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에 '울고 웃는' 장애인 가정…"시설만은 안 갈래요"

[장애인의 고려장③]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르포]자물쇠로 잠긴 시설…기자는 '장애인의 고려장'을 봤다
②[르포]'목욕재개' 주혁씨도, '싹싹한 하겸씨'도 시설에 남겨진 이유
③정부 지원에 '울고 웃는' 장애인 가정…"시설만은 안 갈래요"
(계속)

"장애인이 있는 가정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저희는 그런 뉴스 볼때마다 너무 이해가 돼요. 애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 이럴바에 같이 죽자는 그 마음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중증자폐인 광호(가명, 27)씨의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곁에 있던 광호씨는 아침 간식으로 생라면을 부숴 스프를 뿌려먹고 있었다.

광호씨는 라면을 먹으면서도 눈으로는 낯선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키가 180cm 가까이 되는 건장한 체격인 광호씨에게는 심한 공격성 자폐증이 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해 물건을 내던질 정도다.

광호씨가 어릴때만 해도 혼자서 돌볼 수 있었던 광호 엄마는 금방 힘이 부쳤다. 아들의 힘이 세지는 속도는 엄마가 늙어가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산책하던 아들이 어마를 밀치고 한강으로 뛰어들어 119를 부른 적도 잦았다. 아들이 '툭' 밀치면 엄마는 '휙' 나가떨어졌다. 엄마의 손목에는 넘어져서 찢어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광호 엄마는 손목을 보여주며 "아들이 밀쳐서 손목 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며 "당시 남편과 많이 싸웠다. '그냥 다같이 죽자'는 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아들을 걱정하던 엄마는 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광호씨는 이름이 두 개다. 집 밖에서 사용하는 법적 이름은 '광호'이지만 집 안에서 쓰는 이름은 '연우'다.

광호 엄마는 "원래 쓰던 이름이 너무 세서, 좀 약한 이름을 쓰면 나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두 개 쓴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신에도) 기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지원만 매달 '250만 원'…"그래도 산책도 못할 시설은 안 돌아가"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광호씨는 오전 7시부터 활동지원사와 함께 1~2시간 한강공원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 30분쯤 엄마의 차를 타거나, 지원사와 걸어서 평생교육센터로 향한다. 오후 4시까지 교육받고 집에 돌아오면, 1시간쯤 한강공원 산책을 나선다. 목욕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지원사와 교대해 광호씨를 돌본다.

광호씨 가족에게 주어지는 정부의 지원은 매 달 활동지원사 210시간 어치의 보조금과 장애인 연금 30만 원이 전부다. 문제는 광호씨를 돌보기에 이 정도 활동지원사 보조금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광호 엄마는 한 달에 250만 원 이상을 따로 지출하면서 추가로 활동지원사를 고용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서비스가 집중 제공된다는 공공임대주택인 '장애인 지원주택'도 광호 엄마에게는 '뜬구름'이다. 워낙 당첨되기도 어렵거니와 광호씨는 24시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지 못하는 시간 동안은 사비로 또 다른 지원사를 고용해야하는데 그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광호 엄마는 "지금 정부로부터 지원을 최대로 받아서 210시간인데, 이조차도 시급 1만 1천 원으로 지원사를 구하라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이 시급으로 (아들을 제어할 수 있는) 남성 지원사를 구하기는 어렵고, 최소 시급 2만 원씩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주택을 받으면 그만큼 활동지원사 보조금은 줄어든다"며 "그럼 나머지 시간을 채워줄 지원사를 고용하는데 더 큰 비용이 든다"고 덧붙였다.

빚이 늘어가면서 동시에 본인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광호 엄마는 광호씨를 장애인 시설에 들여보내자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3년 전쯤 광호씨를 시설에 보냈지만 10일쯤 있다가 쫒겨났다. 공격성이 강한 광호씨가 시설 기구를 부수고 지원사를 다치게 해서 수백만 원을 물어주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자는 고민도 했다. 실제로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광호 엄마는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장애인 10명 당 선생님 2명 정도 수준이다. 그 2명도 여성인 경우가 많아 (아들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격성이 강한 중증장애인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산책인데, 시설과 병원을 가보니 도저히 산책을 할 수 없는 곳이더라. 이런 곳에 아들을 두지는 못하겠다고 남편과 상의했다"고 덧붙였다.
시설과 탈시설 장애인들의 하루 일과. 탈시설 장애인들의 하루에는 '산책'이 있다.

90도로 굽었던 허리…시설 나오자 1주일만에 펴졌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장애인 지원주택'에서 만난 중증 발달장애인 서지원(32)씨는 들뜬 기분이었다. 서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산 호수공원 산책을 할 생각에서다.

서씨의 모친 임현주(59)씨는 "아이가 어렸을 적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이 공원을 자주 산책했고, 그래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고 말했다.

서씨는 2011년부터 약 10년 동안 시설에 거주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씨가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홀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임씨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어 시설에 보내야 했다.

