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DC 리부트 변곡점 될 스피드스터의 귀환 '플래시'

외화 '플래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DC가 리부트를 선언했다. 마블의 라이벌로 DC를 논하지만, 사실 그 전에 DC에 필요한 건 '리빌딩'이다. 중구난방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캐릭터를 펼쳐왔지만, 정작 DC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채 흘러온 시간이었다. '플래시'는 DCEU(DC 확장 유니버스)가 DCU(DC 유니버스)로 리부트하는 데 있어서 완벽한 변곡점이 됐다.
 
빛보다 빠른 스피드, 물체 투과, 전기 방출, 자체 회복, 천재적인 두뇌까지 완벽한 능력을 자랑하지만 존재감은 제로, 저스티스 리그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히어로가 바로 플래시(에즈라 밀러)다. 어느 날 자신에게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시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브루스 웨인(벤 애플렉)의 만류를 무시한 채 끔찍한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역행한다.
 
의도치 않은 장소에 불시착한 플래시는 멀티버스 세상 속 또 다른 자신과 맞닥뜨리고, 메타 휴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뒤엉킨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플래시는 자신이 알던 모습과 전혀 달라진 나이 들고 은퇴한 배트맨(마이클 키튼)과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걸(사샤 카예)의 도움으로 외계의 침공으로부터 시간과 차원이 붕괴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외화 '플래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마마'로 재능 있는 감독의 데뷔를 알린 후 '그것'과 '그것: 두 번째 이야기'로 호러 영화계 한 획을 그은 앤디 무시에티 감독이 공포 영화가 아닌 DC 히어로 무비 '플래시'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미 공포와 성장 스토리라는 두 개의 요소를 유려하게 엮어낸 바 있는 감독은 이번에도 다중 우주가 존재하는 복잡한 히어로 세계관에 유머와 드라마 그리고 추억이라는 여러 요소를 조화롭게 풀어냈다.

우선 이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DC스럽다'로 표현된, 몇 작품을 제외한 그간의 DC 히어로물이다. 그동안 스피드스터(Speedster·슈퍼 스피드(Superspeed)가 특징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캐릭터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스피드스터 히어로계 대표 주자인 플래시는 이번 영화에서 그 이름과 능력에 맞는 스피드 포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 시작부터 플래시는 자신이 스피드스터 히어로이자 플래시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스피드스터의 능력, 즉 '초고속'이라는 극강의 빠름을 감독은 '빠름'으로 보여주거나 역설적으로 '느림'의 미학으로 표현한다. 스피드 포스라는 초고속의 능력은 인간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만큼, 해당 능력을 잔상처럼 남는 빛으로 표현하거나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식이다.
 
그리고 스피드스터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게 그동안 많이 봐왔던 '느림'이다. 초고속 능력을 갖춘 플래시의 시각에서 세상은 극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이러한 상대속도를 슬로모션으로 표현하며 역설적으로 그의 스피드 포스가 얼마나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지 보여주는 것이다.
 
외화 '플래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러한 느림의 미학은 플래시가 가진 능력은 물론 그의 캐릭터성과 영화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보통 슬로모션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건 긴장감인데, 여기서는 표정이나 상황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웃음'을 끌어내는 장치로 활용한다. 감독은 '플래시'라는 영화와 캐릭터의 바탕에 '웃음'이라는 코드가 깔려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고, 이를 스피드스터의 능력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함께 가져간다.
 
영화 내내 웃음, 즉 유머 코드는 끊이지 않는다. 때때로 다소 눈물 가득한 드라마를 이야기하기 위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잊고 영화가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무거워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감독은 마지막까지 '플래시'의 기본을 잃지 않되, 눈물과 감동이 필요한 부분에서만큼은 진지함을 발휘한다.
 
이러한 유머와 감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배가시키는 것은 '음악'이다. 잘 만들어진 스코어와 탁월한 선곡은 영화의 서사는 물론 액션 시퀀스에서의 미키마우징(캐릭터의 움직임과 음악을 일치시키는 것)이 보고 듣는 재미를 더한다.
 
외화 '플래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플래시'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장치는 바로 카메오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 도달한 다른 우주에서 플래시는 자신의 우주에 사는 배트맨이 아닌 다른 배트맨을 만난다. 팀 버튼 감독 버전의 '배트맨'에서 배트맨을 연기했던 마이클 키튼이 세월 가득한 얼굴로 팬들 앞에 다시 선다. 그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팀 버튼 이후 여러 감독의 손에서 여러 버전의 배트맨이 탄생했다. 마치 다중우주처럼 각기 다른 감독의 세상에서 각기 다른 배트맨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마이클 키튼이 연, '배트맨'이란 히어로를 널리 알리고 이후 확장의 시작점에 섰던 그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더욱 뜻깊은 카메오다. 특히 마이클 키튼이 이후 배트맨들의 시간을 넘어 다시 돌아와 "아임 배트맨"(I'm batman)을 외치는 순간 밀려오는 감동이 있다.
 
그 외에도 다른 배트맨들과 원더우먼을 비롯한 DC 히어로의 출연, 특히 여러 슈퍼맨 중에서도 인상 깊은 '그 모습' 역시 반갑게 다가온다. 이들 카메오는 짧게 등장하지만 그 이상의 재미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외화 '플래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다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리부트를 선언한 DC가 '플래시'의 리스크인 플래시 역 배우 에즈라 밀러를 안고 가기로 했다는 점이다. 스크린 안에서 그는 플래시 역을 놀라우리만치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어쩐지 옆 동네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함, 반전인 히어로의 모습조차 위엄보다는 위트가 돋보이는 플래시는 에즈라 밀러를 통해 재탄생한다.
 
'개그' 담당답게 영화 안에서 배리 앨런/플래시는 거의 모든 순간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특유의 빛을 발한다. 19금계 잔망 개그 히어로에 '데드풀'이 있다면, 비(非) 19금계 잔망 개그 히어로는 이번 영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고히 한 플래시가 있다. 서로 다른 우주의 배리를 연기하거나 배리가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눈물이란 드라마는 에즈라 밀러의 연기를 통해 완성된다. 이처럼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스크린을 장악했지만, 현실의 에즈라 밀러의 일련의 논란은 '플래시'의 최대 단점이자 약점으로 작용한다.
 
배리 앨런과 현실의 에즈라 밀러 사이 간극이 큰 만큼, 또한 그 논란이 도덕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는 만큼, '히어로'라는 이름이 가진 빛이 바랜다. 결국 영화에 몰입하기도 전에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망설이게 한다. 그럼에도 DC는 에즈라 밀러를 끌어안고 가기로 했다. 과연 이 선택이 DC의 전환점이자 플래시라는 스피드스터 히어로의 부활을 알린 '플래시'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144분 상영, 6월 14일 개봉, 쿠키 1개 있음, 12세 관람가.

외화 '플래시' 메인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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