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인 사측이 노무사 선임권까지…"제삼자 개입 필요, 입법해야"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던 故 이용문(33)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남긴 SNS메시지. 유가족 제공

전북 장수농협에서 일하던 새신랑 故 이용문(33)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떠나기 전 그의 괴롭힌 신고를 받고 측이 선임한 노무사는 이 사건 가해자의 지인이었다. 또 노무사를 선임한 사측 대표인 조합장은 사건을 방임·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측 대표가 가해자나 사건 관계인일 때도 사측이 사건을 조사할 노무사를 선임하는 상황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로, 공정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그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제삼자가 노무사 선임 등 조사 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할 노무사의 선임 권한은 사용자가 노동부에 신고한 취업규칙에 따른다. 통상적으로 사측이 노무사 선임 권한을 갖고 있다.
 
근로기준법(제93조 취업규칙의 작성·신고)은 상시 1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측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전에 노동부에 신고한 취업규칙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면 된다.

이때 "사측이 노무사를 선임한다"는 규칙만 있다면 노무사 선임의 권한은 오롯이 사측의 몫이다. 가해자가 대표이사, 조합장 등 사측이더라도 이는 다르지 않다.
 
이번 장수농협 사건에선 사임이사와 센터장이 가해자였고, 조합장은 이를 방임·방조한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한 조사를 해야 할 노무사는 가해자의 지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가해자들이 선임한 노무사 권모씨는 조사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했고, 편향적 조사를 했다고 고용노동부는 판단했다.

전북의 장수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이용문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전북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대한 기자
 
공정한 조사를 위한 유일한 장치는 노무사의 사건 회피 제도인데, 권 노무사는 이 사건을 회피하지 않았다. 노무사 선임과 그 조사 과정의 공정성이 한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진 구조다.
 
노무업계는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으로 조합장이나 대표이사 등 사측이 가해자나 관계인으로 사건에 개입돼 있을 경우 '제삼자'가 개입해 공정하게 노무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영민 노무사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므로 양쪽 모두 이해관계가 있으면 안 된다"며 "이번 장수농협의 경우 제삼자인 농협중앙회에서 관여해 조사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반 사업장과 같은 경우 대표이사 등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면 제3의 기관인 노동부가 노무사 선임 등 조사 과정에 개입해야한다"며 "사측의 취업규칙에만 따르고 있는 부분은 입법을 통해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용문씨는 초·중·고 전라북도 레슬링 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가 됐다.

매사에 성실했던 이씨는 지난 1월 12일 자신이 일하던 장수농협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신혼 3개월 차였다.

2022년 9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그는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 달라"며 장수농협에 신고했다.

그러나 장수농협이 선임한 노무사는 가해자의 지인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심의위원회는 해당 노무사는 물론, 가해자가 위원으로 참석했다. 장수농협은 "도와달라"는 이씨의 마지막 목소리를 묵살했다.

유족의 고발장을 접수받은 경찰은 강요와 협박 혐의로 김용준 장수농협 조합장과 이모 상임이사,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을 입건하고 수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으로 장수농협 소속 이모 상임이사,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 정모 과장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판단하고 장수농협 측에 징계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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