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현실감 있게 거론되고 있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나 필립 데이비슨 전 인도태평양사령관 등 미국 고위 인사들은 구체적 시점까지 제시하며 중국의 대만 침공설을 주장한다.
중국도 지난해 10월 20차 당 대회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함으로써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 대만 포위 군사훈련으로 실질적 위협을 보여줬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은 미중 국력 차가 좁혀지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집권 연장을 위해서는 대만 통일 위업이 불가결할 것이란 분석에 근거한다. 목표 시점으로 거론되는 2027년은 시 주석의 4연임 여부가 결정되고 중국군 창군 100주년이며 대만 총통선거를 1년 앞둔 해이다.
향후 4년내 중국의 대만 침공설…부풀려진 측면도 적지 않아
우리로선 대만 사태 자체도 문제지만 한반도로 불똥이 튈 가능성 때문에 더 우려스럽다. 경제 측면에서만도 재앙적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대만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5%와 25%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타격은 훨씬 심대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우리 해군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대만해협 봉쇄로 인한 해상 물동량 피해만 따져도 하루 4452억원이었다.
안보 영향은 더욱 파괴적이다. 동맹국 미국의 손에 이끌려 대만 사태에 휩쓸려 들어가는 '연루의 위험'이다. 최대 교역국이자 바로 인접한 군사강국 중국을 적대함으로써 국가 운명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아직 상황은 다소나마 유동적이다. 일단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부터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중국은 표면적으론 거칠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맞설 실력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미국도 국내적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대만에서 2개의 전선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미·중 충돌 가능성이 낮은 셈이다.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도 변수다. 2000년 이후 여야가 8년(재임)씩 번갈아 집권해온 대만에서 차기 총통에 국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양안관계는 전혀 다르게 돌아갈 수 있다.
이영학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중국이 지난해 당 대회에서 2027년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를 언급한 것은 그때까지 (대만) 침공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능력을 갖추자는 선언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5년 제정한 '반국가분열법'에서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독립)시키려 하거나 평화통일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 '비평화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 보전을 수호한다고 규정했다.
이 연구위원은 "개인적 판단으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군사력이 충분치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대만) 침공을 시도할 것이고, 만약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군사력이 아무리 충분하더라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 연루 가능성…中, 한국 참전 바라지 않겠지만 낙관 어려워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미·중 모두에게 국내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생'을 의심하기도 한다. 물론 낙관은 금물이다. 내일 당장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세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대만의 불씨가 곧바로 한반도로 옮겨붙는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런 운명론적 시각은 자기실현적 예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명적인 타격은 피해갈 여지가 있다.
물론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출동하는 상황은 거의 불가피하다. 비록 미국은 2000년대 초반 '전략적 유연성' 협상 때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실적 구속력은 낮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대만 출격을 저지하고자 중국 북양함대가 서해로 출동하고 이로써 한국도 자연스럽게 연루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대규모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과 공군 중심으로 편제돼있다. 대만 유사시에는 해군, 해병, 공군 위주의 주일미군이 우선적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으로선 대만이 아무리 급하다 한들 한반도에서 전력 공백을 자초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우리로선 가능한 주한미군 차출을 늦춰달라고 요구할 명분이 있는 셈이다.
中, 주한미군 공격시 韓 참전 예상…한미일 동맹 자초하는 패착
만약 주한미군이 대만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즉각 보복에 나설 것인지도 신중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일각에선 중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미사일 등으로 공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한국 내 참전 여론에 불을 붙일 게 뻔하다.
주한미군이 대만을 지원한다면 전력 구성상 7공군의 정찰 임무쯤이 예상된다. 그런데 중국이 이 정도의 전술적 이유로 한국군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면 이만저만한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군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무엇보다 중국 수도권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다.
설령 중국이 그런 전략적 패착을 두더라도 주한미군 기지 공격은 주일미군 기지 다음이 될 것이다. 중국으로선 주일미군 기지를 타격해 일본과 대적한 뒤 한국마저 전장에 끌어들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자초하는 격이다.
설인효 국방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20일 동아시아연구원 논평에서 "한국이 개입된다는 것은 미·중 간 해상전투나 공중전투와 또 다른 양상으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개입하는 빌미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일단 상당히 자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北 도발 개연성은 충분…대만 지원 최소화할 명분될 수도
물론 북한이 중국 요청에 따르거나 스스로 대남‧대미 도발에 나설 개연성은 충분하다. 미중 충돌을 제재 완화와 고립 탈출의 결정적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의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 기조로 볼 때 한반도 상황은 대만 사태 이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중국에 일방적 열세인 대만과 달리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의 충돌은 참혹한 재앙이다. 대만해협의 불씨가 엉뚱하게도 한반도로 옮겨붙어 더욱 활활 타오르는 지정학의 악몽이다.
다만 한국이 지혜를 발휘한다면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반도 전력 공백에 따른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의 대만 지원은 물론 주한미군 차출도 최소화할 명분이 되는 것이다.
설인효 교수는 "대만 사태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동맹국이나 우방국들이 미국의 안보 공약을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군은 (전력공백) 빈틈을 막아주는 태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지 전력 일부를 대만으로 옮기는 것은 큰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대만과 가까운 위치, 동중국해 문제와의 연관성, 군사전력에서 주일미군의 연관성 같은 것을 볼 때 일본의 신속한 군사 개입과 미국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군사 상황에 상당히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 (다수) 보고서들의 일반적 결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