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첸, 강해상. 이들의 공통점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빌런'이라는 점이다. 장첸과 강해상은 '범죄도시'에서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각 배역을 연기한 배우 윤계상과 손석구 역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배턴을 이어받은 새로운 빌런이 나타났다. 바로 주성철이다.
주성철은 앞선 빌런 장첸이나 강해상과는 결이 다른 빌런이다. 어느 각도로 보나 '악당'이었던 둘과 달리 주성철은 조금 더 음험한 인물이다. 사회적인 인물로서의 주성철과 개인 주성철의 간극은 그가 얼마나 더 위험한 인물인지 보여준다. 그런 주성철을 더욱더 위협적인 인물로 완성한 건 배우 이준혁이다.
이준혁은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적도의 남자' '비밀의 숲' 시리즈,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등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배우다. 그러나 이번 주성철은 다르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이를 연기한 이준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물론 눈빛과 목소리까지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과연 주성철이 어떤 빌런이기에 이준혁이 온몸을 던지게 만들었는지, '범죄도시 3'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준혁이 연기한 3세대 빌런 주성철은 무엇이 다를까
▷ '범죄도시' 시리즈는 악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런 만큼 출연 결정 후 준비하면서 부담은 없었나?
자꾸 불나방같이 다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게 영화에 대한 사랑 같다. 그때 대본을 받고 엄청나게 부담이 됐다. 마침 2편도 엄청 잘되고 있었고. 그 부담은 지금까지도 갖고 있다. 다만 좋은 건, 앞선 작품이 워낙 잘됐기에 이게 홍보 효과로 치면 어마어마하다고 본다. 미리 그렇게 깔아주신 게 있기에 감사하다고 느끼는 게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담을 느끼지만, 대본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했다.
▷ 주성철은 앞선 1~2편 속 악당과는 다른 결의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이다. 어떤 식으로 인물이 가진 악(惡)을 표현하고자 했나?
내가 주성철에게서 느낀 특징적인 부분은 '사회화'다. 지금까지는 사회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악행이었다면, 주성철은 사회화된 인물이 하는 악행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주성철은 인생에 실패가 없었던 사람 같다. 단 한 번도 실패가 없었던 사람의 '운수 좋은 날'을 많이 생각했다.
최고 전성기에 있는 와중에 자기 인생에 제일 하이라이트가 될 거래를 할 거고,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았을 거다. 그전에는 그런 느낌을 가졌을 거 같다. '난 이렇게 잘났는데, 왜 내가 쟤보다 돈이 없고, 방해를 받아야 하지?' 여기에 기본적으로 나쁜 성향이니까 더 극한까지 가는 거 같다.
그런 전성기에 어이없게 마석도를 만난 거다. 주성철 캐릭터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마지막까지 플랜B(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대안)가 있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지금도 이길 거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가 주먹에 놀랐을 거다.(웃음)
▷ 이번 역할을 위해 20㎏나 증량했다.
이런 도전은 당연히 즐길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개월 동안 충분히 뛰어들어 볼 만한 일이라고 봤다. 사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봤던 많은 선배 연기자 덕분이다. 한국 영화도 그렇고 할리우드 영화도 그렇고, 그들의 행위가 내게 되게 큰 영향을 줬다. 사실 시간이 일 년 정도 있었다면, 한 120㎏까지는 증량해 보고 싶었다.
▷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주성철 역을 맡은 건 어떤 지점에서 도전적이었나?
기존에 했던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도 자체가 도전적이었다. '범죄도시 3'를 제안받고 한다고는 했는데, 내가 과연 시리즈에 신선함을 줄 수 있을까 싶었다. 난 이미 소비된 배우인지라 그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도 변화시키기 위해 별도의 트레이닝도 받았다. 내 목표는 그래도 날 잘 모르는 관객들이 봤을 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런 부분을 위해 노력했다.
▷ 주성철의 액션이 가진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떻게 훈련하고 촬영해 나갔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주성철은 계속 액션을 해야 하는 인물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잡힐까 봐 긴장하는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늘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수도 있고, 부하들을 시키는 게 낫다 보니 갑작스럽게 촉발되는 액션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안무처럼 합을 짤 수 없고, 롱테이크로 찍기도 했다.
처음엔 상대를 때리고 밟는 게 어려웠다. 아무리 가짜 몽둥이라도 아프고, 사람을 때린다는 게 되게 어색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차라리 피하고 합을 맞추는 건 괜찮은데 그건 너무 어색하더라. 그런 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나중에는 한 번 해주는 게 낫다, 우리를 믿고 가라고 해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신뢰 관계가 돈독해져야 하고, 그게 쌓이는 데 오래 걸렸다.
이준혁이 본 마동석, 그의 손에서 탄생한 '범죄도시'
▷ 함께 작업한 제작자이자 선배 배우로서 마동석은 어떤 사람이었나?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마동석 선배는 영화를 하면서 영화 기획을 계속하고 하루 종일 영화 생각만 한다. 난 그게 되게 좋게 보이고, 다행히 앞으로도 내가 저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긴다. 나한텐 그런 게 숨통이 트일 정도로 반갑게 다가왔다. 내가 배울 게 있고, 영화에 관해 대화할 선배가 있구나 싶었다. 그런 선배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배우가 제작자로서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마동석의 행보는 많은 배우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시대가 그런 거 같다. 누구나 자기 매체를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런 시대와 함께 가는 거 같다. 자기 창작 활동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옛날보다 열린 거 같다. 콘텐츠나 플랫폼도 옛날보다 더 많아졌으니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규모는 아니겠지만, 좀 더 작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 만약 배우 마동석을 캐스팅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을 맡기고 싶나?
의사나 검사?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물을 맡기고 싶다. 그런 걸 하면 굉장히 매력 있을 거 같다. 싸움은 못 해도 되지 않을까? 액션을 하면 또 대사를 못 할 거 같다.(웃음)
▷ 어느덧 40대가 됐다. 이루고 싶은 게 있을까?
올해는 '범죄도시'가 잘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이 많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면, 엄청 고생하고 고통받다가 하루 풀어져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인상 깊었다. 그 감정을 알고 싶더라. 나도 날 투입해서 고통받고, 하루 정도는 풀어져서 그러고 싶다. 잘되면 술은 못 먹더라도 내 부하들과 같이 모여서 한번 터트리고 싶다.(웃음)
▷ 관객의 입장에서 '범죄도시 3'에 관해 평가해 본다면?
오락영화라고 본다. 지금 흐름에도 맞지 않나? 대중들이 원하는 걸 '범죄도시'가 잘 포착했다. 드라마도 영화도 그렇고, 깊숙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지금 같은 때는 편한 걸 원하는 시대인 거 같다. 지금은 시원한 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역시 마동석 선배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