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9시간제 파동'으로 움츠렸던 윤석열 정부가 2024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전세 역전'을 꿈꾸고 있다.
한동안 '노동조합 때리기'로 보수 결집을 노렸던 정부가 노동계 주요 이슈인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을 노려 다시 노동계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최저임금의 시간'…정부, 노동계 향한 '반격' 조짐
집권 초부터 '노동개혁'을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는 최근 노조 회계 투명성 문제, 건설 현장 비리 문제 등을 내세우며 노동계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왔다.
하지만 정작 노동개혁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근로시간 개편을 놓고 이른바 '주69시간제 파동'을 겪으며 일보후퇴가 불가피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가동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노동계를 향한 반격에 나설 정부의 보수 집결을 위한 승부처가 될 것인지 주목된다.
이미 최임위는 전례없이 이르게 첫 회의부터 파행을 겪었다. 지난 18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1차 전원회의는 공익위원 간사인 숙명여자대학교 권순원 교수의 자격 논란으로 끝내 열리지 못했다.
권 교수는 정부 노동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으로서, 논란을 일으킨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주도한 인물이다.
양대노총은 회의 직전 권 교수의 행보를 지적하며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권순원 공익위원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박준식 위원장과 권 교수 등 공익위원 9명이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
회의 파행 이틀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노동계가 특정 공익위원의 경질, 사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날 파행으로 무산된 제1차 전원회의는 다음 달 2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저임금 '1만 2천 원'?…'업종별 차등화'가 진짜 '쟁점'
이처럼 최임위의 갈등이 빠르게 격화된 배경으로, 노동 정책에 있어 초조해진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정부의 실책으로 노동개혁 추진에 빨간 불이 켜진데다, 여당의 총선 전략까지 불이 번지지 않으면 다행일 상황이다. 정부가 관련 입법예고를 잠정 연기하며 뒤늦게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건설노조 압수수색, 노조 회계 투명성 조사 등 정부의 대(對)노동 강경 기조가 최저임금위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홍준 경영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노동조합이 소수의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일탈적·약탈적인 성향을 가진 수사대상으로 인식한다"며 "(최저임금 논의 과정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정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산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업종별 차등화 정책'은 경영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윤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이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업종별 차등화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최저임금 인상률을 예년 수준에 가두고, 중소기업 업주·자영업자 등 일부 여론을 지지세로 끌어들여 이듬해 총선 전에 분위기 반전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구대학교 이승협 사회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결국 소상공인, 중소기업 업주들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최저임금을 낮게 가져가고, (위기를) 돌파할 생각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논란과 달리, 정부가 업종별 차등화 정책을 강행 처리하더라도 위험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시간 논란과 달리 찬반 여론이 대등한 수준이고, 정부가 중소기업 업주, 자영업자 등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계층을 지지세력으로 포섭할 수도 있다.
일하는시민연구소 김종진 소장은 "최저임금 금액은 표면상 쟁점이고 올해 정부 목표는 업종별 차등화 정책"이라고 단언하며 "정부가 (최저임금 1만 2천 원) 금액 논쟁을 먼저 붙일 것이냐, 업종별 차등화 정책을 뒤늦게 내놓을 것이냐 등 정부와 노동계의 수싸움 여파는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6~7월 중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업종별 차등화는 최저임금위 29명 중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 (정부 의도대로) 처리할 수도 있다"며 "현 정부가 낼 수 있는 유력한 카드"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업종별 차등화 정책은 공정거래법상 가맹거래 업체로 한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거의 적용을 받은 주69시간제와 다르게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한 달 전 MZ노조 부위원장이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한테 득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인터뷰한 점을 감안하면 (청년층의 의견을 경청한다는) 명분도 살 수 있다"고 짚었다.
'대화 단절' 노동개혁…'총선 승리' 위한 정치적 구호로 전락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동개혁을 완수하려면 노조를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노조와 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노동개혁 방향과 내용의 잘잘못을 떠나서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현 정부는 사측 의견만 듣고 노동계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다"며 "이해 당사자가 배제된 정책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총선에서 노동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압도적인 정당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텐데 정부 노동정책이 매우 일방적인 데다가 사용자들의 요구에 많이 치우쳐 있어 국민들 시각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을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