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이 자신이 돌보던 60대 노인의 항문에 배변매트 조각을 집어넣는 학대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달, 경기 양평군에서도 홀로 사는 노인의 집에 십여 년간 눌러 살며 폭행을 일삼은 60대도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현재 진행형인 노인 학대. 6월 15일로 제7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았지만 초고령화 시대, 노인 학대는 오히려 나날이 늘고 있다.
한 해에 만 건 이상…나날이 늘어가는 노인 학대
12일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 2964건으로, 2018년 7662건에 비해 5천여 건 가량 늘었다. 2018년 신고 건수는 7662건, 2019년 8545건, 2020년 9707건, 2021년 만 1918건으로 5년째 꾸준히 늘어왔다.
신고 건수는 나날이 늘고 있지만 검거율은 20%대에 그친다. 노인 학대 검거율은 △2018년 19.1%(1462건) △2019년 22.3%(1906건) △2020년 23.5% △2021년 23.7%(2823건) △2022년 24.1%(3129건)으로, 매년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은 현저히 낮다.
검찰이 노인 학대 가해자를 재판에 넘기는 기소율도 30%대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다. '노인 학대 기소율'은 △2018년 30.2%(1519명 중 459명) △2019년 32.7%(1943명 중 636명) △2020년 29.5%(2336명 중 689명) △2021년 34.8%(2886명 중 1005명) △2022년 34.6%(3195명 중 1106명)에 불과했다.
인천대학교 전용호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실태에 대해 "(검거율이나 기소율이 낮은 이유는) 학대 초기 조사 단계부터 경찰이나 지자체가 유기적으로 함께 결합을 해서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는 노인보호 전문기관 인력도 적고 열악한 상황이라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학대 유형을 살펴보면 신체적 학대가 가장 많았고, 정서적 학대, 성 학대, 방임, 경제적 학대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검거까지 이어진 노인학대 3129건 중 신체적 학대가 2549건으로 80%를 넘었고, 정서적 학대가 293건, 성적 학대가 2건, 방임 12건, 경제적 학대가 11건, 중복 학대가 57건, 기타 학대가 205건이었다.
게다가 통계에 채 잡히지 않은 노인 학대가 많을 것으로 추정해도 무리가 아니다. 전 교수는 "접수된 신고 건수보다, 가정 내 학대나 시설 내 학대를 대부분 그냥 쉬쉬하면서 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 학대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순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치매 등으로 인해 재산 관리를 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상대로 재산을 갈취한다든가 적법하지 못한 방식으로 유산을 상속받고 가로채는 경우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 학대하는 노노(老老)학대가 절반 이상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노인이 자신의 배우자 학대하는 '노노(老老)'학대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검거까지 이어진 노인학대 중 '노노'학대의 비율은 △2018년 41.2%(1519건 중 626건) △2019년 48.3%(1943건 중 939건) △2020년 46.4%(2336건 중 1083건) △2021년 46.6%(2886건 중 1345건) △2022년 51.8%(3195건 중 1655건)까지 늘어났다.
지난해의 경우 노인 학대의 절반 이상이 '노노'학대다. 배우자 뿐 아니라 자녀나 손자녀, 친척 등이 가해자인 경우까지 전부 합칠 경우, 노인 학대의 90% 이상이 친족에 의해 벌어졌다.
'노노'학대의 비중이 높은 이유로 '돌봄의 과부하'가 꼽힌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초고령화 시대가 도래한 부작용으로, 그만큼 돌봄의 부담도 점점 커졌다.
한림대학교 석재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기대 수명이 늘면서 돌봄 기간이 굉장히 길어지게 된다"면서 "돌봄의 부담을 가진 노인들은 본인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 또한 "돌봄의 어려움이다. (배우자도) 같이 늙어가는데,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보니 돌보는 배우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돌봄의 과부하' 해소하고, 노인 학대 예방 체계 촘촘히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노노'학대를 비롯해 노인 학대를 해결하려면 노인 돌봄과 부양의 부담을 덜어, 노인돌봄이 노인학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이 자신의 배우자 및 가족인 노인을 하루 24시간 돌보는 고된 돌봄 노동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이를 위해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단기보호'를 의무적으로 이용하게 하고, 돌봄제공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단기보호는 돌봄 대상자를 24시간 케어해주고, 돌봄을 도맡아왔던 가족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라며 "단기보호와 더불어 돌봄을 제공하는 노인들에게 심리적인 상담을 제공하거나, 가족돌봄자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분명 우리 사회의 돌봄 노동의 상당부분을 가족 돌봄자가 도맡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 학대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지난 2021년 서울경찰청은 전국 최초로 경찰과 지자체,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협력체계를 구축해 학대 우려 노인에 대한 유관기관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전 교수는 "노인보호 전문기관의 인력 자체도 적을 뿐더러, 전국의 지자체가 200개가 넘는 반면 노인보호 전문기관은 30여 개에 불과해 열악한 상황"이라면서 "경기도 같은 경우, 노인 학대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나 기획재정부가 노인 학대 예방에 더 많은 인력과 예산 등을 투입해야 한다"며 "미국의 경우 한 곳당 수십 명의 노인 학대 전담 인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도 노인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노인 학대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하도록 하는 '노인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 노인 학대 신고 의무 규정을 강화하는 '노인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 노인 학대 관련 개정안들이 발의됐다.
궁극적으로는 노인 학대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올바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교수는 "노인의 경우 아무래도 생산적·경제적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미래 세대의 자원으로 여겨지는 아동에 대한 학대에 비해 대책이 부족하다"면서 "아동학대만큼 노인 학대도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