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전주 의료선교 순례길

■ 방송 : 전북CBS <토요일에 만나요, 유연수입니다>
■ 진행 : 유연수 아나운서
■ 출연 : 주명진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장
 
◇ 유연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토요일에 만나요 유연수입니다'의 아나운서 유연수입니다. '토만유'는 6월 한 달 동안 전북 순례길을 따라가는 특집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외된 땅에서 복음화율 1위로 거듭난 한국의 갈릴리, 전라북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종교문화 힐링여행, 전북 순례길. 지금의 전라북도를 있게 한 위대한 복음의 유산을 만나는 시간인데요. 오늘은 천년전주마실길을 따라 걷는 의료선교 순례길을 걸어보겠습니다. 우리를 순례의 길로 안내할 분입니다.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 주명진 관장님, 어서 오세요.
 
◆ 주명진> 네, 반갑습니다. 주명진입니다.
 
◇ 유연수> 제가 관장님으로 소개해 드렸지만 본업은 의사 선생님이시잖아요. 청취자들께 본인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 주명진> 저는 1994년부터 30년 동안 예수병원 병리과에서 일하고 있는 병리 의사입니다. 병리는 위나 대장 내시경을 했을 때 조직을 떼어내면 그 조직을 가지고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암인지 아닌지를 최종 판정하는 과가 병리과입니다. 제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주 예수병원 전경. 예수병원 제공

◇ 유연수> 그렇군요. 지금 의료 활동 때문에 바쁘실 텐데 시간 쪼개서 이렇게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국에 수많은 선교병원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전주 예수병원처럼 예수라는 간판을 내세우는 병원은 좀 드문 것 같은데요.
 
◆ 주명진> 네, 맞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럽죠. 그래서 선교사님들도 감히 병원에다가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 유연수> 원래는 그러면 아니었다는 것이군요.
 
◆ 주명진> 아니었죠. 예수병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게 된 것입니다.
 
◇ 유연수> 한국 사람들이요?
 
◆ 주명진> 네. 치료를 받으러 왔던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고요. 원래는 '맥코완 기념병원' 또는 'Presbyterian Medical Center', '장로교회에서 세운 메디컬센터' 이런 식으로 선교사님들의 이름을 붙였는데 한국 사람들이 와서 진료를 받고 자기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옆집 사람들이 아프면 저기 전주에 있는 병원 가보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맥코완 무슨 기념병원 가봐라. Presbyterian Medical Center 가봐' 이 발음이 안 되죠.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안 되죠. 그런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입원해 있을 때 자기에게 육체적인 질환만 치료해 준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예수라는 사람을 소개해 주고 예수라는 복음을 전해 주더라. 그 예수를 전해주는 복음, 그래서 그것을 줄여서 그냥 '너 전주에 있는 예수병원 가봐' 이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죠. 그래서 이름이 한국 사람들한테는 예수병원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 유연수> 그러면 그 옛날에 이름이 원래 예수병원이 아니었고.
 
◆ 주명진> 아니었습니다.
 
◇ 유연수> 사용자분들, 우리 환자분들이 붙여준 이름이었군요.
 
◆ 주명진> 네, 맞습니다.
 
◇ 유연수> 그래서 예수병원 하면 또 영어 약자로 'PMC'라고 되어 있는데 왜 'Jesus hospital'이 아닌가 궁금했는데 그런 이유였군요.
 
◆ 주명진> 네.
 
◇ 유연수>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고요. 어쨌든 이렇게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전주 예수병원. 1898년도에 처음 진료를 시작했으니까 그 역사도 정말 오래됐잖아요. 이번 시간 125년 장대한 의료선교의 여정을 함께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작은 천년전주 마실길 인근, 은송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은송리 진료소, 전주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나요?
 
◆ 주명진> 은송리는 지금의 전주 완산교회 뒤편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요. 그 정도 위치로 지금 추정하고 있습니다.
 
◇ 유연수> 거기가 예수병원의 최초의 터였었죠?
 
◆ 주명진> 네, 맞습니다.
 
마티 잉골드 예수병원 설립자. 예수병원 제공

◇ 유연수> 은송리 진료소로 시작했는데 그러면 완산교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하죠. 아쉽게도 초가집 진료소는 지금 당연히 사라졌고 현재는 그 터로 추정되는 곳만 남아 있는데 혹시 당시 어떤 환자들을 돌보았다, 또 어떻게 진료했다, 이런 기록들은 남아 있나요?
 
◆ 주명진> 네, 있습니다. 마티 잉골드가 여자 의사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그 당시에는 남녀가 유별했잖아요.
 
◇ 유연수> 그랬죠.
 
◆ 주명진> 그래서 남자 환자를 진료할 수 없었습니다.
 
