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지휘자가 나서는 시도는 세계에서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앞서 2008년 일본 혼다사가 만든 '아시모'(Asimo), 2017년 스위스의 협동로봇 '유미'(Yumi), 2018년 일본의 2세대 AI 휴머노이드 로봇 '알터2'와 2020년 '알터3' 등이 무대에 선 바 있다.
'부재' 무대에 서는 '에버(EveR) 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감정 모델 기반 근육 제어 알고리즘을 통해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시선 맞추기와 자율행동이 가능하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측은 "'에버 6'를 개발하며 가장 염두에 둔 기능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박자 계산이다. 특히 속도와 가속도가 매우 빠른 역동적인 지휘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각 관절의 최대 속도를 고려한 모션 최적화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공연은 로봇을 지휘자로 내세웠지만 '에버 6'와 인간 지휘자 최수열이 따로 또 같이 무대에 오른다.
'에버 6'는 몽골 작곡가 비얌바수렌 샤라브의 '깨어난 초원'과 만다흐빌레그 비르바의 '말발굽 소리'를 지휘한다. 빠르고 경쾌한 박자로 구성돼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말들의 기세가 느껴지는 곡이다. 빠르고 반복적인 지휘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하며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한 역동적인 음악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최수열은 황병기 작곡의 가야금 협주곡 '침향무'와 김성국 작곡의 국악관현악곡 '영원한 왕국'을 지휘한다. '침향무'의 가야금 협연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이지영 교수가 함께한다.
최수열은 "로봇에게 가장 도전적인 영역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교감과 소통, 그로 인해 완성되는 음악이 아닐까"라며 사람 지휘자의 통솔력과 해석력으로 로봇과는 차별화된 공연을 선보인다는 각오다.
손일훈 작곡의 위촉 신작 '감'은 '에버 6'와 최수열이 함께 지휘한다. 작곡가가 2014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음악적 유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곡으로, 연주자들은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무대 위에서 게임을 하듯 즉흥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최수열은 지휘자로서 지닌 '감'을 십분 활용해 연주자들과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자유롭게 음악을 풀어나간다. 동시에 '에버 6'는 일정한 속도와 박자로 패턴 지휘를 돕게 된다.국립국악관현악단 측은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결합이 열어줄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지휘자가 부재(不在)하는 무대를 통해 지휘자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역으로 질문하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