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아픔 여전한데…용산구청, 벌써 '지구촌 축제' 추진?

용산구청 '2023년 이태원 지구촌 축제 개최' 계획…각 부서에 공문 보내 협조 요청
유가족 "해결된 것이 하나 없는데 반갑게 받아들일 수는 없어…다만 상인들도 피해자"
"아이들이 사랑했던 이태원, 축제 반대는 않지만 안전·인파 관리 만전 기해주길"
상인 "죽음 앞에 축제는 미안한 일…언제까지고 상인들이 버티고 있을 수 없어"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전날 참사가 발생,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16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째 되는 날이다. 159명이 희생된 참사 이후 반년이 지난 시점,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은 오는 11월 '이태원 지구촌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용산구청은 상권 회복을 위해 해마다 벌이던 축제를 미룰 수 없다는 방침이다. 다만 참사 유가족이 여전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거리에 머무는 상황에서 대규모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음표가 붙는다.

1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용산구청 관광체육과는 지난 10일 '2023년 이태원 지구촌 축제 개최 안내 및 협조 요청' 공문을 구청 내부 유관 부서에 보냈다. 매년 10월 열리던 '지구촌 축제'는 올해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주말 이틀간 열린다.

용산구청은 올해 11월 '이태원 지구촌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관광특구 활성화를 주된 업무로 하는 관광체육과는 '2023년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이태원관광특구 일대에서 개최될 예정이니 업무에 참고하길 바란다"며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각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공문을 보냈다.

세부 예정 계획이 담긴 '이태원 지구촌 축제 추진 계획안'을 살펴보면 용산구청은 축제 기획에 4억 2천만 원의 예산을 투여할 예정이다. "10·29 참사 후 침체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해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우리 구 대표 브랜드축제를 홍보하고 내외국인이 다시 찾는 관광명소가 되도록 추진하고자 한다"는 문구도 명시됐다.

'이태원 지구촌 축제 추진 계획안' 문서.

계획안에 따르면 △이태원 글로벌 퍼레이드 △공연 △세계음식점·풍물전 △부대행사가 예정돼 있다. 취타대나 군악대 등이 참여하는 거리 퍼레이드와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 세계음식업소가 참여하는 음식전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올해 8월 '진행사항 1차 보고' 등을 진행해 9월부터는 지상파 등을 통해 언론 홍보를 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참사가 발생한 10월에는 축제 전반을 최종확인하고 축제 홍보를 하겠다고 예정했다.  

용산구청 측은 "'지구촌 축제를 위해 내부적으로 (계획)안이 나온 상태"라며 "매년 이 시기에 정례적으로 하던 행사다. 구청은 지역주민과 상인 지원도 중요해 이미지 회복과 상권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축제 개최 적절성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예산 확보를 하는 단계"라며 "전년도에도 지구촌 축제는 구청이 주관했고 문제가 없었다. 올해도 동일하게 안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지구촌 축제 계획에 대해서 상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도 감출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는 "이런 일(이태원 참사)이 일어났으니, 이번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조심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좀 착잡한 마음은 있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태원참사 고(故) 송채림 아버지 송진영씨는 "지구촌 축제가 상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이라면서도 "용산구청이 이태원 참사와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해결된 것이 하나 없는 상황에서 지구촌 축제를 한다는 것은 유족으로서는 마냥 반갑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어 "용산구청의 허무맹랑한 대처로 참사가 벌어졌고, 상인들도 피해를 봤다"며 "참사 불과 6개월 지난 상황에서 축제를 논의하는데 대해 용산구청에 (적절성을) 되물어보고 싶다"고 우려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故)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는 "아이들이 좋아했던 이태원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기억해 주기를 원한다"며 "축제 개최에 반대하지 않고, 다만 안전 사고나 인파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축제 개최 계획 소식을 접한 상인들도 복잡한 심경이다. 참사 골목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남인석씨는 "축제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죽음 앞에서 어느것도 해결이 안됐는데 축제를 벌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며 "(추모공간이나) 자리도 따로 잡아주지 못했다.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구촌 축제보단 참사가 일어난 핼러윈 날에 이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방식으로 행사를 기획해 (이태원을) 활성화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상권 회복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참사 옆 골목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강길규씨는 "유가족과 희생된 분들께 죄송하지만, 언제까지 상인들이 버티고 있을 수 없다"며 "축제를 개최하면 사람도 유입되고 빈 공실 등에도 새로운 주인들이 찾아오는 등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은 "유가족들은 가족들이 사랑했던 공간인 이태원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해왔다"며 "다만 용산구청이 과거 무엇이 잘못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확실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축제를 기획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어 "용산구청은 명확한 반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큰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며 "박희영 구청장이 구속되는 등 안전 관리 총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누가 총괄 책임을 지고 이걸 준비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전날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를 받는 박희영 구청장과 문인환 용산구청 안전건설교통국장, 유승재 용산구청 부구청장, 최원준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의 재판이 열렸다. 해당 재판에서는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 축제에도 용산구청 차원의 별다른 대비나 지시 사항이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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