◇ 유연수> 아, 여성 의사는요?
 
◆ 주명진> 네. 그래서 여자와 어린아이들만 진료했어요. 그래서 보면 남자아이의 고관절이 탈구된 아이를 치료했다는 기록도 있고 여자 환자들 턱뼈가 빠진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있고 어쨌든 성인 남성은 치료할 수가 없었습니다.
 
◇ 유연수> 그랬군요. 그러면 은송리 진료소에서 4년 뒤 1902년도죠.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진료소를 옮겼다는 기록도 나와 있어요. 지금 그러면 이 기와집 진료소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나요?
 
◆ 주명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기와집도 터는 은송리에서 화산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은송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화산동으로 이사한 곳이 기와집 3채인데요. 그곳도 현재는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 유연수> 현장에 가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사진으로는 또 남아 있다고 하네요.
 
◆ 주명진> 네, 사진으로는 남아 있습니다.
 
1936년 건축된 옛 예수병원. 현 엠마오사랑병원. 전주시 제공

◇ 유연수>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 당시에 찍은 사진으로 확인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이렇게 초가집과 기와집 시절을 거친 뒤 일제강점기 시절에 근대식 건물을 짓게 되죠.
 
◆ 주명진> 1912년에 토마스 다니엘 선교사님이 오셔서 호남 최초로. 정말 그때는 우리나라 기와집, 초가집 이런 것밖에 없었는데 빨간 벽돌로, 2층으로 해서 30병상 규모로 병원을 지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장미도 같이 피고 해서 '아름다운 병원'이라고 이렇게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병원이었는데 1935년 1월에 전기합선으로 불이 났어요. 그런데 그 병원에 30명 1층에는 여자, 2층에는 남자 환자들이 꽉 차게 입원해 있었고 그때 당시 애델 캐슬러라는 간호사가 그 병원의 한쪽 병실에서 본인이 잠을 자면서 거기서 생활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캐슬러라는 간호사가 불 나는 그 소리를 먼저 새벽에 듣고 일어나서 모든 환자를 다 대피시켰죠. 그래서 한 명도 사망한 사람이 없었고.
 
◇ 유연수> 다행이네요.
 
◆ 주명진> 그래서 그때 당시 선교사 자녀가 태어난 지 4일째 될 때, 예수병원에서 신생아가 태어났고 선교사 사모님이 거기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 그 신생아까지 다 구했습니다. 그래서 한 명도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이 없이 다 구해냈습니다.
 
◇ 유연수> 다행이네요. 그러면 그렇게 화재 사건으로 인해서 전소가 됐어요.
 
◆ 주명진> 네, 전소가 됐어요. 그래서 그 전소된 병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보거스 선교사님이 모금도 하고, 그다음에 화재보험에 다행히도 가입이 돼 있었어요.
 
◇ 유연수> 그 당시에요?
 
◆ 주명진> 그 당시에 화재보험이. 그래서 그 화재보험금을 타고 해서 그 이듬해 1936년에 지금 병원을 다시 세운 것이죠. 그 병원이 지금 남아 있는 엠마오 사랑병원이 되겠습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저도 한번 가봤는데 붉은 벽돌로 되어 있고.
 
◆ 주명진> 네, 맞습니다.
 
◇ 유연수> 담쟁이넝쿨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덮여 있는. 그것이 그러면 36년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 주명진> 네,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가 지금 뭐 문화재로 지정이 됐다든지 그런 것은 아직 없나요?
 
◆ 주명진> 아직 그런 것은 없습니다.
 
◇ 유연수>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가 굉장한 곳이고.
 
◆ 주명진> 네, 그렇습니다.
 
◇ 유연수> 지금 여기는 개인 병원이죠?
 
◆ 주명진> 네, 맞습니다. 개인 병원으로. 예수병원하고는 상관없는 개인 요양원으로 지금 사용되고 있습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그래도 누구든지 외부의 모습은 방문해서 보실 수 있고. 엠마오 사랑병원 이곳 방문하시면 그때 36년도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구나 싶은.
 
◆ 주명진> 엠마오 사랑병원, 특히 밤에 가면 저는 밤에 가 봤는데 전주시 야경이 굉장히 멋있게 잘 보이고 제가 볼 때도 아주 참 아름다운 곳에 병원이 지어진 것 같습니다.
 
◇ 유연수> 그러면 엠마오 사랑병원 자리까지 가봤고 이제 그 맞은편을 바라보면 '너싱홈'이라는 건물이 있더라고요. 여기는 뭐예요?
 
◆ 주명진> 간호사들이 기숙했던 간호사들의 숙소. 숙소로 사용되고 그런 곳이죠.
 
◇ 유연수> 지금도 사용이 되고 있고요?
 
