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솔비에서 무대 밖 화가 권지안으로 '이중생활'을 해온지 12년차. 2010년 상처받고 힘들었던 '솔비'는 자신을 위해 치유미술을 접하고 엔터테이너의 재능 덕분이었는지 겸업 화가로 뛰어들었다. 화가 권지안의 작품은 솔비와 다른 방식으로 미술계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생채기를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책을 통해서는 대중에게 가려진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가수 겸 화가 권지안(솔비)이 18일 자신의 개인전 '무아멤무'(Moi-MÊME)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나 10년 만에 두 번째 출간한 에세이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와 개인전시회 개최 소식을 전하며 속내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권지안은 그림과 책을 통해 솔비와 권지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수 솔비는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공격받았다. 대중에게는 동일한 인물이지만 화구를 든 권지안은 달랐다. 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화가로 변신한 이후 '사과는 그릴 줄 아니?'라는 꼬리표와 '케이크 표절 논란'이 가수 '솔비'를 괴롭혔다. 권지안은 '저스트 어 케이크' 시리즈와 사과 오브제를 활용한 풍자 작품으로 자신이 흔한 법적 소송이 아닌 작품으로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꺼이 보여줬다.
가수 '솔비'와 화가 '권지안'을 굳이 분리하려는 일부 안티들의 인지부조화식 공략은 성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권지안은 '솔비'가 좋은 기억들로 상처를 채워가며 자신을 치유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작품에 대한 영감을 독립운동가들에게서 찾는다는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예전에는 환경이 좋은 유명한 미술관, 좋은 공연장을 찾았지만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시간이 지나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먼 훗날에도 내 그림을 찾아주고 기억해 줄 수 있을 1만큼 예술에 미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군처럼 시련과 고초를 겪고, 열악한 환경에 놓였지만 그 한계를 깨부수고 굳건하게 나아가는 그 진정성이 함께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나를 사랑한 이후, 다른 이를 사랑할 준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치유해가는 과정에 있다며, "추락해 있던 자존감을 높이고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권지안은 "치유는 매 순간의 과정일 뿐 완치됐다는 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정답은 늘 자신에게 있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점점 단단해졌다"고 했다.
'끌림'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그는 그 말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며 "선택의 힘을 믿고 밀고나아가는게 중요한데, 자신이 끌리는 것을 선택할 때 그 결과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처받은 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데, 단단해지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했다.
최근 두 편의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그는 "내 안의 설렘과 사랑도 궁금하고, 나에게 내재되어 있던 파격적인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는 중"이라며 "그동안 내 자신을 사랑하는 데, 창작의 세계를 사랑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에너지와 사랑을 상대를 위해 표현해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미 이타적 삶에 들어선 그다. 우연히 접한 실종아동을 찾는 현수막을 보고 2016년 '파인드 프로젝트'를 통해 음원을 내고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벌였고 청각·언어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2014년부터 세월호를 추모하는 그림도 그려왔다. 아프리카 학교 짓기에 기부하고 최근에는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권지안은 "이들에게 내가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며 "이들도 제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나도 온기를 가진 사람이 될 테고, 그림을 계속 그리는 힘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다른 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사랑꾼'이 될 준비도 된 것 같다고 귀띰했다.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 이후 10년 만에 새로 펴낸 에세이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 역시 상처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생의 다음 챕터를 성실히 넘기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권지안은 "치유미술을 접하며 미술이 주는 긍정의 힘을 알게 됐다"며 "미술이 주는 다양한 관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이 나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여전히 나라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한 권지안은 "상처는 '나쁜 기억'이라고 정의한다. 그 기억을 지울순 없지만 그 위를 덮을순 있다. 좋은 기억으로 상처를 덮고 그 위를 긍정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게 그림을 그린다"고 강조했다.
그의 2017년작 '하이퍼리즘-레드'에서 자신을 내포한 여성의 상처 '레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고 검고 흰 색으로 덧칠해진 암울한 그림이지만 자신의 아팠던 기억을 추억하듯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그의 그림은 피어나는 꽃과 강렬한 원색, 밝은 기운이 화폭을 가득 채운다. 뻗어가는 긍정의 힘은 화려한 꽃밭에서 피어나고 사랑하는 힘은 따뜻한 빛으로 내리쬔다.
그림이 새 주인을 찾아 갈 때마다 작품을 놓고 받게 될 이를 위해 늘 기도한다는 그는 "이전의 그림이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그림은 다른 이를 치유하고 긍정적인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열망이 담겼다"고 말했다.
우연인지 그의 기도의 에너지가 전달된 때문인지 그림을 사간 고객들에게서 기쁜 소식이 종종 전해져 온다며 활짝 웃었다.
매일 새로운 상상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는 그는 올해도 바쁘다. 하반기 두 번째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고, 자신의 첫 소설집도 출간할 계획이다. 메타버스를 주제로 한 새로운 형식의 음반도 예고했다.
치유에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로 한결 단단해진 예술가 권지안의 보듬는 말이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나(자신)라는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더 멋지게 그려나갔으면 합니다. 저 역시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기록들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