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준다며 내쫓더니…" 임대료는 챙기면서 보상은 나몰라라?

[한 맺힌 47년…공동묘지에 버려진 사람들②]
'화전 면적 비율 대토(代土) 2만 6천 평 지원' 옛 김제군 공문 존재
당시 지역 언론, '김제군 화전민 이주 마을 대토 지원' 보도 일치
현 김제시, 관련 사실 인정 불구 무상 양여 불가 입장…주민 또 울려
황량한 공동묘지로 내쫓더니 임대료는 꼬박 꼬박 챙기는 행정

1976년 화전민으로 몰려 공동묘지로 쫓겨난 김제 금동마을 주민들, 임시 거처로 마련한 움막에서 자녀에게 음식을 떠 먹이고 있다. 주민 김창수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왜 우리를 공동묘지로? 무덤과 동거, 짓밟힌 인권
②땅 준다며 내쫓더니…반세기 가까이 나몰라라
③밀어붙이기식 화전정리, 행정도 우왕좌왕
④'화전정리법'의 빛과 그림자, 우려가 현실로
⑤사과와 치유을 위하여, 정치권·법조계의 시각은?

옛 김제군이 화전민으로 간주해 공동묘지로 내쫓은 당시 김제군 금산면 금동 마을 주민들에게 땅을 나눠준다는 공문서 등 관련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CBS취재 결과 확인됐다.
 
하지만 현재 김제시는 이같은 공식 문서를 확인하고서도 현행 법으로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또 다시 주민들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1976년 1월 28일자 옛 김제군 공문, 이주 대상 주민들에게 관내 성덕면 군유림 2만 6천평을 대토 지원하기로 했다고 적시됐다.

그러면서 국가 시책에 순응하는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가옥을 자진 철거하고 김제군 성덕면 군유림에 이주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덧붙였다.
 
1976년 김제군 성덕면 공동묘지로 쫓겨난 금동마을 주민들이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있다. 주민 김창수씨 제공

하지만 말이 군유림이지 당시 이곳은 묘지 340기가 자리하고 있는 김제군 공동묘지였다.

이처럼 공동묘지로 내쫒긴 금동마을 주민들은 한동안 움막살이를 하다 흙벽돌로 겨우 거처를 마련하며 모진 삶을 이어갔다.
 
주민들은 그동안 행정을 상대로 토지무상 불하와 주택신축지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현 김제시는 현재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지와 밭 등에 대해 매년 임대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런데 옛 김제군이 대토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오랜기간 방치했다는 정황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1976년 김제군 공문(좌), 1991년 김제군 문서(우)에는 금동마을 이주민에게 대토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주민 김창수씨 제공

1991년 작성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제군 문서(지목변경 등 논의 문건)에는 "군유림(공동묘지)을 화전면적 비율로 대토 분배 및 행정처리 이행을 약속 후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문서에는 토지분할 및 지목변경을 해결하지 않으면 집단민원 발생 우려가 있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1976년과 1991년 작성된 김제군 문서를 비교 분석하면 김제군이 이주 당시 주민들에게 땅을 주기로 했지만 15년이 지나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김제군이 주민에게 한 약속은 지역 언론에서도 그 내용을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1975년 12월 11일 자 당시 전북신문(현 전북일보), 김제군이 금동마을에 이주보상비 외 군유림 10ha를 제공해 이주시킬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 제공

당시 전북신문(1975년 12월 11일자 현 전북일보)은 "김제군이 보상비 40만 원 외 군유림 10ha를 제공해 이주시킬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김제시는 당시 주민들에게 대토 지원을 약속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행 법상 주민들이 요구하는 무상양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제시 소근섭 회계과장은 "그 시기에 대토지원 해서 해결했으면 좋은데 시일이 많이 흘러서 지금 현행법 상에서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자들을 죽은 자의 공간인 공동묘지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몰고 시일이 흘러서 이제는 약속 이행이 불가하다는 행정의 논리를 주민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1973년 촬영된 당시 김제군 성덕면 공동묘지 항공사진(원안). 국토정보지리원 제공

여기에 더해 힘겹게 공동묘지 땅을 개간해서 터전을 일구자 '무단 점유자'라는 딱지까지 붙이려고 해서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주민의 넋두리도 안쓰럽다.

폭압적인 행정에 약속 파기 그리고 얌체 행정까지 더해져 주민들을 두 번 죽이고 있는 셈.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이창엽 사무처장은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도 없는 공동묘지로 내쫓기고 거적대기로 겨우 자신의 보호막으로 삼았던 마을 주민은 철저하게 국가 권력에 의해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다"라고 주장했다.
 
공동묘지에 버려진 금동마을 사람들, 새롭게 일군 땅 '개미마을'에서 힘겹게 권리찾기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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