◆ 주명진>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그러면 간호사들이 머물렀던 기숙사 격이었고요. 또 그 주변에도 선교사님들이 쓰시던 사택도 있던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죠?
 
◆ 주명진> 네, 아직도 남아 있고 그 사택들을 예수병원의 임상 과장님들이 사택으로 쓰고 있고.
 
◇ 유연수> 지금도요.
 
◆ 주명진> 네,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닥터 씰 설대위 선교사님이 쓰시던 집은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서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거나 또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있습니다.
 
◇ 유연수> 거기 사택에 계신 예수병원 과장님들은 참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 주명진> 그렇죠.
전주 선교사 묘역. 전주시 제공
 
◇ 유연수> 그 옛날 선교사님들이 쓰시던 그 사택부터 계속 이렇게 이어져 오는 것이다 보니까. 그렇군요. 옛 예수병원이 자리한 엠마오 사랑병원 그리고 선교사님들 사택을 관장님과 같이 지나갔어요. 거기에서 언덕을 좀 더 오르면 순례지가 하나 더 나와요. 선교사 묘역이 있어요. 여기는 어떤 공간인가요?
 
◆ 주명진> 선교사 묘역은 예수병원에서 일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던 프랭크 켈러라는 소아과 의사 선교사님이 묻혀 있기도 하고, 그다음에 북한에서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박영훈이라는 한국 사람이죠. 한국 선생님 그분이 가족들은 다 있었는데 북한에서 홀로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예수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일을 하시고 그곳에 묻혀 계시고요.
 
◇ 유연수> 의사 선생님이셨어요?
 
◆ 주명진> 네, 의사였어요. 세브란스를 졸업하시고 예수병원에서 일을 하시다가 예수병원에서 돌아가시고 그 묘역에 묻혀 있고, 그다음에 선교사님들 자녀들. 특히 구바울 선교사님 폴 크레인, 닥터 씰 전에 원장님이셨던 구바울 선교사님의 아들도 그곳에 묻혀 있고요. 그 아들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저하고 똑같은 나이입니다.
 
◇ 유연수> 그래요?
 
◆ 주명진> 왜냐하면 그 아이가 1963년에 태어났는데 제가 1963년에 태어났거든요.
 
◇ 유연수> 그러시군요.
 
◆ 주명진> 그런데 1966년에 거기 예수병원에서 죽어서 아이가 그곳에 묻혀 있습니다.
 
◇ 유연수> 제가 듣기로는 선교사님의 자녀가 묻혔는데 당시 풍토병으로.
 
◆ 주명진> 네, 맞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풍토병들이 많았죠. 이질,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결핵 굉장히 많은 질병이 있었죠.
 
◇ 유연수> 외국인 선교사님들이 풍토병으로도 굉장히 고생하고 자녀를 이렇게 하늘나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선교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 주명진> 맞습니다. 특히 호남에 처음 왔던 7명, 선발대 7명 중에 전킨 선교사 같은 분은 시드니, 조지, 프랜시스 3명의 아이들을 다 잃었어요. 이곳에서 다 잃고 그래서 그 아이들의 비석도 그곳에 있고요.
 
◇ 유연수> 그렇군요.
 
◆ 주명진> 예수병원 묘역에 있고 그다음에 전킨 선교사님도 돌아가셔서 비석 거기 묘역에 있고. 군산 영명학교라든지 그런 학교를 세워서 군산에 원래 묘역이 있었는데 군산 선교지의 선교부를 정리하면서 묘역이 없어지면서 그곳에 있었던 비석을 그 묘역으로 가지고 와서 저희 묘역에 세워놓은 것이죠. 그리고 예수병원 처음 시작했던 마티 잉골드의 아이도 그곳에 묻혀 있고요. 사산된 아이죠. 테이트 목사님하고 결혼하셔서 마티 잉골드는 사산한 이후 그다음에는 자녀를 갖지 못해서 마지막 아이였는데 그 아이도 거기에 묻혀 있고 그렇습니다.
 
◇ 유연수> 그 묘역에 오르면 정말 햇볕이 따사로운 날에는 채광도 아름답고 참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인데 또 그런 아픔도 담겨 있고 올라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뭔가 숙연해지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 주명진> 그 묘역 중에 프랭크 켈러 선교사님이 소아과 의사였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모님은 남편을 그곳에 묻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전주에 남으셔서 예수 간호대학 2대 학장, 두 번째 학장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그 아들을 잘 키워서 그 아들이 성장한 다음에 결혼해서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이죠. 그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묘역을 방문했던 그런 사진도 있고 그렇습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그런 역사의 현장을 또 이렇게 방문해서 보실 수 있고요. 이렇게 선교사 묘역에서 쭉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까 엠마오 사랑병원도 보면 전주 시내 야경이 다 보인다고 했는데 이쪽에서도 내려다보면 현재의 예수병원 모습을 아주 잘 볼 수 있잖아요.
 
