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미·중 경쟁이라는 패권 다툼 국면이 다른 나라들에게 '양자택일'을 광범위하게 요구하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22일 미국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에서 출판기념회 겸 귀국간담회를 열고 "냉전 시대 미·소 대립의 최전방이었던 한반도가 이제는 미·중 경쟁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에 대해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우선시해야하는 가치임에 틀임없다면서도, 다만 '번영을 위한 선택'은 좀 더 유연할 수 있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존'과 '번영'을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생존'을 잡아야하겠지만, 번영만을 따로 놓고 볼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번영을 위한 선택'과 관련해 그는 반도체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미국 중심의 '칩4'에 한국이 동참하는 것은 좋으나, 그걸 이유로 한국이 중국에 반도체 수출까지 못하게 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 수출이 줄어 한국이 지금보다 더 취약해 나라가 된다면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어쩌면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더 빨라질 수도 있는데 과연 어떤 것이 미국에 이익에 부합하겠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는 이를 '열린 동맹'으로 표현하며, 미국이 동맹국과 '전략적 선택'은 동일하게 유지하되, '전술적 선택'은 좀 더 유연성을 부여해서 결국 동맹국의 총역량을 더 키우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 전 총리는 '한미일 공조 강화'와 관련해서는 "그것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한·일도 중국과 안정적 건설적 관계를 확보해야 한다"며 "이건 한미일 모두의 숙제이자 동아시아의 안정과 변영에 기여해야 하는 중국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한미 공조 움직임'과 관련해 동맹으로서 한국의 목소리가 커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지금은 목소리가 커진게 아니라 아예 안들리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미국도 할말은 하는 동맹을 원한다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
이 전 총리는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해 국제질서가 매우 불안정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하느냐는 정부의 책임"이라면서 "미국의 동맹 국가로서의 역할만 다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국빈방문시 미 정보기관의 도청에 대해 오히려 미국쪽을 두둔한 점, 일본에서 강제징용 문제해결에 있어서 가장 일방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도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낙연 전 총리는 이날 출판기념회에 대담자로 자리를 함께한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가 "모두들 궁금할 것이라 생각해 내가 먼저 이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 묻겠다"고 하자 "지금 한국은 국내외적 위기를 충분히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은 귀국후에 많은 사람들과 상의하고 판단을 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정치가 길을 잃고 있고 국민이 마음 둘 곳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주요 정당들이 과감한 혁신을 하고, 스스로 알을 깨야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외부의 충격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기존 정치가 잘 해주기를 지금으로선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해 조지워싱턴대학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최근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낙연의 구상'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전 총리는 다음 달 초 독일로 넘어가 튀빙겐 대학과 베를린 자유 대학 등에서 강연한 뒤 6월 말쯤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