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의장의 부채한도 상한 협상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미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의 '빈손 회동'에 이어 12일 예정됐던 양측의 만남은 '실무자 협의'를 이유로 연기됐다.
이르면 오는 6월 1일(X-date)로 예상되는 디폴트 시점을 고려할 때, 이제는 협상 시간마저 넉넉하지 않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상원은 오는 29일 메모리얼데이(미국 현충일)를 계기로 19~29일 휴회에 들어간다.
오는 19~21일은 일본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잡혀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불참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사실상 부채 상한 협상 시한 자체가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포함한 각계도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칠 심각할 영향을 경고하고 나섰다.
줄리 코잭 IMF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만약 미국이 디폴트에 빠진다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모든 당사자가 시급히 이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는 아예 디폴트에 대비한 '전시 상황실' 운영에 들어간 상태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디폴트 직전까지 내몰렸던 일까지 소환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이었다.
당시 극심한 여야 대립으로 부채 상한 논의가 거듭 공전하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해버려 세계 경제에 큰 충격파를 줬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디폴트와는 상관없이 협상 장기화만으로도 미국과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1년 정치 상황과 지금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2011년 하원을 탈환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에 맹공을 가했고, 부채 한도 협상은 파열음만 내다가 결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2023년 현재도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이다. 특히 매카시 하원의장은 친트럼프 성향의 극우 의원들의 반발로 가까스로 의장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이번 협상을 바이든 정부에게 쉽시리 양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여기다 지난 10일 CNN 타운홀 미팅에 출연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바이든 정부가 대규모 지출 삭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공화당 의원들은 디폴트도 불사해야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내부 결속을 독려하는 메시지와 다름 없었다.
바이든 정부로선 공화당의 정부 지출 삭감 주장을 받아들여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의 공약을 철회했다간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대선을 앞둔 상황이라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반면 미국이 정말 디폴트 상황이 맞이한다면, 이를 거세게 밀어부친 공화당에게도 역풍이 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부채 한도 협상도 최종시한 막판에 극적으로 성사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다만, 디폴트까지 가진 않았지만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2011년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미국이 주도한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계속해서 미국의 '디폴트'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 경제는 재앙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14일(현지시간) 분석기사를 통해 "채무 불이행의 영향은 아마도 복합적일 것"이라며 "연방 정부 지불의 중단은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고, 이는 주식 시장에 해를 끼칠 것이며, 이는 다시 경제에 더 많은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붕괴하는 주택 가치, 상승하는 이자율 및 불안정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 사이의 상호 작용은 계산하기도 어렵다"며 "일부 예측에 따르면 모기지 금리는 20% 이상 치솟을 수 있으며 경제는 2008년 대침체 때만큼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보유현금이 바닥나는 'X-date' 도달 전에 많은 경제적 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