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1932년생으로 평양 출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16년간 중앙정보부 북한분석관으로 일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방북'을 성사시키는 역할도 했다.
강 전 장관이 지난 18일 기자들을 만났다. 우리 나이로 90세가 넘은 강 전 장관이 기자들을 만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강 전 장관은 1시간 40분 넘게 북한문제와 한미일중 관계 등 정책 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지금은 대화 없는 대화의 시기, 확장억제의 구체화에 중점 두어야"
강 전 장관은 "지금은 우리나 미국이나 북한에 대화를 제의해봐야 안될 것"이라면서, "확장억제의 구체화에 중점을 둘 때"라고 밝혔다. "지금 특히 걱정하는 것은 대만문제"라며, "대만문제가 격화되면 중국은 반드시 북한을 이용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게 때문에 외교적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안 될 거예요. 미국이 하려고 해도 안 될 겁니다. 더구나 김정은이 우리 정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니까요. 따라서 지금은 대화를 제의할 시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시간이 지났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어요. 따라서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북한의 핵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밖에 없을 거예요. 한미확장억제,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중점을 둬야 할 때입니다. 대화 없는 대화도 대화입니다. 특히 내가 걱정하는 것은 대만문제입니다. 내가 중국에 처음 간 게 지난 1996년 대만해협위기 때입니다. 상해과학원의 초청을 받아 갔는데 그 때 처음 느꼈어요. 아, 대만문제가 북한문제이구나. 대만문제가 격화되면 반드시 중국은 북한을 이용할 거다, 그 때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핵을 보유한 北, 우리 군사력으로 북과 대화할 능력 없어"
강 전 장관은 "파워 없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며, 한미 확장억제를 강화해야 남북협상도 가능하다고 봤다.
"솔직한 얘기로 우리의 군사력 가지고 북한과 대화할 능력이 어림도 없어요. 안 돼요, 왜? 핵이라는 무기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한 우리의 통상적인 전력이 아무리 강해도 안돼요. 이를 제압하기위해서는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한미일 3국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공산주의 사회는 파워에 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따라서 파워가 없는 협상은 있을 수가 없어요. 파워를 뒤에 짊어지고 협상 장에 나가야합니다. 폭력, 즉 파워에 대한 (북한의) 신앙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이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2년 내가 했던 남북적십자 회담 등 남북대화는 박정희라는 강력한 파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파워라는 걸 신주단지처럼 믿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는 우리에게 힘이 없이는 백 번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핵 공유하되 핵단추를 누가 누를 수 있는지도 중요"
강 전장관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체 핵개발 주장에 대한 질문에는 "국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면서, 나토처럼 핵 공유를 한다고 할 때 "누가 핵 단추를 누를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핵을 개발한다는 건 대단히 어렵습니다. 개발 능력이 없거나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게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국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단히 전략적으로 정치적으로 움직여야해요. 단순히 미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외교 능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나토 5개국처럼 핵 공유를 하면 조금은 낫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핵 단추를 누를 힘이 우리도 있어야할 텐데 이걸 미국이 갖고 있단 말이에요. 나는 이번에 (미국 방문 때) 윤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선대 유훈을 충실 수행하는 김정은"
강 전 장관은 집권 11년을 넘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 주민들이 강압적 통치체제에 강한 저항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역사 문화적인 요인을 꼽았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와 아버지 때의 유훈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김정일은 지난 1960년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글을 썼는데,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통일로 보지 않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통일로 봅니다. 발해의 후예인 왕건이 태봉과 후백제를 무력으로 치고 신라에 대해서는 협상으로 병합해 통일을 이뤘다는 거죠. 이런 역사적 관점은 한·미·일에 대한 북한의 기본인식과도 통합니다. 김일성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김정일의 역사적 관점, 김정은의 핵 위협 이 세 가지가 통일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게 바로 유훈입니다. 앞으로도 그 유훈을 계속할 거라고 봅니다. (…) 북한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10일 밖엔 없었어요.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부터 소련군이 진주한 8월 25일까지입니다. 조선 봉건시대와 일제 식민지를 거친 뒤 바로 그런 통제로 넘어갔으니 북한 동포들이 언제 자유를 느껴봤겠나,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강압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니까 저항할 수가 없는 겁니다."
