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함수(배 앞쪽)와 함미(배 뒤쪽)에 각각 해치, 즉 잠수함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갖추고 있다. 진해 군항 바다 위에 떠 있는 잠수함 위에 올라 해치 아래를 내려다보니 몇 미터쯤 돼 보이는 사다리와 함께 바닥이 보인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바닥을 밟으니 보이는 것은 승조원 침실과 복도였다. 물론 복도에는 각종 밸브를 비롯한 장비들이 보여 이 곳이 엄연히 군함 속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여기로 내려오셨으니 지금은 물 속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는 승조원의 말이 취재진을 반겼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17일 경남 진해에 위치한 '국가전략부대' 잠수함사령부에서 우리 해군의 최신예 3천톤급 잠수함인 장보고(KSS)-Ⅲ 도산 안창호함을 찾았다. 이와 함께 최정예 잠수함 승조원을 양성하기 위해 각종 상황을 부여해 훈련을 할 수 있는 종합훈련장도 찾았다.
비수 지니고 은밀 침투하는 바닷속 '공포의 존재'…"원 샷, 원 히트, 원 싱크!"
도산 안창호급은 우리나라 최초의 3천톤급 잠수함으로 기존에 독일 기술을 도입해 만든 장보고(209)급, 손원일(214)급과는 달리 설계부터 건조까지 우리가 직접 했다. 원자력 추진이 아닌 재래식 디젤 엔진 방식이지만,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탑재해 몇 주 동안 수중 작전을 할 수 있다.
거기에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대(VLS)를 6기 탑재, 적국 해안에 몰래 침투해 수백킬로미터 바깥에서 목표를 정밀타격할 수 있다. '3축 체계' 가운데 킬 체인(시한성 긴급표적 선제타격)과 KMPR(대량응징보복체계)를 바다에서 구현하는 셈이다.
취재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기존 잠수함보다 좀더 넓어진 내부다. 장보고급과 손원일급은 승조원 숫자에 비해 침실과 침대가 부족해, 당직자가 침대를 비우면 이를 다른 사람이 쓰는 식으로 공유하는 이른바 '벙커링'을 해야 한다. 선진국의 재래식 잠수함들도 대개는 마찬가지다. 원래 잠수함은 작을수록 탐지가 어려우므로, 적 해안에 은밀 침투한다는 특성상 원자력 잠수함(핵잠수함)도 일부러 작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급은 보다 넓어진 만큼, 혼자 방을 쓰는 사람은 함장 1명뿐이지만 승조원 모두에게 1인 1침대를 보장하고 있으며 여군의 탑승도 추진하고 있다. 잠수함 선진국들은 더 작은 잠수함에도 여군을 탑승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산 안창호급에서 처음 시도한다. 올해 선발과 훈련을 거쳐 내년부터 배치될 전망인데, 여군 장교와 부사관에게는 여군용 별도 1개 침실이 주어질 예정이다.
이어서 찾은 전투지휘실은 어느 군함이든 함의 모든 사항을 파악하고 지시하는 '두뇌'와 같은 곳으로, 잠수함 자체도 그렇지만 특히 전투지휘실은 언론에 공개되는 경우가 더욱 드물다. 도산 안창호급의 경우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때 이 곳을 찾은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 사상 최초로, 이 사진 속에서 봤던 현장을 취재진이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잠망경과 조함 콘솔 등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밖에도 해군은 커다란 군함을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는 범상어 어뢰, 해성-3 순항미사일 등을 탑재하고 장전해 발사하는 어뢰실도 취재진이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원래 그 나라의 국력을 대표한다는 해군 안에서도 잠수함사령부는 특히 '국가전략부대'라고 불리는데, 잠수함이 공포의 존재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수중에서 발사하는 어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 괌 근처에서 열린 'Tandem Thrust' 다국적 훈련에서 각국 잠수함들이 어뢰 실사격 훈련을 했는데, 첫 순서인 장보고급 잠수함 이천함이 표적이었던 미 해군의 배수량 1만 2천톤 규모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함을 단 한 발로 격침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장보고급이 수상배수량 기준 1200톤이니 문자 그대로 열 배쯤 큰 군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 셈이다.
