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리베라시옹과 함께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에서 과학부 기자로 명성을 쌓은 그는 3부작 SF 소설 '개미'로 유럽에서 가장 대중적인 과학소설가로 이름을 알린다.
프랑스와 유럽권에서의 인기를 벗어나 비영어권 국가 중 거의 유일한 한국에서의 독특한 인기는 베르베르의 여러 소설에 한국적 배경과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을 자주 방문해 강연하고 독자들과 친분을 쌓는 보기 드문 해외 유명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실용주의 학문과 사회과학분야로 유명한 프랑스 카피톨툴루즈1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권위 있는 세계적인 언론매체의 과학기자로 활동하며 '천재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에 매혹된 한국적 계급사회 지향이 영향을 줬다는 박한 평가를 낸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과학 저널리스트를 거치며 취재와 탐구정신에 해박한 작가적 노하우와 복잡함 때문에 꺼리는 SF 장르를 흥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베르베르만의 필력, 기성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빠지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특징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SF 장르주의지만 과학적 정합성보다 공상적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 독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베르베르의 책이나 작가 성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가 펼쳐내는 소설들에서의 독창적 접근법과 필력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 그가 첫 자전적 에세이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Memoires d'une fourmi)를 출간했다.
여덟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남들처럼 철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나사 하나가 부족한 것 같은 다듬어지지 않은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그가 글과 친해진 것도, 학교신문을 창간하고 개미에 푹 빠져 있던 것도 날 것을 직접 경험하고 취재하고 탐구하던 경험 때문이다.
열입곱 살에 접한 프레데리크 다르는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법대에 진학한 이후 이 조언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 습관을 통해 단편 '개미의 제국'은 몇 달 만에 중편소설이, 이후에는 장편 대작이 되어 있었다. 모험의 결집체인 개미 이야기에 사람의 척추에 해당하는 뼈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건축 양식이라 여기는 대성당 구조를 도입한다.
특히 아미앵 대성당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재미삼아 이합체시 형식을 빌려 이야기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눈 밝은 독자가 찾아낼 수 있게 했다. 친구들에게 읽게 했지만 따분하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매일 같이 새로운 버전을 썼다. 제목도 '개미'로 바꾸고 전환매커니즘을 도입하고 서스펜스를 통해 각 챕터에 해당하는 객차들을 끌고 나가는 기관차 역할을 더했다.
사실 베르베르의 집념과 글을 쓰는 작법은 이 같은 끊임 없는 글쓰기 습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전개와 과정을 스스럼 없이 도입하고 수정하는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도 스물두 장의 타로 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각 챕터의 문을 열어 다섯 살 무렵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성장 서사의 시작과 끝을 뜻하는 '바보' 카드다. 카드 속 인물은 모험을 끝맺거나, 혹은 다시 시작하면서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난다. 데뷔 30주년이라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지점을 지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저자를 닮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를 거치고 경험한 이야기들은 베르베르 소설의 중요한 플롯이 되어 있고 인물들은 살아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은 캐릭터로 나타난다. 매년 10월 새 책을 발표하기 위해 위와 같은 엄격한 매일 아침 글쓰기 습관, 오후에는 취재와 자료조사, 그 이외의 활동을 하며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단편소설을 쓴다. 그렇게 지난 30년간 모인 습작과 취재물들이 수십 권의 책으로 써지고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다.
이 정도만 보면 '노력형 천재'라는 수식어로 그를 평가하기도 하면서 소재와 상상력을 풀어내는 '이야기꾼' 기질이 그의 작가적 신뢰도를 한층 높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그조차도 "여전히 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 새 책을 쓸 때마다 극도의 부담과 위험을 느낀다"며 글쓰기의 지난함을 토로한다. 하지만 결국엔 '이야기꾼' 베르베르는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쓸 생각이다. 내 삶의 소설이 결말에 이르러 이 책의 첫 문장처럼 '다 끝났어, 넌 죽음 목숨이야' 하고 끝을 알려줄 때까지"라며 자신의 재능인 '끈기'를 펼친다.
글을 쓰는 이들을 위한 지식 전수도 그의 중요한 일거리다.
그는 여러 강의를 통해 이 책의 구성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타로카드를 이용해 성장 소설식 서사를 짜는 방법, 우스갯소리, 마술, 대성당 구조를 활용한 서사 구축과 책 한 권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 딱 30초, 완벽한 아이디어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책임질 수 있는 실수는 예술적 선택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며 특이한 관점으로 글을 써도 좋고, 클라이맥스가 없거나 대화가 없는 글을 써도 좋고, 결말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알고 써야 한다고 주문한다.
과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베르베르는 잘 닦인 길에서 벗어나는게 두려워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기존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패착임을 명심하라고 꼬집는다.
"내가 쓴 글이 독자 의식을 드높일 수 있다면, 고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하고 가슴 벅찬 일 아니겠나."
이 책은 작가 베르베르를 이해하고 싶은 이에게는 참고서가, 창작자들이 허들에 갇혀 있는 순간이라면 좋은 지렛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