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정권이 바뀐 뒤 여권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이 직원들에게 최근 보고 누락과 관련해 "업무 보고를 확실히 하라"는 직무명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19일 권익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 위원장은 18일 오전 국·과장 회의를 열어 이같이 명령했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해 복종해야 한다'(57조),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 징계처분을 해야 한다'(78조)고 규정하고 있다.
전 위원장이 일반적인 지시가 아니라 이처럼 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직무명령'임을 강조하며 철저한 보고를 지시한 것은 주요 현안이 위원장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등 권익위 내 보고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직무명령에 대해 "모든 부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부 일부 보고 누락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가 있다고 본 전 위원장이 임기(6월27일)가 끝날 때까지 업무를 꼼꼼히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이 '직무명령'을 꺼내든 결정적 계기는 최근 부쩍 늘어난 부위원장(차관급)들의 외부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고충 담당인 김태규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 13일 해양수산 분야 제도개선 간담회를 주재하고 14일에는 경북 포항의 수협을 방문해 연근해·원양어선 선주들과 해양수산업 단체 대표 등과 만나 외국인 선원의 이탈(불법체류) 문제 등 현안을 점검했다.
또 부패방지 담당인 정승윤 부위원장은 14일 윤희근 경찰청장을 만나 마약류 등 주요 공익신고에 경찰과의 공동 대응을 확대하기로 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위원장의 직무에 대해 '위원회를 대표하며 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위원장이 지명한 부위원장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권익위 일각에서는 위원장에게 보고 또는 협의도 없이 이뤄지는 부위원장들의 대외 활동이 법을 어기며 위원장의 업무를 가로채는 것으로 임기 2개월여를 남긴 전 위원장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과장들에 대한 전 위원장의 '업무보고 직무명령'도 이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정무직은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부위원장 3명으로 전현희 위원장만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고 부위원장 3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했다.
해양수산 분야 제도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김태규 부위원장은 직원들의 업무보고와 관련한 전 위원장의 직무명령에 대해 "보고는 정상적으로 이뤄졌겠지만 600명 넘는 인원의 모든 업무 일거수일투족이 보고되는 것으로 구조적으로 어렵다"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김 부위원장이 포항을 찾아 선주들과 해양수산업 단체 대표 등과 만나 외국인 선원의 이탈(불법체류) 문제 등 현안을 점검한 것과 관련해 권익위 일각에서는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오랜 기간 판사와 변호사 활동을 한 당사자가 직접 해당 지역 민원고충 해결에 나서는 것은 향후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수도권에서는 부산이나 울산, 포항까지도 한데 묶어 보는 경향이 있지만 경북 포항은 다른 곳"이라며 "지역 사정과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