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양회동씨 분신으로 노동계가 윤석열 정부 규탄 집회를 1박 2일에 걸쳐 진행했던 것과 관련해 경찰이 건설노조위원장 등 5명에 대해 출석 요구를 하는 등 엄단 방침을 밝혔다.
지난 2월 집회의 불법행위까지 병합 수사하고 불법 행위가 있었던 단체에 대해서는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등 대응 수위를 한껏 높이면서 노동계를 더욱 자극하는 형국이다.
경찰청장, 이례적 급(急)담화 "혐오유발 집단 노숙"
윤희근 경찰청장은 18일 오후 1시 30분 대국민담화를 통해 "일상의 평온을 심대하게 해친 이번 불법 집회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양회동씨 분신 이후 노동계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경찰청에서 나온 사실상 첫 대응이었다.
윤 청장은 '1박 2일' 집회를 주최한 건설노조위원장 등 건설노조 집행부 2명과 민주노총 집행부 3명에 대해 오는 25일까지 출석을 요구했고, 불응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지난 1일 노동자 대회 집회와 지난 2월 민주노총 결의대회 관련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남대문경찰서와 중부서에서 각각 관련 사건을 병합해 수사해 수사 대상도 확대한다.
더 나아가 야간문화제를 빙자한 불법 집회는 강제 해산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번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가 유사 집회를 열면 아예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장이 직접 생중계로 공식 담화를 나선 것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 2월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당시에도 잠시 카메라 앞에 서긴 했지만 짧게 소회를 밝힌 수준이었다.
이번 노조의 '불법'에 대해 경찰청장이 이처럼 직접담화까지 나선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일부 야간 고성과 음주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사람이 다치거나 기물이 파손된 사건사고가 없었는데도 경찰청장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엄정 대응을 경고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고려대학교 김성희 노동대학원 교수는 "물리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부서진 기물도 없다. 고성이나 교통방해는 대부분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이라며 "경찰청장이 직접 나와서 '수사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는 발언은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창민 변호사는 "집회나 시위는 필연적으로 고성이 어느 정도 오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이유 만으로 우리의 공공질서를 해치는 것이라고 재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구찌(Gucci) 브랜드에서 뒤풀이 행사를 했는데 매우 늦은 시간까지 큰 소음을 발생시켜 문제가 됐다"며 "구찌 행사는 세련되고 세계적인 행사니까 괜찮고, 헌법상 보장돼야 하는 집회나 시위는 시끄럽고 보기 불편하니까 공공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보고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경찰청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확한 집회나 시위에 대해서는 금지나 제한할 수 있다는 게 집시법과 판례의 취지"라고 해명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1박 2일 집회가 진행됐던 지난 16~17일 사이 집회 관련 신고는 소음 103건, 교통불편 40건, 상담문의 18건, 기타(인도 점거, 흡연, 텐트 노숙으로 인한 통행 불편 등) 34건 등 195건이었다.
윤 청장이 담화에 나서 수위 높은 발언으로 노조에 대한 엄정 수사를 경고한 것은 계속해서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여론전에서도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도심에서 집단으로 노숙을 하면서 일부는 술에 취해 고성을 내고 추태를 부린 행위들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며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경찰의 중요 임무"라고 말했다.
"청장은 '건폭몰이' 사과부터"…노조 더욱 반발
민주노총은 윤 청장 담화 직후 논평을 통해 "윤 청장의 브리핑은 경찰이 윤석열 정부의 반노조 정책에 돌격대가 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라며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노동 탄압의 기조에 경찰이 스스로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초법적 권한을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청장의 브리핑에 규탄과 함께 공안탄압의 선봉대로 나서는 정권의 미친 몽둥이를 노동자, 시민의 지팡이로 바꿔내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도 입장문을 통해 "윤 청장은 건폭몰이 수사에 대해 양회동 열사 앞에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향후 대응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수사에 대한 압박과 1박 2일 집회 과정에서 일부 벌어진 논란으로 인한 여론 악화에 대한 부담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앞으로 출석 요구서가 왔다고 한다"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고성과 음주 문제 등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에 앞서 경찰청장이 먼저 (양회동 열사의 죽음 등에) 사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만 답했다.
대구대학교 이승협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이 정말로 경찰청장이 나서서 생방송 담화를 할 만큼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행위인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정부는 사회 갈등을 대화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원칙과 규칙으로만 모든 것을 풀어가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