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국조합의, 선관위 백기?…독립도 지키고 개혁도?

'감사원 감사거부' 고수 선관위, 오늘 회의서 '부분 수용' 검토
'이번 한해서만 수용' 입장 선회할까…與 '총공세'
외부 감사 만능론 경계해야…독립성 위해선 결국 자정력 길러야
유경준, '감사관 외부 영입' 선관위법 개정 준비
여야, 선관위 국조 합의…21일 본회의 처리 목표

연합뉴스

'부모 찬스' 등을 활용한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9일 회의를 열고, 감사원 의 직무감사 수용 여부를 재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회의 때만 해도 위원 만장일치로 감사를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이후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고위 간부들의 업무추진비 내역까지 세세하게 공개되는 등 여권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부담이다.

이같은 기류 속에서 일부 위원들이 '감사 수용'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다만 감사원 감사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땜질식 처방일 뿐만 아니라, '정치감사' 우려로 선관위의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체 감사 기능을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으로 개혁해 독립성을 살리면서 내부의 모순들을 수술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업무추진비 내역까지 '탈탈' 與 총공세 속 선관위원회의

선관위원회의의 공식 안건은 후임 사무차장 인선이지만, 감사원 감사 수용 여부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공식 안건 외) 현안 논의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2일 회의에선 '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관위는 독립기관으로 법률상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닐뿐더러, 헌법적 관행으로도 직무감찰을 받지 않아 왔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후 여당이 총공세를 펼치고, 감사원의 법적 대응 및 검찰·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착수 등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위원 중심으로 '감사원 감사 일부 수용'으로 돌아서는 기류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한 후 퇴장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국민의힘은 지난 4일 이례적으로 주말 최고위원회를 여는가 하면, 5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 요구와 감사원 감사 거부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일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선관위 과천 청사를 항의 방문했고, 이어 8일엔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이 청사를 찾아 '제2 조국·조민 사태'라며 공세를 높였다.

특히 이날 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까지 세세하게 공개되는 등 압박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상임위원, 사무총장 등 고위 간부들은 2018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주말에만 약 997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가 계속 감사원 감사 거부 입장을 고수한다면 여권에서 이 같은 업무추진비의 방만한 사용을 근거로 감사원 감사를 요구할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이번 채용 비리에 한해서 만이라도 일단 감사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재발방지 위해선 자정능력 길러야…'감사관 외부 개방' 도입 추진

연합뉴스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자정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사태의 경우 사안의 심각성 측면에서 외부 감사가 불가피하지만, 매번 땜질식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다가는 선관위의 존재 근간인 독립성·중립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긴 하지만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정치감사' 우려가 늘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감사원 사무총장이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언론 보도 해명 계획 등 주요 사안을 문자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실-감사원 유착'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대선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 이후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조직 혁신안으로 '자체 감사기구의 독립성·전문성 확보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사무처 아래에 있던 감사기구를 독립시켜 중앙위원회에 두고 위원장의 지휘를 받도록 하며, 감사기구의 장(長)에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당시 선관위는 규칙을 바꿔 근거까지 마련했지만 외부인사 영입을 2024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하는 등 기구 구성을 미루는 사이 특혜 채용 의혹이 터지면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혁신안이 빛을 발하지 못한 상황이다. 거론되고 있는 특혜 채용 의혹 사례들 대부분이 감사기구 독립 이전에 벌어지기도 했다. 자체 독립 감사기구가 있었다면 문제를 막을 수 있었던 측면이 존재하는 셈이다.

현재 대부분의 정부 부처나 법원, 국회사무처 등의 감사관은 외부 개방직이다. 대법원의 경우 기존에는 윤리감사관실이 법원행정처 산하 차장 직속으로 설치돼 내부 인사가 맡아 왔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등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를 계기로 대법원장 직속 외부 개방직으로 바뀐 바 있다.

이에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선관위의 감사관 자격 조항을 신설하는 선관위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유 의원은 "선관위가 이번 사안의 경우 완전히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서도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선 스스로 자정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자정 능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헌법기관들처럼 감사관을 외부에서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선관위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및 북한발 해킹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다음 주 본회의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국정조사 계획서 본회의 의결은 오는 21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