지하에서 일하게 될 노동자들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권리는 놓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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