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출산은 기쁨으로, 돌봄은 다함께' 생명돌봄 국민운동⑥]
30년 동안 무려 '1만 명' 아이 받은 이재준 부산 미래여성병원장
현실이 된 산부인과 기피…"분만 가능 병원 계속 줄어"
그럼에도 아이 낳으려는 부부 있어 "난임부부 시술비 등 적극 지원해야"
국가 소멸 막으려면 "각자 이해관계 내려놓아야"

평일 오후 진료를 보고 있는 이재준 부산 미래여성병원장 모습. 김혜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계속)

"돌이켜보면 산부인과 의사 생활 30년 하면서 1만 명은 제 손으로 받은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아기가 자라서 생리통이나 임신, 출산으로 다시 저를 찾아올 땐 정말 고맙고 신기하죠."
 
한 명이 들어가서 두세 명이 나오는 신비한 곳. 산부인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년째 이어지는 저출생 현상으로 문 닫는 분만실이 많다는 요즘, 30년 차 베테랑 산부인과 의사인 부산 미래여성병원 이재준 원장은 오늘도 부산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산모를 기다린다.

'작은 기적'이 가득했던 산부인과 의사생활

이 원장이 산부인과 의사로 첫발을 뗀 1993년 산부인과는 선호도가 높은 과에 속했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낮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턴 생활을 마친 이 원장이 산부인과를 선택한 건 단순히 인기과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하면서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비로움과 특유의 역동성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원장은 "다른 과는 아픈 사람이 주로 찾는데, 임신은 질병이 아니기도 하고 한 명이 왔다가 두세 명이 나가는 광경도 신비로웠다"고 30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관절염과 같은 질병은 수술하고 치료해도 낫질 않아서 환자가 계속 병원을 오는데, 산부인과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시작과 끝이 정확하게 주어진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산모 연령대도 대체로 낮아 문제가 생기더라도 열심히 치료하면 금방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탄생이라는 기적의 순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데다, 산모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질 때면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새 생명을 향한 산모들의 갈망과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모성애는 이 원장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이 원장은 "10년 전쯤 심장이 안 좋은 산모가 있었다. 분만하는 '격동의 순간'이 심장에 가장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심장내과에서 아기를 갖지 말라고 했는데, 아기를 가진 환자였다"며 "위험하니 임신 초기 때 아이를 포기하라고 의사도 가족도 권유했지만, 산모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산모는 '내가 혹시 죽더라도 아기를 낳고 싶다. 내가 살고 아기 인생을 지우는 것보다 내가 죽고 아기가 사는 게 낫다'는 말을 남겼다"며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산모는 우려했던 대로 결국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산모의 강한 모성애와 의지를 눈앞에서 본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위기의 산부인과, "분만 가능 병원 없다는 건 아이 낳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공포"

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러나 산부인과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에 수요가 줄면서 역사상 최악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특성상 다른 과와 비교해 의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큰 탓에 산부인과 의사는 눈에 띄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의사 자체도 줄고 있지만, 지원하는 사람들도 절반 정도는 분만은 하지 않고 불임이나 부인과만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일 것이다. 평생 아기를 받으면서 산모 돌보는데 뼈를 묻겠다며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사명감으로 지원했다 하더라도 의료 환경을 보는 순간 좌절하고 분만을 포기한다. 부산에 남아 있는 분만병원을 보면 선생님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젊은 의사가 없다"며 "남은 분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거다. 분만하고 싶어도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없는 상황이 곧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부산지역에서 올해 기준 분만이 가능한 병원은 27곳밖에 남지 않았다. 10년 전인 2013년 44곳에서 40%가 줄었다. 현재 중구와 영도구, 남구, 사상구는 산모가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이 원장은 "인근 경남지역은 분만실 자체가 거의 없어 거제도에서 우리 병원까지 오는 산모도 있다.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분만실이 없으면 불안해서 아기를 가질 수 있겠냐"며 "이는 곧 여러 지역에서 닥쳐올 상황인데,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간절히 아이 기다리는 젊은 부부 있어" 난임 부부 지원 늘어야

이재준 원장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부산 미래여성병원 제공

이 원장은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라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되는 부부들 모습도 동시에 본다고 전한다.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면서 난임 부부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 집계를 보면, 부산에서 난임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7년 1만 4252명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1년에는 1만 5916명에 달하고 있다. 부산지역 출생아 수가 크게 줄고 있는 가운데서도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가정은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시의 난임부부 시술비를 지원받는 가구 수 역시 연간 4천 명에서 5천 명대로 늘고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전체 시술 가정의 1/3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는게 현실이다. 난임 시술비 지원 규모도 1회당 20만원~최대 110만원에 그쳐 실질적인 비용 보전에는 한계가 있다. 부부 합산소득이 정부의 기준 중위소득의 180%를 넘기면 지원받을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난임 부부에게 의료비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는 출산 이후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난임 부부처럼 아이를 정말로 낳고자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저출생 문제를 풀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병원을 찾는 난임 부부의 가장 큰 고충은 '비용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젊은 부부 중 아이를 정말 낳고 싶지만, 난임 치료가 1~3년씩 걸리고 서너 번은 시도해야 하다 보니 비용적인 면에서 부담을 느끼는 사례를 많이 본다. 하지만 지원 정책은 일회성에 그치는 수준"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어 "시술이 실패할 때 정신적 고통도 큰 만큼 난임 부부들이 비용 부담이라도 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려운 시대에도 아이를 낳고자 마음 먹은 부부조차도 좌절하게 만들면 안 된다.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제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국가 소멸 막으려면…"각자 자리에서 이권 내려놓아야"

해당 병원에서 주최하는 '홈커밍데이' 행사를 맞아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시 병원을 찾은 모습. 부산 미래여성병원 제공

이 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동시에 세 남매의 아빠기도 하다. 아무리 산부인과 의사라도 본인 자녀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원장은 자녀 셋을 직접 받았다. 그만큼 자녀를 통해 얻은 행복과 교훈이 남다르다.
 
이 원장은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생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것이 달리 보이고, 인식 구조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걸 경험했다"며 "작은 생명이 태어나 점점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행복들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을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으면 좋은 거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통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소한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분위기나 환경을 갖춰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지금 출산 장려를 위해 뛰는 정치권과 지자체, 사회단체, 의료계 등이 각자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대의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나서야 '국가 소멸'을 막을 수 있다"며 "그렇게 '희망의 씨앗'을 제대로 뿌린 뒤, 아이 낳고 기르는 분위기가 싹 트기 시작하면 분만율도 조금씩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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