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책 쏟아지지만…핵심인 '보증금 회수'는 어쩌나

24일 오전 인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상담사들이 전세피해 임차인 보증금 대출 전화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가 늘어나면서 피해자 구제책과 재발방지책 등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구제 대책 핵심으로 꼽는 '보증금 회수 방안'을 두고는 여야의 입장 차이가 분명해서 관련 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특별법 마련엔 한 목소리…보증금 회수 대책엔 뚜렷한 온도차

야권은 물론 정부·여당까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마련에 착수하면서 피해자 관련 대책 마련이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전세사기 주택에 대한 공공매입에 미온적이었던 정부가 입장 선회에 나서며 여야 간 이견은 상당 부분 좁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 사항인 전세 보증금 반환 방안을 두고는 여야 간 이견이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전세사기 사건에 국가가 책임이 있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수해 해당 임차인에게 우선 보상하는 방안을 제안한 상태다. 이후 공공기관은 매입 채권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해 되팔거나 공공임대로 활용해 채권 매입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 골자다. 정리하면 정부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경매 등을 통해 이를 추후에 회수하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번 주 내로 관련 특별법 제정을 마치겠다는 목표다. 현재 거주 중인 임차 주택을 낙찰 받으려는 피해 임차인에 대해서는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고 낙찰 시 취득세 및 재산세 감면, 장기 저리 융자 제공 등이 담길 방침이다. 피해 임차인이 해당 주택에 계속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해당 주택을 매입한 뒤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다만 정부·여당은 '피해 보증금을 세금으로 직접 지원하면 그 부담은 모든 국민에게 전가된다'며 야권의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23일 "야당이 주장하는 공공매입은 국가가 피해보증금을 혈세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보증금 국가대납법인셈"이라며 "이는 막대 국민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결국 그 부담이 모든 국민에게 전가 되는 '포퓰리즘'이고 무책임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도 24일 "국가가 (피해 임차인 보증금을) 대납해서 돌려주고 매수 되든 말든 국가가 부담하면 모든 사기범죄에 대해 국가가 떠안는 선례를 남기게 된다"며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권권의 '선보상, 후구상' 대책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책위 김성주 수석부의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증금 채권 매입과 관련한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라면서도 "결국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부분인데 제도적 미비점이 전세사기 피해를 키운 만큼 정부도 이를 책임지자는 차원에서 보증금 채권 매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고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라면 무엇이든 정치권이 터놓고 논의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피해자 주거안정책 필요"…"보증금 정부 보전은 신중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사태와 관련해 전세 사기 매물의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17일 숨진 채 발견된 30대 A씨의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현관문 모습. 황진환 기자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함께 가야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정치권이 늦었지만 피해자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의견을 모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피해를 경감하기 위한 추가 대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만 피해 보증금을 정부가 직접 보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목소리가 나온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도록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이번에 정부가 보증금을 보전해주게 되면 전례로 남기 때문에 다른 대규모 범죄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정부가 다 피해 보전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며 "보증금 직접 보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매 유예 △우선 매수권 부여 △장기 저리 융자 제공 등 발표한 대책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 교수는 "은행권은 정부의 경매 유예 요청을 수용할 수 있지만 개인채권자까지 정부가 경매 유예를 요구하기는 어렵고 우선매수권도 언제, 어느 가격에 매수하느냐 등이 정교하게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원금 일부를 탕감해주거나 이자를 유예하는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경매로 해당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 선순위 권리가 있느냐 후순위이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는데 선순위 임차인이면 후순위일때 보다는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커진다. 하지만 또 다른 응찰자가 나타나 경합 할 경우 비싼 가격에 매입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매수권 역시 '최고가' 입찰자가 써낸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후순위 임차인은 경매에서 주택이 낙찰된다고 해도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재 피해 주택 매입 가격 산정 방식 기준에 대해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시장에서는 2~3차례 유찰 됐을 때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형태가 거론된다.

제한적으로 보증금 보전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은 "전세보증금보증보험 등 제도적 허점으로 무자본 갭투기가 가능했고, 이를 악용한 조직적인 전세 사기가 발생하게 된만큼 한시적으로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보전해주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세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정부가 모두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고 보증금 보전을 받을 피해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단체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생존권 찾아달라는 것"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모습. 황진환 기자

피해자들은 정부와 여당이 보증금 채권 매입을 반대만 하지 말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별도의 피해 대책을 제시하라는 입장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정부의 관련 대책 발표 이후 "보증금 채권 공공매입이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방안"이라며 "LH의 매입 임대로는 보증금 채권 매입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세사기 피해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보증금 채권 매입과 피해 주택 매입, 우선 매수권 부여 방안을 모두 제도화해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 박순남 부위원장은 "피해자들은 제도적인 허점을 악용한 사회적 재난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정부·여당이 보증금 채권매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은 분노하고 있다"며 "보증금 채권 매입을 반드시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재산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길게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 기관이 전세사기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전세사기 가담자들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면 (정부가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 매입을 한 뒤 구상권을 청구해서 상당 부분) 회수할 수 있다고 본다"며 "세금으로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통으로 변제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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