원래 클리블랜드급은 덩치가 큰 만큼 어뢰 한 발만으론 격침시키기 힘들어 표적으로 쓰였는데, 실제론 한 발만에 바닷속에 가라앉았으니 미국을 포함해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나라 잠수함들은 이날 사격을 포기해야 했다. 미 해군은 이를 "원 샷, 원 히트, 원 싱크(One Shot! One Hit! One Sink!)"라는 말로 칭찬했고 이는 잠수함사령부의 전투구호가 됐다.
특수부대 못지않은 혹독한 훈련…해군 최정예 '국가전략부대' 양성하는 훈련장
잠수함은 사소한 실수가 사고와 함께 침몰로 이어지기 쉽다. 양성 기간도 오래 걸리는데, 1년 8개월 복무하는 수병을 잠수함 승조원으로 뽑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 잠수함의 승조원은 장교들과 함께 하사 이상의 부사관, 즉 각 직별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해군에는 농담 삼아 '장교와 수병 없이 CPO(상원사)들만 있어도 배는 항해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장교와 부사관 모두 잠수함 승조원이 되려면 몇 달씩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하므로, 해군은 유능한 승조원을 양성하기 위해 각종 시뮬레이터 등을 갖춘 종합훈련장을 만들었다. 로비에 보이는 글귀 "One Shot! One Hit! One Sink!"를 지나쳐 조함훈련장에 들어가자 웬 VR 같은 둥근 화면이 취재진을 반겼다. 조금 뒤에 알았지만 실제로 VR이었다.
잠수함도 기지로 들어오거나 나갈 때는 좁은 수로를 통과해야 하므로 수상 항해를 하면서 주변 배나 장애물, 지형 등을 잘 봐야 한다. 이럴 때는 함교 위에 올라가서 사람이 직접 쌍안경으로 주변을 보면서 조함을 해야 하는데, 사실 이는 수상함들도 똑같다. VR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조함훈련장의 시뮬레이터는 주변 360도 화면에 각종 군함과 지형, 날씨를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함교에 올라간 기자가 VR 쌍안경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근처에 뭐가 있는지 찾는데 갑자기 함교가 흔들린다. 시뮬레이터 속 바다를 보니 파고 2미터가 넘는 파도가 치고, 거기에 맞춰 함교도 실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서 찾은 조종훈련장에선 아예 잠수함 내부를 모사한 원통형 시뮬레이터가 배가 잠수하는 움직임에 맞춰 좌우, 앞뒤 45도까지 함체를 기울인다.
시뮬레이터라지만 밸브 하나라도 실제 잠수함과 다르면 실제 상황에서 사고가 날 수 있기에 내부는 실제 잠수함 전투지휘실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다. 여기에서 실제 잠수함을 타고 운용할 때처럼 상황을 부여해, 어떻게 조치하는지 훈련하고 평가한다.
잠수함은 같은 진해기지에 주둔하는 특수전전단 특전전대(UDT/SEAL)처럼, 단 한 척만으로도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수도 있는 전략 임무를 수행한다. 실제로 잠수함을 통해서 적지에 은밀하게 특수부대를 투입하기도 하니 둘은 최정예 부대라는 공통점뿐 아니라 실무적으로도 연관이 깊다.
그만큼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하고, 또 대우도 받아야 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세계를 눈으로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로비에 적힌 "최고의 잠수함은 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잠수함이다"는 글귀를 보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김형균 함장(대령)은 "도산 안창호함은 대양작전과 장기작전 수행에 최적화된 세계적 수준의 잠수함으로서 강력한 해양강군의 핵심축이자, 전방위 위협에 대응하는 국가전략무기체계"라며 "승조원 모두가 최고도의 결전태세를 확립하여 전략적 비수로서 우리 바다를 굳건히 지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