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돈봉투서 인사청탁까지…법정서 드러난 '송영길 사단' 전횡

2021년 5월 2일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 박종민 기자

박빙과 신승.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를 수식하는 단어들입니다. '비문' 송영길 후보가 삼수 만에 '친문' 홍영표 후보를 0.59%p 차로 이겼죠. 하루만 전대를 늦게 치뤘어도 결과가 바뀌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습니다.

후폭풍도 컸습니다. 당대표에 오른 송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만년 비주류였습니다. 주요 당직에 인선할 의원들, 특히 다선의원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는다는 뒷얘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이때 눈에 띈 인선 중 한 명이 지금 민주당을 뒤흔들고 있는 이정근 당시 사무부총장이었습니다. 세력이 부족해 늘 '자기 사람'에 목말라 했다는 송 전 대표. 원외 지역위원장들, 특히 여성 정치인 영입에 각별히 신경썼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전 사무부총장입니다.
 
이렇게 꾸려진 '송영길 사단'이 전당대회 이전부터 정치권 인맥을 앞세워 각종 명목으로 뒷돈을 챙겨온 사실이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부총장의 재판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공개됐습니다.

이 전 부총장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연루자들에 대해 "정치적 동지"라고까지 하면서, 소위 돈을 대줄 만한 사업가를 소개해 주는 모습도 판결문에 여러번 등장하죠.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송영길'로 묶인 정치적 동지들의 일탈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돈 좋아하는 이정근의 정치적 동지들

연합뉴스

'돈봉투 사건' 피의자는 9명으로 파악됩니다. 이 중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인 강래구씨는 자금책 역할을 했고 이 전 부총장과 같은당 이성만 의원은 전달책 역할을 했죠. (※이성만 의원은 송 전 대표가 인천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시의회 의장이었습니다)

이들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뿌린 돈은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9400만원입니다. 이 돈은 윤관석 의원(송 대표 임기 중 당 사무총장) 등을 거쳐 50만원짜리(지역위원장급)와 300만원짜리(의원급) 봉투로 나뉘어 살포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각 지역구 사무실 실무진을 5명으로 잡으면 300만원은 한달 식대 정도로 추정됩니다. (※2008년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에서도 액수는 300만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역마다 돈봉투를 뿌려 선거운동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지역의 대의원들이 당대표를 선출하는 수도권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버스 대절 비용과 식사비 등 필요 경비를 충당하는 차원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만 당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당대회마저 비대면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이런 경비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개된 이 전 부총장의 녹취파일에 따르면 돈봉투를 마련해 뿌리자는 의견을 내고 자금 조성을 주도한 사람은 강씨입니다.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조직선거를 해 온 인물로, 이 전 부총장은 사업가 박모씨에게 강씨를 소개하면서 "돈 좋아하는 애"라고 언급한 사실이 판결문에 적시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성만 의원이나 수자원 감사나 나하고 다 '정치적 동지들'이기 때문에 앞장서서 다 해 줄 것"이라며 박씨로부터 소개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아 이 의원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2023.01.20 이정근 제2회 공판기일 中
검찰: 증인은 피고인(이정근)한테 한국수자원공사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지으니까 이를 설치할 장소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니까 피고인이 '이성만이나 수자원공사 감사(강래구), 이런 애들도 어차피 나하고 정치적 동지들이기 때문에 앞장서서 다 해줄 거야'라고 했고, 여기 수자원감사라는게 예전에 더불어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을 지낸 강래구씨를 말하는 건가요.

증인(사업가): 네, 강래구씨가 맞습니다.

(중략)

검찰: 증인이 돈을 준 이유가 피고인 도움으로 이성만을 통해서 한국남동발전 사장과 면담이 성사되고, 녹취서처럼 피고인한테 한국수자원공사 선임감사를 통해서 수자원공사 부지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1500만원을 준 건가요?

증인: 네.

 (검찰 측, 관련 녹취서 제시)  

검찰: 증인이 여의도 한 카페에서 피고인과 헤어진 직후 오후 3시44분경에 이뤄진 피고인과 전화통화 녹음파일입니다. 피고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빠, 두 가지. 하나는 수자원공사, 걔는 그런 걸 좋아하는 애라고 그랬잖아'라고 해요.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가 돈을 좋아한다는 얘기인가요?

증인: 네, 강래구가 돈을 좋아한다는 거에요.

박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의 부품을 수자원공사에 납품하려고 이 전 부총장에게 일종의 청탁을 했습니다. 이에 이 전 부총장은 당초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부탁하려고 하다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이성만 의원이 한국남동발전 관계자와 잘 안다고 판단해 이 의원에게 연락했습니다.

판결문에는 이 전 부총장이 이 의원의 소개로 연락한다며 박씨와 함께 찾아가겠다고 한국남동발전 관계자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까지 적혀 있습니다. 박씨는 별도로 2020년 9월 과천시 한국수자원공사 집무실에서 강씨와 태양광발전 설비 납품 관련 만남을 가졌습니다. (※박씨는 이 자리에 이 전 사무부총장이 함께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정근이 당선 전부터 '찜'했던 그 금배지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현지시간) 파리경영대학원 앞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이 전 부총장 등 일명 '송영길 사단'의 전횡은 21대 국회 개원 전부터 이미 시작됐습니다. 공판 과정에서 이들이 인사 청탁에까지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는데요.

