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라도 '심신미약'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이 입증된다면 보험사로부터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숨진 A씨 유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원심(2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11월 23일 건물 계단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지기 전날 밤 지인 3명과 함께 소주 8병, 맥주 1캔 등 술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2010년 14살 때 우울증 진단, 2016년 성인이 돼서도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2018년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까지 받았다. 그는 2019년 5월 물품 배송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 일자리를 잃으면서 신체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A씨는 2012년 2월 가입한 보험이 있었고, 유족은 보험사에 상해보험금 9천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자살'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이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1심은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못하는 상황에서 숨졌다는 판단을 내려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A씨 우울증이 악화했고 사망 직전 음주로 증세가 더욱 깊어져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서 충동적으로 극단 선택을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진료 내역에서 착란 증상과 관련된 내용이 보이지 않고 숨진 해에 직장을 다니는 등 사회 생활도 했다"는 것이다. 또 숨지기 전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등 정황도 있어 "극단 선택이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숨지기 직전 술을 많이 마셔 우울증세가 갑자기 심해져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본 것이다. 또 자살 무렵 A씨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이 매우 나빠진 점, 9년 전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고 사망 1년 전 입원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진 점 등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사망 전 가족에게 전화했거나 목을 매는 방식으로 자살했더라도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원심이 이런 사정을 면밀히 살피지 않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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