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9일(현지시간) 전승절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어느 때보다 축소돼 운영된 전차 열병식에 이목이 쏠린다.
전승절 기념식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 승리한 전승일을 기념하는 행사로 러시아는 이날을 국경일로 지정해 매년 대대적으로 기념해왔다. 특히 이날은 러시아에서 새롭게 개발한 군사장비들을 전세계에 과시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 열병식의 양상은 달라졌다.
전쟁 첫해인 2022년 열병식에는 약 130대의 군사장비가 참여했지만 새로 선보이는 신무기가 없었다. 또한 T-80BVM전차 등 2021년에 선보였던 첨단 무기가 다수 누락되기도 했다.
2023년 열병식에서는 축소 범위가 더욱 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열한 전차는 고작 T-34 한대 뿐이었다. T-34는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탱크로 1940년에 만들기 시작해 1958년 단종됐다. 이날 열병식에는 군용기도 단 한대도 등장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SNS에 이 사실을 공유하면서 '현대 러시아 군사 장비는 모스크바의 전승절 열병식보다 우크라이나 전리품 전시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조롱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22년 8월 21일 수도 키이우 한복판에 전쟁에서 노획한 러시아 탱크들을 진열하기도 했다. 상당량의 러시아 군수자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됐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돼 이번 열병식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열병식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과거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불러왔던 우크라이나 전쟁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전승절을 러시아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와 국가 결속을 강화하는 행사로 활용해온 푸틴이 군사력 과시 대신 전쟁 인정을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외신들은 축소된 열병식과 푸틴 대통령의 연설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수장비와 병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열병식에 참석했어야할 군수장비들이 전쟁에 상당수 동원됐다고 분석했다.
열병식에서 전쟁 참전용사들의 영정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행진 취소가 이를 뒷받침한다. 드미트르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공격에 대한 예방적 조치"라고 행진 취소 이유를 설명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수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를 숨기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