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김봄소리 "음악 안에서는 자신을 위장할 수 없죠"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c)Kyutai Shim, DG. 롯데문화재단 제공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4)가 오는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스케스트라(이하 로테르담 필)와 협연한다. 협연곡은 2013년 독일 ARD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1위 없는 2위를 했을 당시 연주했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인 김봄소리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ARD는 큰 기회이자 배움이 된 무대였다. 독일 음악의 표본인 브람스의 구조적 음악을 어떤 사운드와 방식으로 연주하는지에 대해 깊게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교향곡적인 면이 알수록 더 심오하고 그의 음악을 풀어내는 데 중요한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무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꾸준히 연주하고 있다. "1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연주하는 브람스가 달라진 건 그동안 새로 배우고 연주했던 브람스의 작품과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 현대에서 갖는 의미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정립한 덕분이에요. 지난 10년간 함께 연주했던 수많은 연주자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배웠던 음악적 경험도 영향을 미쳤겠죠."

지휘자 라하브 샤니와의 첫 호흡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봄소리는 "음악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깊고, 진중하면서 무게감 있는 연주를 하는 지휘자다. 그가 연주한 브루크너와 말러,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협연곡으로 브람스를 제안했다. 로테르담 필·라하브 샤니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하면 시너지가 엄청날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c)Kyutai Shim, 롯데문화재단 제공
K-클래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김봄소리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단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얍 반 츠베덴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5만 명의 관객을 열광시켰다.

올해 하반기에는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BBC 프롬스와 LA 할리우드 보울, 파리 오케스트라에 데뷔한다. 덴마크 국립 교향악단(지휘 파비오 루이지)과 녹음한 칼 닐센 바이올린 협주곡은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발매된다. 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소프라노 박혜상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2021년 DG와 전속 계약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해외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것을 느껴요. 세계가 한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요즘을 살고 있어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를 가더라도 한국인 단원을 만날 수 있고, 한국인 팬이 많아 찾어주니까 낯선 나라와 도시에서도 따뜻한 고국의 정을 느끼며 감사하게 활동하고 있죠."

김봄소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소통과 공감이다. "5살 때 정경화의 공연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신비로운 악기에 매료된" 그는 "음악이 가진 강렬한 힘에 홀리듯 빠져들어서 부모님을 졸라 악기를 선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쁨에 들떴던 것도 잠시였다. "바이올린이 호락호락 소리를 내주는 악기가 아니란 것을 금방 알게 됐고 처음 소리를 내던 순간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닌 기괴한 소리가 줬던 충격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바이올린은 늘 내 안에 있지만 꺼내기 힘든, 내 자신도 모르는 나의 내면, 그리고 상상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해 준 존재다. 솔직한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며 "바이올린을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내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소통과 공감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라고 했다. "소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과 영감이 생각보다 우리 삶에 큰 위로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음악을 함으로써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치와 역할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봄소리는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 ARD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세계적인 국제 콩쿠르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한때 있었던 '콩쿠르 사냥꾼'이라는 별명에 대해 그는 "세계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별명이라 그때의 간절하지만 무지했던 열정도 생각이 나고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며 "단시간 내에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훈련과 무대 경험을 쌓고 싶다면 콩쿠르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c)Kyutai Shim, 롯데문화재단 제공
그는 바둑 애호가(아마추어 4급)로도 유명하다. 대학(서울대 음대) 시절 바둑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동경대학교와의 교류전에도 두 차례 출전했다. "초등학교 때 기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어요. 급수를 올리기 위해 열을 내며 바둑을 뒀죠. 바둑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고요. 대학 시절에는 어릴 적 즐거웠던 추억이 생각나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죠. 요즘은 가끔 선수들의 기보를 보거나 심심풀이로 문제를 풀긴 하지만 기력이 거의 다 죽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창호 기사가 전성기 때 보여준 무겁고 끈질긴 스타일의 기풍을 좋아한다"고 했다.

'음악과 바둑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봄소리는 "바둑 한 판에 기사의 기풍과 성격,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처럼 작곡가의 작품이나 연주자의 음반을 들으면 그들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며 "달리 말하면 음악 안에서는 자기 자신을 숨기거나 위장할 수 없다. 바둑과 음악은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봄소리'는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봄의 소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당당하면서도 힘찬,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찬 소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하는 음악의 소리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봄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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