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복귀와 KBO 총장 내정자 사퇴

[임종률의 스포츠레터]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선택은?

정수근정수근
지난주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군 화두는 ''정수근 복귀''였습니다. 지난해 7월 폭행 사건에 휘말려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무기한 실격선수 징계를 당한 정수근에 대해 전 소속팀 롯데가 지난 3일 징계 해제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또 사면 요청이냐는 반대여론과 충분히 반성했고 선수생명도 이어줘야 한다는 찬성론이 부딪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KBO는 빠른 시일 내에 정수근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매듭짓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주를 넘겼습니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여론의 추이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도 생겼습니다. 이상국 사무총장 내정자가 지난 5일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겁니다. 유영구 총재가 추천한 이상국 내정자가 감독청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암묵적인 반대에 끝내 물러났습니다. 문체부는 한달 가까이 미뤄왔던 KBO의 개정 정관 승인을 이내정자가 사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마쳤습니다.

KBO로서는 당면한 두 가지 큰 과제가 남겨진 셈입니다. 정수근의 복귀 시점과 새 사무총장 후임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일견 공교롭게도 한 가지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명분과 실리, 이상과 현실, 권위와 편의 사이에서 미묘하게 얽혀 있는 양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수근 복귀, 흥행엔 ''실리''…KBO · 구단, 권위 실추 우려

정수근 복귀는 KBO의 권위, 명분과 직결되는 일입니다. 지금 복귀를 결정한다면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이 될 순 있습니다. 560만 관중을 목표로 하는 KBO로선 실리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최하위로 처진 롯데가 정수근 복귀로 분위기 반전에 돌입해 순위가 오른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인기구단인 만큼 관중몰이에도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KBO와 프로야구의 위상에는 흠결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기적 실리를 취하자고 장기적으로 세워야 할 명분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지난해 7월 폭행사건에 연루된 정수근에 대해 롯데는 KBO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KBO는 영구제명보다 한 단계 낮은 무기한 실격 징계를 내렸습니다. 무기한인 만큼 정수근이 이제라도 징계가 풀려도 규정에 어긋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기한이라더라도 최소 1년은 돼야 한다는 게 적잖은 야구팬들이 생각하는 심정적 마지노선일 것입니다. 적법한 절차와 해석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롯데가 요청한 임의탈퇴가 최소 1년 간 제재기 때문입니다. 그런 롯데가 11개월만에 정수근 복귀를 먼저 운운한다는 게 외견상 해프닝이 아닐 수 없기도 한 까닭입니다.(KBO는 임의탈퇴 공시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정수근은 예전에도 2차례 폭행사건을 빚었습니다. 지난 2004년에도 시민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KBO의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21경기만에 해제된 바 있습니다.

물론 정수근은 그동안 충분히 반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포츠전문지 등을 통해 정수근은 그간 유소년 야구봉사 활동 등을 해오면서 진정한 참회와 간절한 복귀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수근의 복귀를 반대할 의견은 많지 않을 겁니다.

롯데의 다급한 상황도 일견 이해됩니다. 정수근 징계 1년이 되는 7월 중순이면 순위 싸움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시점입니다. 최하위로 처진 가운데 반격을 하려면 6월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복귀 시점이라면 반대 여론은 적잖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롯데부터 스스로 구단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롯데는 정수근 징계 이유로 ''팀 형편(성적)이 좋지 않아 분위기 쇄신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1년 이상 징계를 내리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팀이 하위권에 머무니 없었던 일로 하자는 셈입니다.

▲이상국 전 총장, 야구 중흥엔 ''실리''…정치자금법 ''벌금형 전력'' 발목

이상국 총장 내정자의 사퇴가 정수근 문제 해결의 단초를 준 것은 아닐는지요. 유영구 총재 취임과 함께 KBO는 전성기를 누렸던 지난 1990년대 중흥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이에 대한 실무 책임자로 이상국 전 사무총장을 선택한 겁니다.

지난 1991년 해태 단장을 맡았던 이 전 총장은 지난 1999년 말부터 사무총장으로 약 6시즌 최장기간 KBO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2000년 SK 창단과 이듬해 KIA 창단을 이끈 이 전 총장은 타이틀스폰서 유치, 중계권료 이상 등 탁월한 업무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야구 중흥이라는 KBO의 실리를 이끌 적임자로 손색이 없을 전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총장은 결국 벌금형을 받았던 전력 때문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문체부의 이 전 총장에 대한 반대는 지난 2005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형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이 전 총장은 당시 야구장 광고업자에게 받은 수천만원을 받고 정치인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만 500만원 벌금형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문체부 결정이 만고의 진리는 아니겠지만 결국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한 셈입니다. KBO 총장 선임을 자율적으로 하는 정관을 승인했지만 여전히 문체부는 이 전 총장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KBO는 2주 연속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번 주에는 상벌위원회를 통한 정수근 복귀를, 다음 주는 이사회를 통해 새 사무총장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명분이냐, 실리냐. KBO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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