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이 놀라운 기세로 성장하며 'K방산'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이 말이 어색하지 않게 수출(수주액 기준)만 보더라도 10여년 전 10억 달러 미만이던 것이 2021년 73억 달러, 지난해 173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6년 이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1%에 불과하던 한국산 무기가 2017~2021년에는 2.8%로 증가하며 한국은 세계 8위 무기 수출국이 됐다.
정부는 여세를 몰아 2027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5%를 돌파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에 등극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K방산은 세계 언론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CNN은 지난해 한국 방산이 이미 메이저리거가 됐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최근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을 과소평가했다"는 유럽 방산업계의 말을 인용하며 K방산을 주목했다.
방산 급성장에 '빅 4' 목표…외신도 "이미 메이저리거" 평가
방위산업은 특성상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가 세계 시장의 약 70%를 과점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 같은 나라조차 그 아성을 넘지 못해 나머지 몫을 놓고 2~4%대의 점유율 싸움을 벌이는 세계다.
이렇게 보면 반세기 전 소총 하나 제대로 못 만들던 한국이 이런 레드 오션에 뛰어들어 당당히 명함을 내민 것 자체가 기적에 다름없다.
한국의 경쟁력에는 튼튼한 산업기반 외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함이 있다.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긴 70년 정전체제를 견디며 대규모 중무장 군대를 건설하다보니 생긴 장점 아닌 장점이다.
그렇다고 K방산의 '가성비'를 결코 '저가 이미지'로 폄하할 수 없다. 이는 오히려, 비슷한 성능의 무기를 훨씬 낮은 가격으로 훨씬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다.
지난해 한국산 무기를 쓸어 담다시피 했던 폴란드도 한국의 납기 능력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합리적 가격과 빠른 공급 능력은 상시‧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한국만의 고유한 특장점이다.
높은 가성비와 빠른 공급력 특장점…우크라 전쟁으로 큰 기회
폴란드 사례에서 보듯 우크라이나 전쟁은 K방산이 '민주주의 무기고'로 도약하는 큰 기회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각국이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Aviation Week은 올해 세계 국방예산을 기존보다 대폭 늘린 2.2조 달러로 내다봤다. '글로벌 방산의 골드러시'(Gold Rush)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기존의 강점 외에 국제정세의 이점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유럽 국가들이 나토(NATO) 무기와 호환성이 큰 한국산 제품에 눈을 돌릴 여지가 커졌다.
산업연구원은 3월 보고서에서 "전통적 무기수출 강국인 미국의 독주와 러시아와 중국의 정체, 신흥강국인 한국, 튀르키예 등의 급부상"을 지적하며 "신흥 무기수출국들에게 다시 오기 어려운 천재일우의 기회"로 전망했다.
"집중견제 받을라" K방산 띄우기에 신중론…절충교역도 부담
하지만 방산 현장에선 다소 성급한 기대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한 방산업체 임원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무 요란하게 떠들면 경쟁국의 집중 견제를 받게 된다"며 "우리는 로우키(Low-Key)로 차분하게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같은 '폴란드 특수'가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파격적 절충교역에 따른 내실 여부도 논란이 된다. 금융지원, 기술이전, 현지생산 같은 수입국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다보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미국과 첨단 전투기를 도입할 때 맺은 현지정비 관련 규정이 이런 사정을 반증한다. 우리 군은 이들 전투기 정비를 거의 전적으로 미국 측에 맡겨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정비 비용이 도입 비용 이상으로 지출된다.
2020년 공군본부 국회 국정감사에 따르면, 당시 기준 최근 5년 간 군용기 정비를 위해 외국에 지불한 비용이 1조 7907억원에 달했다. 불리한 수출입 계약을 맺을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잠김(Lock-in) 효과'의 위력이다.
물론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일부 수입국은 100% 차관(금융지원)을 요구하거나, 중국 같은 수출국은 아예 제로금리 차관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갑'이 아닌 한국이 배짱까지 부려가며 팔 수 있는 형편은 아닌 셈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간부는 "후발주자가 높은 진입장벽을 넘으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 보지 말고 어떻게든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무기수출 자랑하는 나라 없어" 평화국가 훼손하는 소탐대실 우려
정부의 '방산 4강' 목표에는 함정도 있다. 최근 5년 무기시장 점유율(SIPRI 집계) 4위는 중국(4.6%)으로 3위 프랑스(11%)와 큰 격차가 있다. 프랑스마저 1위 미국(39%)과 엮어 3강이라 부르기 민망한데 설령 4강이 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물론 4강 자체도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다.
정부가 방위산업을 '미래 먹거리' 쯤으로 띄우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방산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0년 간 평균 0.61%에 불과하다. 최소한 프랑스 수준은 넘어서야 성장동력 운운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K방산 홍보에서 특히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도덕적 측면이다.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무기 수출을 국가 정상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자칫 평화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소탐대실일 수 있다.
이제는 어렵게 이뤄낸 자주국방 성과를 국민에 알리고 용기를 북돋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중국이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하지 않은 결과는 K방산에도 타산지석이다.
전제국 전 방위사업청장은 지난달 세종연구소 보고서에서 "방산수출을 이렇게 온 세상에 드러내놓고 자랑해도 될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으로 예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