사업가 박씨는 부품 납품을 청탁하기 전에도 이 전 부총장에게 한국남동발전 직원의 프로필을 보내며 승진을 부탁했죠. 이 전 부총장은 '그 애를 이성만이 (남동발전)소장과 직접 통화해서 얘기를 했다'고 말한 사실까지 공판 과정에서 공개됐습니다. 인사 청탁을 한 발전소 직원만 3명에 달하는데, 이 전 부총장은 그 대가로 고가의 명품을 골고루 챙겼다고 보고 재판부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 전 부총장과 강씨, 이 의원은 비단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여러 작업을 같이 해 왔습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이 그들 스스로를 '정치적 동지'라고 불렀던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송영길 대표 아래에서 친목을 다져온 사이기도 하고요. (참고 기사: [단독]송영길·윤관석·이정근, 전대 2년 전 中상해서 규합)
 
이들의 범행은 주로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윗선'의 이름을 팔면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사업가 박씨는 이 전 부총장이 "장관 달고, (대통령 비서)실장 달고 참 많은 사람 이름을 댔다"고 합니다.

"나는 유력 정치인 송영길 의원의 측근, 송이 곧 당의 주도적 위치로 갈 것", "내 뒤에 송영길 이런 분들이 있다. 나를 도와주면 나중에 사업적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스폰을 해달라"며 선거비용 요구하기도 했고요. 여기에 당시 원외 지역위원장이었던 이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치 자금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상당 부분 재판부가 받아들이기도 했죠.

2023.01.20 이정근 제2회 공판기일 中
검찰: 증인이 (총선) 사무실 찾아갔을 때 이정근한테 정치자금 천만원 줬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선거자금이 부족하니 필요하다, 친한 분들을 도와주면 증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천만원을 준 것이 맞나요?

증인(사업가): 그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이름을)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피고인은 대놓고 빨대 꽂고 빠는 것처럼 나한테 '훈남 오빠', '멋진 오빠' 하면서 돈만 달라고 했습니다.

검찰: 2년에 걸쳐 이런 상황이었던 것인데, 사무실에 방문했던 날도 그런 취지의 말을 하고 천만원 준 것으로 기억하나요?

증인: 그렇습니다. 사무실 가면서 하다 못해 뭐라도 들고 가는 것 아니냐. 정치인들한테 도움주면 나중에 그 사람도 도움 줄 테니 피로회복음료보다는 돈이 낫겠다 해서 천만원 준 거죠.

재판부: 총선에 출마한 사람 중에 이정근이 실명을 말한 사람이 있나요?

증인: 그게 이성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일상이 된 돈 요구…"'근'모닝, 오늘 아침 SOS 보냅니다"

청탁을 알선해 주고 그 대가로 돈을 챙겼던 이 전 부총장. 재판부가 인정한 금액만 10억원이 넘고, 2019년 12월부터 2022년 1월 사이 이 전 부총장과 박씨가 검은 돈을 주고받은 횟수는 32회에 달합니다.

이 전 부총장은 수시로, 집요하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돈봉투 사건'이 불거진 뒤 화제가 된 그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은 공판 과정에서 자주 공개됐는데, 몇 장면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정근 녹취파일 녹취 中
이정근: 오늘은 조금, 저한테 몇개만 주시면 안될까요 오빠.

사업가: 제발 부탁이니까 관리 잘 하셔. 몇 개 줄까?

이정근: 똑같이.

통화는 물론 문자로도 "오빠, 혹시 3개만 더 가능할까요", "3개, 4개 이렇게만 더 주시면 내가 진짜 그냥 마음 놓고 편하게 (청탁)할게요" 등입니다. 심지어 국회의원 후보 등록을 하던 날에도 "'근모닝', 오늘 아침에 SOS 보냅니다"라며 현금 이체를 요구하고, 공식 선거운동일 마지막날에까지 "사력을 다하고 있고 승리 기운도 느껴집니다. 5개만 보내주시길 간청드립니다"며 또다른 계좌를 보냅니다. 여기서 개수는 주로 천만원 단위를 뜻하고, 종종 억 단위일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도 적나라하게 돈을 요구하는 녹취가 가감없이 공개되자 본인도 민망했나 봅니다. 증언 중인 사업가 박씨를 노려보는 일은 다반사였고, 피고인석 책상을 내리치며 억울하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죠.

박씨를 향해 '쉿' 하는 제스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박씨도 "뻔뻔하게 압력도 아니고"라고 반발했고, 재판부도 "증인신문 도중에 피고인은 이야기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 전 부총장의 행위에 재판부는 내심 괘씸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재판부는 지난 12일 선고기일에서 "수사 과정에서 일부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공판 과정에서 대체로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했고 박씨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고는 검찰 구형(3년)보다 무거운 4년6개월형을 선고했죠.

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 이정근 판결문 中
…피고인은 고위 당직자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정치자금과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의 직무에 관한 알선 대가로 약 10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했고, 일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였다. 피고인은 그 과정에서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공무원 및 공공기관의 임직원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알선의 대상을 특정하여 장래의 구체적인 처분 내용까지 적시했으며, 일부 알선 행위의 실행에까지 나아가기도 하였다. (중략) 피고인은 사회 일반의 신뢰를 저해하였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훼손하여 민주 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치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다.
처음엔 백만원, 천만원, 삼천만원이었다가 어느 시점엔 사업가 박씨에게 1억 단위를 요구하기 시작했던 이 전 부총장. 그가 '부패란 눈덩이 같아서 한 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영국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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