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기억과 성장의 경험이 애니메이션의 마법으로 치환됐다. '이민자'라고 하는 단어는 흔히 '차별'이라는 단어와 함께한다. 그러나 이민자에게 존재했던 건 차별만이 아니다. '업'의 주인공 러셀의 모델로도 잘 알려진 피터 손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차별과 두려움 속 소중한 가치를 애니메이션 '엘리멘탈'로 재탄생시켰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 사는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레아 루이스)는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마무두 아티)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게 된다. 앰버는 웨이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며 지금껏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굿 다이노'의 연출자이자 '업'의 주인공 소년 러셀의 모델은 물론 '라따뚜이' '몬스터 대학교' '버즈 라이트이어' 목소리 연기 등 다재다능한 매력을 선보여 온 디즈니·픽사 최초의 한국계 감독 피터 손 감독이 신작 '엘리멘탈'로 스크린을 찾았다.
주인공이자 불 원소인 앰버는 이민 2세대다.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한 부모님과 자란 앰버는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는 게 소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재된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가 있고, 아버지는 앰버가 자신의 내면을 다스릴 줄 알길 바란다. 그런 앰버가 물 원소 웨이드를 만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를 넘어 보다 큰 세상을 만나며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한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를 둘러싼 경계 밖으로 한 발 내딛는 걸 두려워하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그 안에 갇혀 살던 앰버는 웨이드를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그 안에서 발견한 건 두려움만으로 가득했던 예상과 달리 훨씬 다양하고 생각보다 따뜻한 시선과 세상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건 '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꼭꼭 숨겨뒀던 자기 자신이다.
앰버를 둘러싼 울타리는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미안함이 뒤섞인 책임감이다. 부모님의 노력과 희생이 자신을 키워왔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 이상의 부담과 책임을 끌어안고 '자신'이 아닌 '부모님'의 삶을 대신 살아가려 했다.
특히나 불과 물이라는 상극에 놓인 원소의 화합을 통해 피터 손 감독은 사회·문화적 포용과 통합을 보여준다. 다인종, 다문화가 함께하는 곳에서 자라나며 그들 사이 충돌과 교류를 직접 겪은 감독의 은유는 불 원소 앰버와 물 원소 웨이드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이자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간접적인 표현 방식 안에서 상징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앰버의 성장담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피터 손 감독이 자신의 유년 시절에서 만난 건 절망이나 고통만이 아닌 꿈과 희망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이민 2세대로서 차별을 겪고, 두려움에 휩싸이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지언정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로 인한 좌절과 두려움을 뛰어넘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하나 발견하며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엘리멘탈'의 장점은 스토리만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제 원소들이 어떻게 스크린 안에 '캐릭터'로 만들어져 움직이는지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경험과 성장이 어우러진 서사는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네 개의 원소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와 그들이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라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만나 극대화된다.
각 원소의 특성과 질감을 세심한 관찰을 통해 구현한 것은 물론 각 원소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자치구의 모습, 네 원소의 움직임을 생동감 넘치게 포착해 낸 카메라 워크 등 다양한 볼거리는 '엘리멘탈'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109분 상영, 6월 14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