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결국 '찔끔' 인상?…난방비 이어 '냉방비 폭탄' 오나

류영주 기자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총 40조원에 달하는 비용 절감 자구책을 내놓은 가운데 한 달 넘게 지연된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이 이르면 오는 15일 확정된다. 당정은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약 7원가량 인상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베이비 스텝' 인상으로는 지난해 겨울 난방비에 이어 냉방비 요금폭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2분기가 시작되는 지난달 초부터 적용됐어야 할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은 13일 기준 한 달 이상 늦어졌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해 지난해부터 줄곧 에너지 요금 인상 압박이 거셌지만 요금 결정권을 쥐고 있는 당정은 선(先) 자구책‧후(後) 요금인상 기조를 고집한 결과다. 
 
지난해 32조원 규모 손실을 기록한 한전은 하루 이자만 약 30억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어 요금 인상을 통한 재무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요금 인상을 미루고 여당 내부에선 정승일 한전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주장까지 나온 점을 비춰보면, 전임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공기업 임원진 물갈이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지난 12일 한전과 가스공사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40조원 규모(한전 25조원‧가스공사 15조원)의 자구안을 내놨다. 정 사장은 한전의 자구책 발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결과적으론 당정이 의도한대로 자구책을 먼저 발표 후 요금인상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제시한 자구안은 임금동결과 부동산 매각 등 2가지 축이 중심이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해 1분기에 한전은 6조2천억원, 가스공사는 3조원가량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한전은 당초 예상 적자액인 5조원을 훌쩍 뛰어넘어 최대 위기를 맞은 상태다.
 
한전은 오는 2026년까지 총 25조원 이상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매각 가능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한다'는 원칙 하에 알짜 부동산으로 꼽히는 여의도 소재 남서울본부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강남 소재 한전 아트센터 및 10개 사옥에 대한 임대도 진행한다.
 
한전과 발전사 등은 2직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 인상분을 반납, 한전은 추가로 3직급 직원의 임금 인상분의 50%를 반납하기로 했다. 다만 노동 조합원인 직원들의 임금에 대해선 노조와 합의가 필요한 만큼, 임금동결에 동참해 줄 것을 노조에 공식 요청한 상태다.
 
가스공사 역시 사업비를 이연·축소해 총 15조4천억원 규모의 경영 혁신안을 마련했다. 임직원들의 임금 역시 자회사인 가스기술공사를 포함해 2급 이상 임직원의 올해 임금 인상분 전부를 반납할 계획이다. 성과급의 경우, 경영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다음달쯤 1급 이상은 전액, 2급 직원은 50% 반납할 예정이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남은 건 에너지 요금의 '인상 폭'이다.

이르면 오는 15일 당정협의 후 2분기에 적용될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하는데, 업계에 따르면 ㎾h당 7원가량 인상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올해 1분기부터 적용되는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올렸는데,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이번 인상폭은 1분기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h당 7원이 인상될 경우, 월 평균 307㎾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 전기요금은 5만9000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평균치인 5만7000원 정도에서 2000원가량 오르는 셈이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가스요금 인상 폭과 비슷한 메가줄(MJ)당 5.4원 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같은 소폭 인상으론 지난해 난방비에 이어 올 여름 '냉방비 요금폭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격 여름철을 앞두고 냉방기기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요금 인상으로 강력한 사전 신호를 주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절약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전기를 과소비할 수 있다는 우려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사실 요금 인상 타이밍도 지금은 살짝 놓쳐서 냉방비 요금폭탄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라며 "문제는 요금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한전이 송배전 설비 등 전기 안전 시설에 투자할 여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한전의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한 본질적인 대책은 원자재 가격과 연동해 요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것 말곤 없다"며 "공기업들의 자구책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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