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 주당 평균 22시간 가족돌봄…60%는 우울증 호소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첫 실태조사…'주15시간 이상' 돌봄 39%
중증질환(26%)·장애(24%)·치매(12%) 등…가사 부담 4배 이상
"1인분의 삶도 벅차"…우울감 유병률 7~8배·미래계획은 '언감생심'

질병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주당 평균 약 22시간을 돌봄에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돌봄기간은 약 4년에 달했다. 이들은 일반 청년에 비해 우울감을 느끼는 비율이 7~8배 높았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훨씬 낮았다.
 
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4월부터 두 달에 걸쳐 중증질환·장애·정신질환 등이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13~34세 4만 3832명을 설문 조사했다. 같은 해 7~9월에는 가족돌봄청년으로 확인돼 조사에 응한 8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도 실시했다.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으로 주당 15시간 이상 돌봄을 부담하는 비율도 39%에 달했다. 가족 중에서 돌봄 대상 가족을 가장 많이 돌보고, 전반적인 돌봄 상황에 대해 책임지는 '주 돌봄자'는 매주 32.8시간을 돌봄에 쏟았다.
 
이들의 주당 희망 돌봄시간은 14.3시간으로 실제 돌봄시간과는 약 7.3시간의 괴리가 있었다. 주 돌봄자도 19.2시간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13.6시간의 차이가 났다.
 
가족돌봄청년이 돌봄에 헌신하는 기간은 평균 46.1개월(주 돌봄자 54.7개월)로 조사됐다. 절반 이상은 2년 이상 돌봄을 제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제공

돌봄을 받는 대상은 할머니(39.1%)가 가장 많았고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22.0%)와 할아버지(22.0%), 기타 친척(21.7%) 순으로 나타났다. 대상자들의 건강상태는 △중증질환(25.7%) △장애인(24.2%) △정신질환(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11.7%) 순(복수응답 가능)으로 파악됐다.
 
영 케어러들의 구체적인 활동은 '가사'(68.6%)와 '함께 시간 보내기'(63.70%)에 주로 집중됐다. '병원 동행·약 챙기기'(52.59%)도 물론 이들의 몫이다. 옷 갈아입히기와 세안 및 목욕 돕기, 용변 보조, 자세 바꿔주기, 식사 돕기 등 가장 기본적인 일상(자기관리 돕기·39.14%)도 이들의 손길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동 돕기'(38.40%)도 언급됐다.
 
이렇다 보니 가사활동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한 가족돌봄청년은 약 34.4%로, 일반 청년(8.5%)의 4배 이상이었다.
 
"가족돌봄이라는 걸 하나 얻으면 그거 없이 사는 게 너무 자유로워 보이는 거예요. 1인분의 삶을 사는 게, 또래들 만날 때 그 괴리가 너무 컸던 거 같아요. 저는 저 자신도 신경 써야 하는데 누군가 한 사람을 더 계속 신경 써야 되고 그러니까 그 '2인분'을 감당하는 것,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저는 그게 제일 힘들었고… ."(가족돌봄청년 조모씨) 
 
보통 학업과 취업 등에 분주할 나이대지만 이들에겐 '꿈'을 꾸는 것도 사치다. 응답자 5명 중 1명 이상(약 22%)은 삶에 불만족한다고 답변했는데, 일반 청년(약 10%)의 2배에 이르는 비중이다. 주 돌봄자는 약 32%로 이 비중이 더 높았다.
 
"할머니가 치매로 인해서 이상행동을 하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어요. 무기력해지고 우울하고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다시 긍정적인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면서…"(박모씨)
 

일반 청년과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유병률. 복지부 제공

무거운 돌봄부담은 영 케어러의 마음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로 일반 청년(약 8%)에 비해 7배 넘게 높았다. 주 돌봄자는 그 비율이 8배 이상(약 71%)으로 뛰었다.
 
"제가 엄마 병원에 있는데 친구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수강신청을 제가 한 게 있는데 너가 혹시 빠지면 자기가 그거를 대신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가는 길이 다르구나'…그때 이제 자퇴를 하게 된 것 같아요."(임모씨)
 
앞일을 내다볼 여력도 없다.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한 가족돌봄청년 비율은 약 37%로, 주 돌봄자는 47%의 비율을 나타냈다.
 
이들이 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는 대개 '온라인 검색'(42.6%)이었다. 그밖에 지인(32.7%), 공공기관(29.9%), 복지·종교기관(25.7%), 학교(16.2%), 인쇄·홍보물·언론(9.4%) 등으로 나타났다. 
 
복지 지원이나 돌봄서비스를 하나라도 받거나 이용 경험이 있는 비율은 각각 59%, 53%로 50%대를 넘지 않았다.
 
세부적인 복지지원 내용은 '의료비 지원'(30.0%)이 가장 많았다. 생계비 지원(27.4%), 주거비 지원(24.1%), 장학금 지원(23.3%), 문화·체육활동 지원(22.8%) 등은 비교적 고르게 나타났다. 돌봄서비스로는 '재가방문·시설이용 서비스' 이용률(41.6%)이 최다치를 기록했다. 이동 지원(18.8%), 식사지원(17.9%), 보조기기지원(16.8%), 가사지원(16.4%), 돌봄가족지원(15.2%) 등도 꼽혔다.
 
돌봄서비스에 전액 또는 일부 비용을 지출하는 비율은 각각 9%, 26%였다. 비용 지출 시 월평균 금액은 62만 3000원이었다.
 
가족돌봄청년들은 '생계 지원'(75.6%)과 '의료 지원'(74.0%)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다. '휴식 지원'(71.4%)과 '문화여가'(69.9%)도 높게 나타났다.
 
다만 주 돌봄자는 문화여가보다는 심리 지원, 19~34세 연령층은 휴식 지원을 가장 원하는 것으로 조사돼 다양한 복지 욕구를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 제공

"또래는 한창 아버지·어머니가 활동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공감을 받을 수가 없고, 물어볼 데가 없는 거예요…그래서 통합적인 창구가 필요할 것 같고 특히 영 케어러들한테는, 어른이 없고 보호자가 없으니까요. 또래들이 공감할 수 있는 커뮤니티 지원도 필요할 것 같고,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심리상담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고…"(김모씨)
 
복지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반영해 가족돌봄청년의 부담을 완화하고 일상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학교·병원·지자체 등에서 적극적인 사례 발굴이 이뤄지도록 담당인력 대상 교육을 실시하고, 지자체마다 청년복지 업무 담당자를 지정하기로 했다. 가족돌봄청년이 복지제도 관련 상담을 원스톱으로 받게 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영 케어러가 돌봄, 심리·정서, 휴식 등의 지원을 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맞춤형 사회서비스 지원사업도 하반기 중으로 추진한다. 관련 계획은 상반기 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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