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아들이 한 가상자산(코인) 업체에 재직 중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남국 사태'로 촉발된 코인 논란이 여권으로도 번진 모양새다.
김 대표는 "직원 30명 정도 되는 중소 벤처기업에 직원으로 취업한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라며 "봉급 받고 일하는 회사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남국 의원의 경우와는 결이 다르다는 취지의 해명이다.
하지만 코인 업계에서는 "김 대표 아들이 단순 중소 벤처기업에 취업한 게 아니라, 사실상 수천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업체의 임원급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한다. 해당 업체는 '시세 조종' 의혹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수십조원이 증발한 이른바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초기 투자를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더군다나 김 대표 아들이 직접 참여중인 'NFT(대체불가능토큰)' 프로젝트가 과거 수십억원의 투자를 받고 현재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이른바 '먹튀 사기'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 대표 아들 김모(33)씨는 지난 2021년 11월 '언오픈드' 총괄책임자로 입사했다. 언오픈드는 글로벌 가상자산 벤처캐피탈(VS) 업체 '해시드'가 직접 만든 자회사다. 해시드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로 운용 자산만 약 35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시드는 크게 지주회사격인 '해시드'와 VC인 '해시드벤처스', 그리고 NFT 관련 사업을 하는 '해시드 스튜디오'의 3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해시드 스튜디오'는 코인 업체에 투자를 주로하던 해시드가 직접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겠다며 만든 자회사로, 현재 김씨가 재직 중인 '언오픈드'로 이름을 바꾼 상황이다. 법인 등기에 따르면 올해 3월 말쯤 바뀌었다.
김씨는 언오픈드에서 지난 2022년 8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했다. 최고운영책임자는 기업 내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급으로, 통상 최고경영자인 CEO 다음으로 기업 내 서열 2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김씨가 단순한 회사원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변창호코인사관학교'의 변창호씨는 본인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언오픈드는 그냥 독립된 스타트업이 아니라 해시드 스튜디오로 불리던 회사"라며 "단순 30명짜리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해시드와 동체(同體)라 해시드에 재직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변씨는 김남국 의원의 코인 지갑주소를 특정해 공개하는 등 코인업계 전문가로 알려졌다. 김 의원 사태를 계기로 국민의힘에서 만든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에서도 변씨를 초청해 '재야의 코인고수'라고 소개하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변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김 대표 아들도 당연히 코인 회사 재직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코인 관련해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안다. 전공도 그쪽이 아닌데 갑자기 해시드에 들어갔다고 하니 문제로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언오픈드 재직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거쳐 게임 회사에서 마케팅과 투자 담당 업무를 했었다.
이어 변씨는 "김 대표가 '아들의 코인회사 재직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얘기를 하지만 핀트(초점)가 잘못된 것"이라며 "코인 회사 재직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업체가 '해시드'라서 논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인 시세 조종 등 여러 의혹을 받고 있는 해시드에 정치인 자녀가 근무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취지다.
해시드는 초기 단계 가상자산 관련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도 받지만, 동시에 '시장조성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해시드가 초기에 투자한 코인 업체들 대부분이 거래소에 상장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해시드가 찍으면 오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해시드가 이를 악용해 코인 가치를 띄우고 내리는 등 시세 조종에 관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한다.
실제 시가총액 수십조원이 하루아침에 증발했던 이른바 '테라·루나 사태'에서도 루나의 초기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게 바로 해시드였다. 해시드가 백커(조력자)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루나를 홍보, 투자해 여러 투자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시드 김서준 대표와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서로 SNS 등을 통해 '테라의 첫 파트너인 해시드' 등 표현을 써가며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5월쯤 루나 가치가 개당 10만원에서 개당 1원도 되지 않는 수준까지 한 순간에 폭락했다. 해시드 측은 '보유량의 약 99%를 처분하지 않았다'며 본인들도 테라·루나 사태의 피해자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애초 무에서 유가 창조된 만큼 해시드가 수십억원의 이익이라도 본 셈이라 단순 피해자라고 하기엔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테라·루나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서도 최근 해시드 직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나가 처음 발행되고 해시드가 초기 이를 투자할 당시는 2018년으로 김씨가 언오픈드에 취업하기 전의 일이긴 하다. 다만 김씨가 현재 언오픈드에 재직하며 추진하고 있는 NFT 프로젝트 'DAVA'(다바) 역시 '먹튀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바는 김씨가 입사한 시기인 2021년 11월 론칭했다. 다바는 '웨어 투 언'(Wear-To-Earn)이라는 콘셉트로 이목을 끌었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가 입는 의상의 조합을 통해 변형된 NFT를 만들어 거래한다는 개념이다. 론칭 후 퍼블릭 세일에서 판매 전체 물량을 매진시켜 주목받기도 했다. 해시드가 직접 추진하는 첫 프로젝트라 더욱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NFT 가격이 하락했다. 투자 받은 금액은 15~16억원 규모로 알려졌는데, 이후 로드맵대로 하지 않고 팀원이 줄어들면서 '먹튀' 논란까지 벌어졌다. 코인 업계에서는 이를 '러그풀'(rug pull)이라고 부른다. 언오픈드 측은 "사업자금이 소진돼 팀을 축소한 것"이라며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도록 내부에서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김씨 또한 러그풀 논란이 일자 지난해 11월 25일 SNS 내 '다바 프로젝트' 단체 대화방에서 "언오픈드 COO다. 우선 텍스트로 AMA(Ask Me Anything)를 요청드린 이유는 현 상황에 대해 오해의 소지 없이 명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기 위함"이라며 "어떠한 감정이나 뉘앙스를 배제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다바와 다바 커뮤니티를 위해서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공지한 바 있다.
변씨는 "코인 업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하나의 사건으로 수사기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해 다른 문제들까지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사기 혐의로 수사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속 '5월이면 될 거다', '7월이면 될 거다' 등 말하며 투자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한다. 계속 커뮤니티에서 이를 알리며 알리바이를 만들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김씨는 러그풀 논란이 일기 전엔 "다바 개같이 부활해서 불장 다시 왔을 때 다바로 인생 엑싯해야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불장'은 코인 상승장을, '엑싯'은 '엑시트'(Exit)의 줄임말이다. 코인 상승장이 오면 본인이 추진 중인 NFT로 큰 돈을 벌 것이란 이야기다. 이를 두고 명확한 아이템을 통한 사업이 아닌, 투기의 시각으로 코인업종에 종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가상자산 업계에서 일하는 아들이 일개 중소기업 직장인일 뿐이라던 김 대표의 항변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일개 직원이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에 따라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어 '엑싯'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며 "(김 대표) 본인과 가족의 가상자산 내역을 투명히 공개하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을 위장 탈출한 김남국 의원을 비호하기 위해 뜬금없이 블록체인 투자사의 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 대표의 아들을 물고 늘어진다"며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일부 언론의 보도만을 가지고,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국민의 질문에 답부터 하시라. 이재명 대표 아들에 대한 상습 도박, 성매매 의혹은 사실인가"라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