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기시다, 정상회담으로 전방위 협력…12년 만에 '셔틀외교' 본궤도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12년 만에 이뤄진 양국 간 '셔틀 외교'(상대국을 오가는 정례 정상회담) 의미를 되새기며 안보, 경제, 사회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우리 전문가들의 일본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으며, 이달 중순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우리 국민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하기로 했다. 또한 미래세대 교류 및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하고 북핵 위협에 있어선 한미일 3국 공조에 공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한미 간 확장 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해 북한 핵·미사일 억지를 위한 한미일 협력이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尹 "셔틀 외교 복원, 양국 관계 정상 궤도 올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통해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 그리고 양국 관계 정상화가 이제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두 정상이 다시 마주한 것은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지난 3월 16일 이후 52일 만이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지난 2011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서울 방문 이후 12년 만에 이뤄지는 일본 총리의 양자 방한이기도 하다.

두 정상은 소인수 회담(39분), 확대 회담(1시간 3분) 등 총 102분간 머리를 맞댔다.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은 36분 간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우리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있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 역시 "한국 분들이 이 사안에 대해 이해해 주실 수 있도록 이번 달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며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말씀드린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후쿠시마에 시찰단 파견에 대해 "다음 주부터 협의가 구체화할 것이고 이번 달 안에는 (시찰이) 확연히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에 대해선 "의제로 포함되지 않았고 논의가 오고 가지도 않았다"며 "이 문제는 논의될 기회가 있다면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와 같은 입장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객관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도 국제사회의 여러 과제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으며,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우리 국민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하기로 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민간 차원과 미래세대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 간 인적 교류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해 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 간 항공노선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자는 것에 합의했다.

경제협력 역시 우리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우수한 소부장(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공조하고 우주, 양자, AI(인공지능),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와 R&D(연구개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북핵 위협에 있어선 대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달 중순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자 정상회담 등 3국 공조를 진행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지난해 11월 프놈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관련해 당국 간 논의 진행을 환영하기도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워싱턴 선언'이 한미일 간 협력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이 완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먼저 (한미 간) 이것이 궤도에 오르고 일본도 미국과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NCG가 정착되고 활성화된 이후 일본 참여를 추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가 막 만들어놓은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자체를 3자나 4자로 확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이해해주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양국 관계의 재확인과 지난 3월 도쿄 정상회담에서의 성과물에 대한 진행 상황 점검도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였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4일 우리 정부가 군벌 간 무력 충돌 사태가 벌어진 수단에서 일본인 철수를 도운 점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달라진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두 정상은 지난 3월 회담에서 합의된 외교안보 당국 간 안보 대화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간 경제안보대화, 재무장관회의 등 안보, 경제 분야의 협력체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환영했다. 양국의 대표적 비우호 조치였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의 원상회복을 위한 절차들이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또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이 정식 출범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도 공유했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우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층 더 깊어진 양국 간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도 우리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역시 "3월에 큰 한 걸음을 내디딘 일한관계 개선의 움직임이 본궤도에 오른 것을 확인했다"며 "다음은 히로시마에서, 그 이후에는 국제사회의 장을 포함해서 윤 대통령과 자주 만나서 신뢰 관계를 심화시키면서 일한관계 강화의 기운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기시다 "혹독한 환경, 슬픔 경험 가슴 아파"…尹 "진정성 있는 입장 감사"

주목됐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기시다 총리로부터 나왔다.

기시다 총리는 "3월에 윤 대통령께서 나타내신 결단력과 행동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며 1998년 10월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고, 이 같은 정부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정상회담 당시 했던 '과거사' 관련 발언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어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 6일에 발표된 조치에 관한 한국 정부에 의한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서 마음을 열어주신 데 대해 감명을 받았다"며 "저도 당시에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한 양국 간에는 수많은 역사와 경우가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온 선인들의 노력을 이어받아 미래를 위해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측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일본 총리로서의 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시다 총리는 양 정상과 소수의 참모들만 배석한 소인수 정상 회담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한국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요구한 바가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 감사하다"며 "이것은 한일 미래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회담 전 양국 참모진이 과거사 문제를 협의하거나 사전 조율한 적이 없다"며 "기시다 총리가 나름대로 발언을 준비했다가 자발적으로 말씀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많은 분'에 대해선 "판결금을 수령한 징용 피해자 유족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가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 등을 제안한 점 등을 함께 거론하며 "앞으로도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두 정상 부부 한남동 관저 만찬…2시간 동안 진행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한남동 관저에 기시다 총리 부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55년 전 외빈을 맞이하는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지어졌던 곳"이라고 관저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각 지역의 농수산물을 공수해 만든 전통 한식을 기시다 총리 부부에게 대접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가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만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만찬 메뉴로는 구절판, 잡채, 탕평채, 한우 갈비찜, 우족편, 민어전, 한우 불고기, 자연산 대하찜, 메밀냉면 등 한식이 테이블에 놓였다. 만찬주로는 우리 청주인 '경주법주 초특선'이 준비됐다. 사케를 선호하는 기시다 총리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만찬에서 두 정상은 한일 양국 문화와 스포츠 등 관심사를 공유하고 환담을 나눴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에게 "이달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도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좋은 말씀을 기대한다"고 제안했으며, 윤 대통령은 화답했다.

아울러 김 여사와 유코 여사가 이날 함께 관람한 진관사 수륙재(水陸齋: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에 공양을 드리는 불교 의식) 의식을 진행했던 동희스님이 히로시마 우리 국민 원폭 피해자 등을 위해 히로시마에 여러 차례 다녀간 인연과 관련해 공감하며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 부부는 히로시마 출신이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관저에 공식 초청된 두 번째 외빈이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관저에서 회담 및 오찬을 가진 바 있다.

정원 산책을 겸한 이날 만찬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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