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루카스 돈트 감독 "'클로즈'가 상처 치유할 수 있길"

외화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감독.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천재 감독'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루카스 돈트 감독은 탁월한 감각과 감성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창조하며 셀린 시아마, 배리 젠킨스, 션 베이커의 계보를 이어갈 차세대 감독으로 손꼽힌다. 첫 장편작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27세였던 루카스 돈트 감독은 황금카메라상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 퀴어종려상, 국제비평가협회상까지 총 4관왕에 올라 새로운 천재 감독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 그가 선보인 두 번째 작품이 바로 '클로즈'다.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작 '클로즈'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이 마주해야 했던 시리도록 아름다운 계절을 담은 드라마다. 친구들로부터 관계에 대한 의심을 받기 시작한 이후, 마음의 균열을 경험하게 된 어린 소년들의 감정을 섬세하고 세밀한 시선으로 쫓는다. 신체와 정신적인 변화를 겪으며 세상과의 관계가 확연히 변화되는 보편적인 인생의 한 시기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감독이 '클로즈'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치유'다. 영화사에서 전한 루카스 돈트 감독의 일문일답을 통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전하고자 한다.

외화 '클로즈' 스틸컷.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 데뷔작 '걸'이 제71회 칸영화제에 이어 전 세계적 극찬을 받았다. 차기작은 언제부터 구상했나?
 
칸영화제 이후 '걸'로 18개월 정도 투어를 다녔다. 데뷔작과 함께한 첫 경험으로 정말 설레는 시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넘어가야 하는 때가 오자 이제 그 작품은 잊고 과거에 묻어둬야만 했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는 페이지를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해야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걸'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했다. 나는 스스로가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비교적 빨리 깨달았다.
 
어린 시절과 10대 초반에 날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 전작인 '걸'에서는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회 규범과 꼬리표, 고정 관념으로 뒷받침되는 사회에서 개인이 자기 모습 그대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도 이야기하고자 했다.
 
'걸'은 신체적 측면을 다룬 영화이기도 했다. 외면적 어려움과 개인 내면의 분투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다. 나는 정체성 문제와 자신에 대한 타인(특정한 집단)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계속해서 탐구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개인적인 주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외화 '클로즈' 스틸컷.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 '클로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다.
 
졸업한 초등학교에 다시 방문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어린 시절 거주했던 동네에 위치한 학교에 다시 찾아가니 당시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기가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확연히 다르게 행동하는데, 난 항상 딱 집어서 어느 한쪽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됐고, 다른 남자아이와 가깝게 지내면 그들의 추측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신파적으로 들리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요즘에도 나는 어린 시절의 괴로웠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글로 써보고, 유년 시절의 세계에 관해 뭔가를 표현해 보고자 했다. 우정과 친밀함, 두려움, 남성성…. '클로즈'는 이렇게 시작됐다.


외화 '클로즈' 스틸컷.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 영화의 주요한 배경 중 하나가 꽃밭이다. 꽃밭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시골 지역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겐트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거기서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자랐다. 영화 속 꽃밭은 내가 자랐던 동네의 꽃밭을 기반으로 했다. 꽃밭을 통해 아이스하키의 세계와 대비되는 연약함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레오의 가족이 일하는 이 다채로운 환경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경도 달라지면서 유년 시절을 관념적으로 보여준다.
 
가을이 오면 꽃을 자르는데, 이는 상당히 무자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화사한 색감도 사라진다. 계절의 변화는 어린 시절의 화사한 색감과 꽃이 사라진 땅의 갈색, 검은색 톤 사이의 확연한 단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이런 대비를 강조함으로써 어린아이가 슬퍼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겨울이 지나 꽃을 심으면, 색은 다시 다채로워지고 미래와 희망이 다시 움튼다. 삶은 계속된다는 약속과 희망을 알리고자 했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주 초반에 집필했다.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색깔을 미학적 도구로 쓰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외화 '클로즈' 스틸컷.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 '걸'에서도 그랬지만 '클로즈' 역시 신체와 신체의 움직임이 마치 안무 같이 느껴진다.
 
나는 어린 시절 댄서를 꿈꿨다. 춤을 출 때면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글쓰기 역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춤만큼 나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화에서 인물의 몸짓은 관객과 소통하는 특별한 수단이다. 영화를 공부할 당시 다른 친구들은 전부 영화 제작 분야에서 실습했지만, 나는 안무가들과 협업했다.
 
'클로즈'에서 레오와 레미가 침대 위에서 보여주는 친밀함, 손으로 치고받으며 싸우는 모습 그리고 영화 후반부 레오의 모든 움직임을 제한하고, 가리고, 무겁게 짓누르는 아이스하키장의 모습까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인물의 몸짓, 신체적 움직임을 떠올린다. 나는 영화에서 시각적 움직임이나 사운드를 통해 소통하길 원한다.

 
▷ 이번 영화에서 레오와 레미를 연기한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의 연기가 돋보였다. 두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운명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첫 장면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덴 담브린을 만났다. 안트베르펜에서 겐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그때 에덴은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에덴에게 레오 역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제안했는데, 에덴이 날 알아봤다. '걸'에서 주인공을 연기했던 빅터 폴스터와 같은 무용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캐스팅 과정에서 많은 아이를 만났고, 그중 40명을 뽑은 뒤 두 명씩 짝지어 오디션을 보도록 했다. 에덴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이 짝을 이뤄서 연기하는 순간, 둘 사이의 특별한 교감이 느껴졌다. 두 친구는 영화 속 장면의 감정에 푹 빠져들었지만, 거기서 빠르게 빠져나올 줄도 알았다. 어린아이다운 모습이다가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접근할 땐 어른 같았다.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외화 '클로즈' 스틸컷. 찬란·㈜하이스트레인저 제공
▷ 영화의 제목인 '클로즈(Close)'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친밀감'과 '닫힘'을 동시에 내포한다고 볼 수 있을까?
 

'클로즈'는 '딥 시크릿'(Deep Secrets)이라는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 책에는 '친밀한 우정'(Close friendship)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레오와 레미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클로즈'라고 하면 갇혀 있는 상황이나 가면을 쓴 모습,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없는 상태를 쉽게 떠오른다. 영화에서 두 소년의 친밀감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관찰'되면서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잃으면 떠나버린 그 사람과의 끈끈하고 다정했던 관계를 붙잡으려고 애쓴다. 일종의 철학적 난제를 맞닥뜨리는 셈이다.
 
▷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 친구들에게 바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내가 거리를 두면서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들을 배신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균열, 그리고 그 이후에 뒤따르는 책임감과 죄책감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청소년기를 향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짊어지게 되는 무거운 짐에 관해 보여주고 싶었다. 깊은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아물지 않는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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