"기시다 日 총리 주변에 보수파 많지만 지식인 사회는 달라"
강 전 장관은 한일관계에 대해 긴 얘기를 했다. "일본 기시다 총리 주변에는 보수파가 많지만 지식인 사회는 다르다"며, "아시아 민주주의와 보편적 가치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가진 지식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13년간 일본에서 강의를 했는데, 일본에 가면 혼네(本心))가 뭔지를 (지인들에게 직접) 묻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제3자 배상안과 한일 군사정보보협정(지소미아) 정상화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이 대단히 높이 평가더라고요. 일본의 이익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이익, 아시아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인류보편 가치의 실현에 문제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이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이유는 한일 관계가 그 동안 너무 나빴다, 이건 결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유익하지가 않다, 이런 점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에 환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보수파가 많단 말예요. 지금 기시다 총리 주변에는 보수파가 많아요. 이들의 생각과 일본 지식인 사회의 생각은 다릅니다. 지식인들은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까지 다 제거하면 안 됩니다. 나는 일본이 우리 정부를 도와야한다고 얘기하는데 다른 게 아니예요.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한미의 군사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해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일본 재야, 즉 언론이 지원하는 부분을 생각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점을 일본 학자들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의 능력을 일본이 알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재야도 알고 있더라고요"
"새까맣게 들어왔다는 보고에 이제 살았다했어요"
강 전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분석관으로 활동할 때의 대표적인 일화도 소개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부대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사건을 2개월 전에 예견하고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일화이다.
"60년대 후반부터 북한에서 3인조, 5인조, 8인조 게릴라가 사방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휴전선을 넘기도 하고 해안을 넘기도 하고요. (북한이) 124부대를 개편하는 과정을 보고 뭔가 전략이 크게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거다 하고 결정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1967년 정초에요. 정초에 눈이 하얗게 왔는데 3명이 넘어왔어요. 그걸 보고 아, 하계작전이 아니라 동계작전이다, 동계 작전으로 들어올 때는 대규모로 들어올 것이라고 판단을 했죠. 이런 판단을 굳히고 그해 11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이 옆에 있다가 나가고 나와 대통령만이 단둘이 앉아 있는 상황에서 '정초에 대규모 게릴라가 서울로 올 겁니다'라고 보고를 했어요. 보고서 맨 밑에다가 '인민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음'이라고 썼죠. 보고가 다 끝나니 박 대통령이 '임자, 2시에 다시 해주게'라고 해요. 그래서 점심을 먹고 2시에 다시 들어가니 육해공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이 다 와있는 거예요.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이거는 대간첩작전이 아니라 전쟁이니까 국방부가 책임지라고. 국방부가 책임진다는 것은 대간첩 작전의 모든 권한이 중앙정보부에서 국방부로 넘어가고, 단순히 권한만이나라 예산도 넘어가니 (중정에서) 감정이 좋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정초까지 한 달 반가량 잠을 못 잤어요. 결재 맡으러 올라가면 선배님들이 '야 들어오지?'하고 물으니 이게 죽을 맛예요. 계속 안 들어오니 이거 어쩌란 말이에요. 정초가 됐는데 안 들어와, 일주일이 지나도 안 들어와, 열흘 지나도 안 들어와. 그런데 18일 밤에 '새까맣게 들어왔습니다'라는 상황실 보고가 올라왔어요. 아, 이제 살았다했어요"
강 전 장관은 최근 회고록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을 발간한 바 있다. 책에는 1960년대부터 중앙정보부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활동한 16년의 경험, 분석 보고서의 작성자가 아니라 사용자로 일한 98년 통일부 장관 시절의 일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지금도 메시지를 보내는 최근의 소회를 두루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