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는 이 소동이 북한의 우주발사체 때문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그렇지 못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7시 3분, 행정안전부가 경계경보 '오발령'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내기 전까지 22분 동안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쓸렸다. 서해 먼 바다를 지나간 '우주발사체'에도 이럴진대 만에 하나 실제 미사일이 서울로 날아왔다면 무슨 혼란이 생겼을지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전시든 평시든 작전을 하는 환경이 달라지면 거기에 맞게 방식, 즉 싸우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군은 그동안 북한과의 정면대치라는 상황에 맞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작전만을 신경써 왔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 꼭 물리적인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대도시를 덮칠 수 있는 '혼란'이나 '공포' 등 비물리적 공격까지 미리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해 차단해야 이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메가시티' 서울서 '공포의 22분'…1분 뒤 J얼럿 울린 일본과 한참 대조돼
2개 이상 도시가 생활, 경제 등 기능적으로 연결된 인구 1천만명 이상의 거대 도시를 '메가시티'라고 부른다. 우리나라가 도시 인구 집중 현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사실 다른 나라라고 안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38개인 메가시티는 2050년엔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도시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환경에서, 현재는 전시가 아닌데도 서울시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기관의 미숙한 대처가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에서 '공포의 22분'을 자초한 셈이 됐다. 행안부 중앙통제소는 31일 오전 6시 30분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라는 지령 방송을 보냈다. 백령면과 대청면에 경계경보가 발령된 시각은 6시 29분으로, 북한의 우주발사체를 군 당국이 탐지한 것과 같은 시각이었다.
그런데 '경보 미수신 지역'이라는 문구가 문제를 일으켰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령 방송에서는 경보 미수신 지역이 백령·대청면에 국한한다는 내용이 없다"며 "지령 방송이 떨어진 후 2분 뒤인 오전 6시 32분 시 민방위경보통제소에서 행안부 중앙통제소로 확인을 요청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우선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경계경보를 알리는 문자메시지조차 우주발사체가 이미 백령도 일대를 지나가고도 남았을 6시 41분에 발령됐다. 백 번 양보해 서울시의 경보 발령 명분이 옳다고 치더라도 이미 뒷북이 된 셈이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박휘락 특임교수는 "신속한 경보체제를 확립하고자 한다면 행안부 중앙민방위경보센터와 군 중앙방공통제소가 자동 연계돼 신속하게 전파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현재 사용하는 방송과 휴대폰, 문자·음성발송, 전화기, 사이렌 등 다양한 경보·전파수단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 대피소나 방공호로 지정된 건물 등을 전수 점검하고, 사람들이 버틸 수 있도록 급수설비와 비상식량까지 마련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국민 불편 우려 등으로 제대로 하지 못했던 민방공 훈련도 제대로 실시해야 하며, 횟수를 당장 늘리기 어렵다면 최소한 정부기관들 사이 협조가 필요한 상황을 가정해 지휘소훈련(CPX)부터라도 여러 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북한과의 전면전 상황을 가정해 대규모로 실시하는 자유의 방패(FS) 연습과는 별개로, 평시의 돌발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이뤄져야 한다.
작년엔 무인기, 이번엔 로켓, 다음에 뭘지는 '모른다'…'대도시' 맞춰 작전개념 발전 필요
물론 메가시티에 로켓이나 미사일만 날아온다는 법은 없다. 당장 지난해 연말 싸구려 무인기 한 대가 서울 시내를 휘젓고 유유히 북한으로 돌아간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그 다음은 뭐가 될지 모른다. 또다른 방식의 테러가 될 수도 있고, 물리적인 테러가 아니라 사이버 공격 같은 비물리적 공격이 될 수도 있다. 사이버 공격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10월 '카카오 대란', 이번 사건에서의 네이버 접속 장애 등 돌발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고 메가시티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문제는 메가시티에서의 작전이 기존의 야지 전투는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도시 전투보다도 더 복잡하다는 점이다.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인프라도 복잡하게 형성돼 있으며, 이런저런 시설들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누구나 혼자서 촬영과 전파가 가능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게 되면서 작전보안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작전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나 과실이 큰 파장을 낳기도 쉽다.
미국은 이미 2003년부터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저항세력을 상대로 하는 도시지역 작전에서 수도 없이 많은 아군과 민간인 피해를 냈다. 그 때문에 2010년대 초반부터 메가시티 작전 연구에 착수했다.
5월 23일 2작사가 경북대와 함께 주관한 '메가시티 환경 하 도시지역작전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정구환 작전기획과장(대령)은 "미래 도시지역에선 초광역권 통합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활용해 지상·해상·공중을 통합관제하고, 군 정보자산도 활용해 광역감시와 정찰을 병행하며, 통합관제시스템과 군 정보자산의 첩보를 융합해 위협을 식별하고 양상을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상에서 도로와 방범 CCTV, 해상에선 E-navi(해양수산부), 공중(항공망, UAM/드론 등)을 활용해 통합관제를 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으로 고도화된 기동수단이 통합된 작전부대를 최단시간 내 전개시켜 '레이저 외과수술'식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전력이 미숙하게 대처했다간 일이 더 크게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언할 수는 없지만, 예상을 하고 준비를 할 수는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라는 현재의 위협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미래의 위협은 북한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른 방향에서의 위협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는 일 또한 필요한 만큼, 북한에 국한되지 않고 '영역'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