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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韓, 재정준칙 있어야 부채 감당"…나랏빚 얼마나 심각하기에 ②또 국회 문턱서 멈춰선 재정준칙…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끝) |
국가채무 증가세와 재정건전성 악화가 지속됨에 따라 재정준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정준칙이란 재정의 건전성과 관련된 지표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규범을 의미한다.
정부의 규모가 점진적으로 커진 데다, 경기둔화와 물가 상승, 코로나19 사태 등 각종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확대재정 정책들이 사용되면서 국가채무 증가 등 재정건전성이 악화됨에 따라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제도다.
전세계 90여개국이 도입하고 있으며, 채무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담당하는 국제통화기금(IMF)도 법적인 토대와 재정 목표, 준수하지 못했을 시 가할 수 있는 제재조치 등을 재정준칙의 구성요소로 정할 정도로 신경을 쓰는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튀르키예 뿐이어서 다수의 국책연구기관과 학계에서도 늘어나는 지출과 국가채무를 고려할 때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45% 이하 수준으로 유지하고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3% 이하로 유지하는 내용의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이 마련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재정준칙은 이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각각 추진됐지만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에는 기획재정부가 '한국형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박근혜 정부 때 보다 다소 완화된 60%로 높아졌지만, 통합재정수지비율은 -3%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전 발의 때처럼 좀처럼 진전이 없다가 2021년말부터 논의가 이뤄졌는데, 2020년에 발발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확장재정에 무게가 실린 데다, 이듬해인 2022년 3월에 대선이 예정된 탓에 재정건전성 확보보다는 선심성 공약에 무게가 실린 탓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자유시장경제 활성화와 민간 주도의 경제성장, 재정건전성 확보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난해 9월 재정준칙 법안이 나왔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3월 기재위 소위원회에서 축조심사까지 마무리했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그 후 한 걸음도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내 다수당이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정준칙 도입을 외치는 정부여당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은 현 시점이 정부도 인정했을 정도로 재정 활용이 필요한 시기이지, 재정을 축소할 시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재정준칙의 기준선인 GDP의 3%에 가까운 6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놓고는 건전성을 높이겠다며 뒤늦게 재정준칙 입법을 촉구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사경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재정준칙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사경법은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 중 최대 10%까지를 사회적 기업 등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은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세금으로 운동권 카르텔을 지원하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사경법은 정부가 공공 조달 시 야권 시민단체가 장악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서 전체 규모의 10%인 연간 7조 원 정도를 의무 구입하게 하는 법안이다.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 표밭인 운동권 시민단체에 퍼주기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선진국의 재정준칙을 살펴보고 오겠다며 유럽으로 나간 여야 기재위원들이 해외출장이 외유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과연 국회의 재정준칙 추진 움직임에 진정성이 있는 것이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들이 처음 방문한 나라가 국가채무비율이 한국의 2배가 넘고, 재정준칙 또한 지키지 않고 있는 스페인이었던 데다, 출장보고서의 내용 또한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을 되풀이하는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회 기재위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여론 눈치보기와 정쟁으로 30개월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번에는 외유성 출장 논란마저 불거지면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자초했다"며 "6월 국회에서도 제대로 논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