◆ 주명진> 네, 맞습니다.
 
◇ 유연수> 지금 예수병원 건물은 전주 용머리 고개라 불리는 곳에 1971년에 지어졌잖아요. 근데 당시 현대식으로 웅장하게 건축된 병원을 보고서 이건 '용머리 고개의 기적'이다, 이렇게 불렸다고 들었습니다.
 
◆ 주명진> 네, 맞습니다.
 
◇ 유연수> 그 이유가 뭔가요?
 
◆ 주명진> 당시에 그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독일 서독 의 기독교 개발원조단에 요청을 했어요. 비용을 요청했는데 그 비용이 나오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유연수> 오래 걸렸네요.
 
◆ 주명진> 4년 동안 서독에서도 와서 계속 보면서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번 왔었고 실사도 하면서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 드디어 그곳에서 승인이 났어요. 그래서 당시 돈으로 150만 마르크가 지원되고 그다음에 미국 장로교에서 지원된 금액과 합쳐서 드디어 병원이 지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마 닥터 씰 설대위 선교사님이 '용머리 고개의 기적'이라고 이렇게 부르셨던 것 같아요.
 
◇ 유연수> 그 당시에 병원장이셨던 설대위 선교사님이 붙인 이름이었군요.
 
◆ 주명진> 네. 서독에서 원조가 승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대위 선교사님이 기뻐서 교회 옆에 종을 치라면서 드디어 승인이 떨어졌다, 이렇게 기뻐했던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 유연수> 서독의 자본이 이렇게 들어왔다.
 
◆ 주명진> 서독의 자본과 미국의 현금이 모여져서 지어진 건물이죠.
 
구바울 선교사. 예수병원 제공

◇ 유연수> 또 4년이란 세월이 걸린 이유는 서독과 미국의 후원금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도로 모인 돈이기 때문에 함부로 집행할 수 없는 그런 이유 때문인 것도 같은데요. 이렇게 우리 설대위 선교사님이 그 터를 잡고 지금의 예수병원 모습을 만들어 가셨다 하셨고요. 예수병원의 역사를 이렇게 쭉 훑어보면 구한말의 초가집 진료소로 아까 은송리 진료소에서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또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말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한 선교병원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이런 역사를 한데 모은 곳이 지금 또 관장으로 계신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이죠? 여기에는 어떤 것들을 확인할 수 있나요?
 
◆ 주명진> 먼저 구바울 선교사님은 의사로서 오랜 기간 예수병원을 섬기신 분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된 예수병원을 다시 일으킨 분이세요. 박물관엔 초대 예수병원장인 마티 잉골드가 입었던 블라우스라든지 신었던 신발, 이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요. 그다음에 선교사님들이 왕진 다녔을 때 가지고 다녔던 왕진 가방 그다음에 초창기 내시경,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말 두껍고 투박한 내시경들, 이런 초창기 내시경들 그다음에 검안경 이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유연수> 저도 가서 봤는데 그 당시에는 최첨단 기기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고문 도구인지 의료 장비인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생소한데 또 그 안에 담긴 여러 스토리들을 생각하면 참 은혜가 되더라고요. 이렇게 우리 관장님과 함께 짧은 시간 전주 의료선교 순례길을 함께 걸어봤는데요. 이렇게 소개하시면서 어떤 마음이셨는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 주명진> 저는 박물관장 하면서 역사를 쭉 공부하고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이 우리나라가 100년 전에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나라였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진짜 불쌍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00년 만에 이렇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을 때 우리 선교사님들에 의해서 사람이 길러지고 사람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했고 그다음에 학교를 통해서 길러진 인재들이 사회에 나가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오래 살아야죠. 그때 당시 우리나라 100년 전, 60년 전에는 결핵이 많아서 평균 수명이 40대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잘 시켰어도 사회에 나가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시면 안 되었잖아요. 그래서 병원이 필요했고 그다음에 복음으로 정말 봉사하고 남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이런 마음을 길러줘야 하고 이 3가지 모든 것을 선교사님들이 다 함께 힘을 합쳐서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러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의 눈물과 땀과 희생과 정말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이 듭니다.
 
◇ 유연수> 아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참 인상적인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원래 예수병원이 이름이 아니었는데 정말 이 공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치료를 받아서 또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어디서 치료 받았어? 거기 예수병원' 그렇게 하면서 예수병원이 됐다. 우리 환자분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교문화 힐링여행, 전북 순례길. 오늘은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 주명진 관장님과 함께 의료선교 순례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관장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주명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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