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눈물의 도시락 봉사 "꼭 임종 전, 아버지 눈망울 같아서…"

[배고픈 사회, 함께 우는 사람들⑤]
'거동 어려운 이들' 위한 무료 도시락…'작은 나눔'
노인 "도시락 오면 한 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
요일마다 팀을 나눈 봉사자는 모두 70명이지만, '역부족'
도시락에 감사 메모지들…"이제는 하나님 기뻐하는 일 해야"

지난 23일 오전 10시 30분쯤 고양시 일산서구 '작은 나눔'에서 양재현(77) 대표가 후원하는 회원들에게 보여줄 무료 도시락들을 사진 찍고 있다. 고무성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②[르포]"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③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④"'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⑤[르포]눈물의 도시락 봉사 "꼭 임종 전, 아버지 눈망울 같아서…"
(계속)

"돕고 사는 게 맞는 얘기지만, 나이가 있으니 우선 10년을 목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도시락 나눔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9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강성로 101 제일프라자 202호에 위치한 비영리 민간단체인 '작은 나눔'.

'작은 나눔' 양재현(77) 대표 부부를 비롯해 봉사자 14명이 위생모에 장갑, 앞치마로 무장한 채 벌써부터 점심 도시락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 준비해야 할 도시락 116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행정복지센터로부터 추천받은 이들에게 제공된다.

이날의 메뉴는 제육볶음, 시래기나물, 쑥갓무침, 김치 볶음, 밥이다.

작은 나눔은 정부의 지원 없이 양 대표 부부의 사비와 후원금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힘들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머리가 하얀 한 남성 봉사자는 바쁜 와중에도 "주방으로 승격했어? 낙하산 아냐"라며 옆 사람에게 농담을 던졌다.

양 대표는 봉사자들을 진두지휘하며 동분서주했다. 봉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제육볶음을 조리하는 봉사자 2명은 멀리서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봉사자들은 50~60대로 은퇴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부터 은행 지점장 출신, 야근하고 온 지하철공사 직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양 대표는 도시락을 사진 찍어서 후원하는 회원 120명이 있는 카톡 단톡방에 올렸다. 매달 1만원씩 돕는 회비가 잘 쓰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봉사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처음 14명이던 봉사자가 23명까지 늘어났다.

도시락 116개가 오전 10시 40분쯤 모두 포장됐다. 교회 집사인 양 대표와 함께 기도한 뒤 18명이 2인 1조로 배달에 나섰다. 나머지 5명은 설거지와 다음 도시락을 위해 미리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도시락들은 주엽동, 대화동, 송포동, 정발산동 등 7개 동에 배달된다.

'작은 나눔' 봉사자 박은영(63,여)씨가 지난 23일 김창선(77)씨에게 무료 도시락을 주고 안부를 묻고 있다. 고무성 기자

노인 "도시락 오면 한 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

기자가 따라간 6조는 도시락 15개를 맡았다. 이날은 장날이라 비상에 걸렸다. 시장 인근 골목길까지 주차된 차들로 인해 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정은(53,여)씨가 운전하고, 박은영(63,여)씨가 도시락을 배달했다. 박씨는 바쁜 와중에도 안부까지 묻고 늦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 앞에 걸린 빈 도시락 수거는 기자가 도왔다. 배달하는 15곳은 모두 허름하고 오래된 여관과 빌라, 소형 아파트였다. 어떤 곳은 바로 인근에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어 비교되기도 했다.

박씨는 문밖에서 "도시락이요"라고 외친 뒤 귀를 문 가까이 대고 인기척을 살폈다. 반갑게 문을 열어주는 곳들도 있지만, 아무도 없는지 문이 열리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허리 수술로 복대를 차고 나온 한 할머니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이사할 계획이라 이제 도시락을 안 보내주셔도 된다"고 웃으며 수차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문 앞에는 보행 보조기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박씨는 할머니에게 이사할 곳을 물은 뒤 배달이 가능한 지역이면 계속 보내주겠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박씨는 사회복지사를 만나자 기초수급자 등의 상황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운전하던 김씨도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차에서 내려 배달을 도왔다. 마지막 배달지에서는 말동무를 해드려야 하는 할아버지가 있다며 다 함께 찾았다.

지난 2010년 아들과 함께 탈북한 김창선(77) 씨는 "도시락이 오면 한 끼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에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며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고 이렇게 해준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집 문 앞에도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어려운 사정에도 봉사자들과 기자에게 자신이 받은 흑염소진액을 하나씩 나눠주며 반갑게 맞아줬다.

6조는 노인들의 안부까지 묻고 나오느라 배달하는데 1시간 50분이나 걸렸다. 도착하자 양 대표가 반갑게 맞으며 "점심까지 함께 먹어야 끝난다"며 연신 사양하는 기자에게 식사를 권했다. 음식은 식당을 해도 될 정도로 맛있었다.

박씨는 식사하면서도 양 대표에게 이사가는 할머니를 잊지 않고 배달할 수 있는지 묻고 노인들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지난 2021년 5월부터 '작은 나눔'에서 봉사한 박씨는 "하루는 도시락을 드리러 갔는데 그날따라 들어가고 싶어서 갔더니 누워있던 한 할아버지의 눈망울이 꼭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우리 아버지와 같아서 두려웠다"며 "복지과를 통해 119에 신고했더니 5시간 후에 무연고로 돌아가셔서 고독사를 막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고양시 일산서구 '작은 나눔'에서 대표 양재현(77)씨 부부. 고무성 기자

도시락에 감사 메모지들…"이제는 하나님 기뻐하는 일 해야"

오후 1시쯤 점심을 먹은 뒤에야 양 대표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양 대표는 '작은 나눔'을 하기 전에 인쇄 사업을 했었다. 기부도 했었지만, 잘 쓰여지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무료로 도시락을 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 등 때문에 계획이 10년이나 미뤄졌다. '작은 나눔'은 지난 2021년 3월부터 드디어 시작할 수 있었다.

양 대표는 교회 식당을 빌려서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 상가 점포 하나를 샀다.

처음에는 도시락 50개로 시작해 하루에 30만원이면 됐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이자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등 일주일에 3번씩 한 끼 도시락으로 100개를 넘게 준비하게 됐다.

이제는 1년에 5000만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이 가운데 후원은 1000만원 정도다. 요일마다 팀을 나눈 봉사자는 모두 70명이지만, 부족한 상황이다.

양 대표는 힘들어도 뿌듯할 때가 많다. 도시락에 담긴 메모지도 그중 하나다. 양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나게 해주신 음식 잘 먹었읍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제가 소화기가 약해 주로 찰밥을 조금씩 먹고 있습니다. 주시는 반찬만이라도 잘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모지들을 보여줬다.

양 대표는 "봉사할 사람들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며 "후계자가 생겨서 계속 '작은 나눔'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신앙인들은 기도하면 하나님 뭐 해주시라고 내 요구조건을 얘기한다"며 "이제는 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좀 해드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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