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테니스 기대주 정윤성(25·의정부시청)이 안방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챌린저 대회를 무관으로 아쉽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홈 팬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단식과 복식 모두 4강 이상에 오르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윤성은 30일 서울 올림픽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ATP 서울오픈 챌린저(총상금 16만 달러) 복식 결승에 시미즈 유타(일본)와 출전해 준우승을 거뒀다. 맥스 퍼셀(호주)-우치야마 야스타카(일본)에 세트 스코어 0 대 2(1-6 4-6)로 졌다.
지난해도 준우승을 기록한 정윤성은 올해 더 높은 곳에 도전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대신 정윤성은 복식 랭킹이 현재 143위에서 128위까지 오를 전망이다.
너무 강한 상대였다. 2019년 서울오픈 우승자 퍼셀은 지난해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남자 복식 우승을 거뒀고, 우치야마는 정윤성의 파트너 시미즈를 잘 아는 상대였다.
퍼셀은 노련하게 시미즈의 백핸드 쪽으로 잇따라 강타를 집중했고, 우치야마는 전위를 점령하며 시미즈는 물론 정윤성의 상대적으로 약한 백핸드를 발리로 마무리했다. 정윤성도 복근 부상으로 완전치 않은 가운데 분전했지만 준우승으로 시상대에 오른 데 만족해야 했다.
다만 정윤성은 이번 대회에서 ATP 투어급 선수들을 상대로 가능성을 확인했다. 정윤성은 단식 8강전에서 링키 히지카타(141위·호주)를 2 대 0(6-2 6-3) 완파하며 챌린저 대회 3번째 4강에 진출했다. 정윤성의 ATP 단식 랭킹은 363위지만 141위인 하지카타를 압도했다.
4강전에서도 정윤성은 알렉산다르 뷰키치(142위·호주)와 1세트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비록 마지막 회심의 포핸드 다운더라인이 살짝 라인을 벗어나며 1세트를 내줬지만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다.
정윤성은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로 2살 위인 베테랑 뷰키치를 몰아붙였다. 다만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뷰키치의 노련함과 불운, 2세트 옆구리 근육 이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경기를 내줘야 했다.
대회를 마친 정윤성은 아쉬움보다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정윤성은 "괜찮다, 할 수 있다고 파트너를 격려하면서 경기했고 복식 결승 2세트 게임 스코어 4 대 4에서 잡았으면 시미즈도 긴장이 풀렸을 텐데"라면서도 "그런데 퍼셀은 워낙 잘 하는 선수고 우치야마도 평소와 달리 너무 잘 했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전날 단식 4강전 부상에 대해서도 정윤성은 "1세트에서 아쉬운 포인트가 많았고, 긴장도 돼서 아픈 줄도 모르고 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1세트 뒤 살짝 긴장이 풀리면서 왼쪽 옆구리에 느낌이 확 오더라"면서 "반대로 상대는 1세트를 따내면서 공격적으로 하더라"고 덧붙였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교훈이 적잖았다. 특히 '미스터 포핸드'로 불릴 만큼 주무기인 포핸드를 더욱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정윤성이다. "포핸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백핸드를 보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윤성은 "아무리 상대 선수의 백핸드가 좋아도 포핸드가 강한 것과는 압박감이 다르다"면서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포핸드기 때문에 더 많이 보강해서 상대를 위축시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윤성은 "백핸드를 위닝 샷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고 계속 돌아서 칠 수도 없다"면서 "그러나 포핸드는 어느 정도 포지션이면 계속 돌아서 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결국 강한 포핸드가 있어야 백핸드와 드롭 샷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단식 결승에서도 뷰키치가 중국의 신성 부윈차오커터(242위)의 강력한 포핸드를 동반한 공격에 우승컵을 내줬다.
정윤성은 포핸드 외에 멘털이라는 또 다른 강점도 지니고 있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자칫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정윤성에게는 전혀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정윤성은 "항상 우리나라, 특히 서울에서 하는 대회는 기분이 좋다"면서 "해외 대회는 없는 팬들도 많이 오시고 응원도 해주셔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걸 좋아해서 가족 앞에서 춤추고 그랬다"면서 "사람들이 그걸 좋아해주는 게 너무 좋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큰 경기에서 대담하게 나갈 수 있는 배포를 갖춘 셈이다.
서울오픈을 마친 정윤성은 1일 개막하는 광주오픈 챌린저에서 다시 첫 우승에 도전한다. 이후 부산오픈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정윤성은 "광주나 부산오픈 단식 성적이 좋게 나오면 윔블던에 출전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무엇보다 올해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이에 정윤성은 "국가대표로 뽑힌다면 단식이든 복식, 혼합 복식이든 꼭 금메달 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군 문제가 해결되면 해외 투어에 다닐 여건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윤성은 "아시안게임 이후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 뛰는 게 목표"라면서 "몸 관리 잘 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내 최고의 포핸드를 자랑하는 정윤성이 주무기를 더욱 연마해 올해 목표를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