'탈시설'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2020년 3월 서씨가 폐렴을 앓자 시설에서 쫒겨났다. 이전부터 시설에서 "나가달라"는 말을 들어왔던 임씨는 탈시설을 결심했다. 2020년 5월 18일 완전히 시설을 벗어났고, 같은 해 8월쯤 지원주택에 선정돼 현재는 다른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시설을 나온 서씨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 시설에서 연신 땅만 쳐다보다 90도로 굽은 허리는 시설을 나오고 1주일 만에 꼿꼿이 펴졌다. 사람의 눈을 못 마주치던 습관도 금세 고쳐졌다. 같은 공간을 뱅글뱅글 돌던 불안 증세도 사라졌다.

시설에서 몸무게가 28kg이었다가 탈시설 이후 40kg대로 회복한 모습. 임현주씨 제공

시설에서 나올 때 체중이 28kg였던 서씨는 탈시설하고 2주가 지나자 40kg대로 금방 불었다. 설렁탕과 도가니탕을 좋아하는 서씨는 시설에 나오자 끼니마다 공깃밥 4공기씩 먹고도 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먹었다.

임씨는 "걸신이 들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시설에서는 애가 많이 먹으면 많이 싼다고 밥도 조금 주고, 정수기도 치워놨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수십 개의 약을 복용하고 매일같이 누워만 있던 서씨의 일상도 달라졌다. 서씨의 하루는 오전 7시쯤 기상하면서 시작된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8시쯤부터 1~2시간쯤 산책에 나선다. 이후 정오쯤 점심을 먹고 2~3시간 동안 오후 산책을 즐긴다. 귀가 후 목욕을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좋아하는 동요를 들으면서 하루를 마친다.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도 '숨통'

탈시설은 서씨뿐 아니라 임씨에게도 숨통을 틔워줬다. 서씨를 시설에 보낸 기간 동안 죄책감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던 임씨는 이제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시설에 있을 당시에는 면회를 가면 애가 울고, 매번 집에 같이 가자고 졸랐다"며 "약도 과다 복용해서 매번 누워 잠만 잤었다"고 말했다. 이어 "(탈시설 이후 자립한) 최근에는 반찬 투정도 하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본인 집(지원주택)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며 웃었다.

하지만 서씨의 변화를 불러온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씨의 장애등급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활동지원 시간을 긁어모아도 활동지원금은 월 350시간 어치일 뿐.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도다.

임씨는 "지금도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오후 6시 이후에는 (서씨) 혼자 지내야한다"며 "당장은 같은 집 거주자의 활동지원사에 기대고 있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24시간 활동 지원'으로 장애인도 '이웃'이 된다

자립 3년차인 자폐인 이동희(37)씨의 하루는 여느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오전 10시에 보호작업장으로 출근을 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한다. 퇴근을 하고 난 뒤에는 헬스, 수영, 트램펄린 등 여가 생활을 즐긴다. 저녁 시간에는 가장 좋아하는 광고 콘텐츠를 시청한다.

이씨는 지난 14일 서울 강동구에서 처음 만난 기자의 손을 꼭 잡고 연신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원주택으로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걸음이 빠른 이씨는 기자와 모친 최한숙(68)씨가 늦게 오자 한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퇴근 후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동희씨. 최한숙씨 제공

'내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최씨가 이씨의 홀로서기를 결심한 계기는 건강 악화였다. 2017년 최씨는 건강검진에서 신장 기능이 정상인의 반도 안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투석을 받으면 1주일은 내내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다음 1주일은 오롯이 아들을 돌봐야했다.

최씨는 그때부터 비슷한 이유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또 다른 두 엄마와 아들의 자립을 함께 준비했다. 우선 세 엄마는 전세금을 모아 세 아들의 거주지를 마련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면서도 거주자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며칠 만에 '방을 빼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어렵게 구한 집에서 약 3년여 동안 세 아들의 자립을 가르쳤다. 세 아들에게 밥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는 것부터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방법까지 온갖 살림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걱정을 가득 안고 매일같이 아들들을 찾아오던 엄마들은 점점 발길을 줄였다.

자립을 준비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서울시가 발달·지적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이씨는 '장애인 지원주택'을 얻어 자립에 성공했다. 지금은 지원사가 이씨의 출근과 오후 취미활동을 돕는다.
퇴근 후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동희씨. 최한숙씨 제공

최씨는 이제 장애인 자립을 돕는 전도사가 됐다. 최씨는 "장애인도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사회의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최근 자립을 계획하고 있는 가정을 만나 아들의 집에서 자립을 체험하도록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활동지원사를 24시간 지원해준다면 모든 장애인들이 충분히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씨는 시설을 향하는 장애인 가정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씨는 "장애인을 시설에 넣는 부모들도 만나봤는데 '시설이 좋다'는 부모는 없었다"며 "현실이 지옥이니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시설로 향하는 것인데 그곳은 답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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