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고대했던 엔데믹, 마냥 '자축'할 수 없는 이유

3년간 3천만 국민 확진에도 치명률 0.11% 방어한 건 의료진 헌신
新팬데믹 대비하려면 인력이 핵심인데…'간호법 대란' 보며 물음표
'낡은 의료법' 60년간 방치해 직역 간 갈등 키운 책임, 정부에 없나
처우개선 法대체물로 내세웠지만 해묵은 과제…PA 문제 등과 무관

지난달 31일 질병관리청 상황실 전광판의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내려가자, 기뻐하는 질병청 임직원들. 질병청 제공

3년 3개월. 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 상황실의 코로나19 위기경보는 '심각'에서 '경계'로 바뀔 수 있었다. 유월을 하루 앞둔 하향 기념행사에서 환호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며 팬데믹의 시작을 떠올렸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 만인 2020년 2월 말, 코로나 취재 지원차 파견됐을 때 가장 생소했던 건 날마다 2회(오전·오후)씩 진행된 브리핑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고 두려움은 그에 비례해 컸던 시절이다.
 
코로나가 '우한 폐렴'으로 불렸던 당시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한 정보들이 속속 공개됐다. 'OO번째 환자'의 성별과 연령대, 감염 추정 경로, 장소명 등이 실명으로 담긴 동선 등이다. 지역사회 유행 억제가 목적이었는데, 엔데믹 체제의 변화 중 하나는 당국이 더 이상 '접촉자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사 접근성을 높이고자 전국 최초로 세워졌던 서울역 임시선별검사소도 지난달 31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매일 수십만씩 확진된 작년 초만 해도 대기가 장사진을 이뤘던 풍경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예전엔 실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 이후에도 대중교통에서 '노마스크'를 찾기 힘들었다면, 요즘은 출근길 마스크를 아예 지참하지 않는 경우들도 본다. 제약이 많았던 방역을 벗어나 일상을 되찾은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엔데믹을 'K-방역'의 해피엔딩으로 간주하기엔 못내 찜찜함이 남는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박종민 기자

우리는 과거를 너무 빨리 잊는다. 5천만 국민 중 3천만이 넘게 확진되는 동안 누적 치명률이 0.11%(누적 사망자 3만 4800여 명)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방역 일선에서 '몸을 갈아넣은' 의료진의 헌신 때문이다. 두어 달 전 질병청이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에서 보고 듣기만 하던 '레벨D' 방호복을 직접 착용했을 때 느낀 갑갑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내 한여름엔 삼복 더위와 땀내 나는 습기를 견디고 혹한의 실외 검사소에서는 몸을 떨어야 했던 자원 간호사들이 오버랩됐다.
 
갑옷 같은 방호복 차림으로 확진된 할머니와 화투를 쳤던 삼육서울병원 이수련 간호사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대유행 당시 일부 대형병원 의료진은 사회 필수분야 종사자로 분류돼 자체 BCP(Business Continuity Plan)에 따라, 확진되고도 격리기간(1주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닷새만 쉬고 나오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의 전문의는 유행곡선이 커질 때마다 사직자가 속출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임 정부는 존경,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동작 사진·영상을 공유하는 '덕분에 챌린지'로 이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최전선에서 헌신한 의료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러한 감사와 응원은 응당 필요한 도의다. 다만, 개인적 사명감에 기댄 '존버'를 계속 강요할 요량이 아니라면 정부가 할 일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현재를 팬데믹과 또 다른 팬데믹 사이 간기(inter-pandemic)로 본다. 빠르면 4~5년 내 우리 의료체계에 도전이 될 만한 신종 감염병(Disease X)이 출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 국면에서와 같은 '임기응변'을 또 바랄 순 없다. 공공의료 비중이 10% 남짓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한국은 막대한 손실보상금을 지출하며 민간 병상을 쥐어짜왔다. 위중증 환자 수백 명도 감당하기 버거워 한때 공터에 컨테이너 병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설립 규모 축소 논란이 일었던 중앙감염병병원 건립부터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현실이다.
 
박종민 기자

무엇보다 상시병상 확충 이상으로 중요한 건 '인력'이다. 건물과 병동이 있어도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으면 실(實) 가용병상으로 볼 수 없다. 역량 있는 의료진을 늘리고 키우려면 이들이 안정적으로 근속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수인데, 최근의 '간호법 대란'을 보면 정부에게 이같은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단순히 법안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이 현안의 관계 당사자인 보건복지부는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부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야당 주도로 통과된 직후에는 "매우 안타깝고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한 활발한 여론전도 펼쳤다. 특히 페이스북 등 SNS에는 대한의사협회 등 간호법 반대 단체의 주장('직역 간 협업이 깨져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오히려 돌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등)을 상당 부분 인용하기도 했다. 직역단체 간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를 중재해야 할 주무부처로서는 이례적인 태도다.
 
법이 제정되면 곤란한 이유를 전파하는 데엔 매우 적극적이었던 반면 양측의 접점을 찾기 위해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잘 와닿지 않는다. 왜 간호사들이 그토록 의료법과 독립된 별도의 법안을 원했는지, 간호사 출신인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왜 당론과 반대되는 찬성표를 던졌는지,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은 어떤 이유로 마음과 달리 선뜻 '준법투쟁'에 나설 수 없었는지…복지부는 이 질문들에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간호법의 핵심이 '업무영역 명확히 하기'라는 대한간호협회의 일관된 주장에 대해서는 "의료법 등 관련 법제를 재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하지만, 막상 뚜렷한 대안은 없다. 의사·간호사 등의 업무범위를 단편적으로 모호하게 규정한 의료법을 60년간 방치한 주체는 누구인가. PA 간호사 합법화에 대한 의견을 떠나,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극한 대치가 야기된 데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PA 양산의 원인이 된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 논의도 아직 답보 상태다.

폐기 수순을 밟게 된 법안과 무관하게 '간호사 처우 개선은 책임지고 완수하겠다'는 정부 입장도 다소 옹색하긴 마찬가지다. 3교대를 포함해 간호사 1명당 맡는 환자 수가 16명에 이르는 열악한 근무환경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당초 국제 간호사의 날(5월 12일) 예정됐던 간호인력 지원대책 발표를 일부러 국회 본회의 전으로 앞당긴 것도 진정성을 퇴색시켰다는 평가다.
 
한 간협 관계자는 "처우 개선이 이뤄지려면 업무 구분부터 명확히 하는 게 순서다. 단순 권고나 가이드라인 수준에 그치면 병원들이 알아서 하겠나"라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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