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서울 방문 이후 12년만에 일본 총리의 양자 방한 형식으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서울에 온다. 방한 그 자체만 따지면 2018년 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지 5년만이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찾아 한일정상회담을 한 지 약 한 달만이다.
가속화된 한일관계 개선 기류에 따라 예상보다 빠르게 답방이 결정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국민적 관심사인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양국간 관계 개선을 강제로 촉진시킨 한미일 안보협력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2018년 해상자위대 초계기 위협비행 사건 등이 대표적인 포인트로 꼽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오는 7일 한국을 방문,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다. 형식은 실무 방문으로, 이보다 앞서 지난 3일에는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전보장국장이 한국을 찾아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윤 대통령을 만나고 갔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1차장이 미국을 방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먼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이 얼마나 될지가 주목된다. 지난 3월 우리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 우리 정부는 "컵에 물이 반은 찼다"며 일본 측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2개월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본 측은 일단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 대상국)에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한다고 밝힌 바와 달리, 지난 4월 발간된 외교청서엔 이처럼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혔던 부분이 아예 빠졌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해법'을 발표한 사실은 그대로 수록했다. 일본에 유리한 부분만 넣은 셈이다.
더군다나 해당 외교청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에서 노동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강제성을 그나마 인정하기는 한 기존의 '징용공(徵用工)' 이라는 말 대신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旧朝鮮半島出身労働者)'라는 용어를 만들어내 강제성마저도 숨기려고 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강제성을 희석한 표현이 또다시 되풀이된 데 대해 유감이다"며 "이는 일본의 일방적 억지 주장이며, 당연히 강제노동에 해당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한일정상회담 이후 이어질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보다 '성의 있는' 발언이 나올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또한 뜨거운 이슈다. 후쿠시마 1원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폭발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되었으나 원자로 건물의 균열 틈새로 지하수와 빗물 등이 유입돼 매일 140톤 규모의 '방사성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천여개의 저장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올 상반기부터 최소 30년간 태평양에 방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 내 방사성 물질들을 제거한 '처리수(treated water)'를 바다에 방류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를 쓰더라도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성 물질은 완전히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오염수'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상이한 상황에서 그나마 일정 수준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기관의 연구 결과를 참고하는 것 등이 있다.
IAEA는 4월 5일 일본 정부의 해양 방류 감시 체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는 지난해 11월 IAEA 전문가들이 일본을 방문해 현장 조사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일본의 모니터링 체계가 신뢰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오염수가 방류되었을 때 환경에 미칠 영향을 다룬 방사선환경영향평가(REIA)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IAEA 전문가들이 지난 1월 추가로 실시한 현장 조사와 현지에서 채취한 해양수 샘플 등에 관한 내용은 이번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IAEA는 일본이 올해 안에 오염수 방류를 개시하기 전까지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다른 여러 나라 국민을 납득시킬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셈이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측에 오염수 배출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해당 자료를 받아서 검토하고 분석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분석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한일관계 회복을 촉진한 직접적인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북한,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이다. 그러려면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양자협력이 필수적인데 둘 사이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한 사건이 과제로 남아 있다. 2018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위협비행 사건이다.
2018년 12월 어뢰와 대함미사일 등을 갖춘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해 공격 침로를 잡으며 근접 위협비행을 했는데, 일본 측은 도리어 우리 해군 함정이 P-1 초계기에 STIR-180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우리와 일본은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 등을 서로 공개하며 맞서다가 레이더 데이터 공개 등을 두고 흐지부지됐다.
당시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자 합동참모본부 서욱 작전본부장(이후 국방부 장관 역임)은 2019년 1월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에 분명하게 재발 방지를 요청했음에도 또 다시 이런 저고도 근접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 행위로, 일본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를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관련해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올해 3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 초계기가) 위협비행을 한 것은 맞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해군이) 레이더를 조사했는지 안 했는지가 핵심"이라며 "우리 입장은 레이더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일본은 (우리 해군이)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방부의 입장은 이 문제에 대해 한일 간 서로 입장이 달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고, (그래서) 실무협의를 수차례 했다"며 "한일관계 진전에 따라 앞으로 그 부분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문제가 우리 군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평행선'인 만큼 정상 차원에서 해결책이 마련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어떤 수준의 협의나 언급이 되느냐에 따라 이후 또다른 실무협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오랜만에 있는, 그것도 이른바 '굴욕 외교' 논란을 낳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본 정상이 한국을 찾는 만큼 시민사회단체 등의 항의 집회도 자연스럽게 예상된다. 경찰은 7~8일 이틀 동안 경력을 100%까지 동원할 수 있는 갑호비상령을 발령, 각종 돌발상황에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