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크랩 사 와" 새신랑 죽음으로 내몬 농협 가해자들 '셀프 징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던 故 이용문(33)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남긴 SNS메시지. 유가족 제공

"킹크랩을 사 오라"는 상사의 지시에 전북 장수농협에서 일하던 故 이용문 씨는 장수에서 노량진까지 올라가 27만 원어치의 킹크랩을 사 오기도 했다.

신혼 3개월 차 새신랑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으며, 괴롭힘 가해자 4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노동부는 장수농협에 징계를 요구했는데, 장수농협은 현재 가해자들이 인사권자와 간부로 버젓이 일하고 있다. 또 사건 당시 조합장이었던 김용준 장수농협 조합장이 4선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을 일삼은 이들이 스스로를 징계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노동부, 장수농협 상임이사 등 간부 4명 가해자로 판단

19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에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으로 장수농협 소속 이모 상임이사,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 정모 과장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판단하고 장수농협 측에 징계를 요구했다. 다만, 김 조합장은 제외됐다.
 
노동부에 따르면 권 센터장 등은 故 이용문 씨에게 면박을 주는 발언을 일삼았다. "킹크랩을 사 오라"고 요구한 일도 있었다. 이에 이씨는 서울 노량진까지 올라가 킹크랩 27만 원어치를 사 왔다. 참다못한 이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이씨의 자리는 외진 사무실로 옮겨졌으며, 어떠한 업무도 맡지 못했다.
 
이씨는 결국 지난 1월 12일 자신이 일하던 장수농협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신혼 3개월 차였다. 초‧중‧고 전라북도 대표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고,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가 된, 매사에 성실했던 한 청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전북의 장수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이용문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전북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대한 기자

'마지막 도움 묵살한 그곳'…가해자 안방서 징계 수위 결정

가해자들의 징계 수위는 그들이 일하는 장수농협의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징계를 위한 지역 농협의 인사위원회는 일반적으로 조합장,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4인, 4급 이상의 직원 3인 등 총 9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사건 당시 조합장이었던 김용준 조합장은 최근 전국 조합장 선거에서 4선의 쾌거를 이뤘다. 또 노동부가 가해자로 판단한 이 상임이사 등 간부 4명은 모두 현업 중이다.

이씨는 사측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기도 했다. 장수농협은 2022년 12월 5일 장수농협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정식조사결과 심의위원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위원장으로 김 조합장이, 참석 위원으로는 이 상임이사와 정모 노조위원 등 7명이 참석했다.
 
심의위는 '혐의없음'으로 이씨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무마했다. 권 센터장과 친분이 있는 권모 노무사의 '혐의없음' 판단이 주요했다. 결혼을 앞둔 2022년 9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이씨가 용기를 내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농협은 그를 외면했다.
 
결국 "도와달라"는 이씨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곳에서 가해자들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게 됐다. 괴롭힘 가해자로 판명된 상임이사와 괴롭힘을 묵인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합장이 버티고 있는 와중에 인사위의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수농업협동조합 김용준 조합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농협 "중앙회서 징계 수위 결정해 통보"

농협중앙회 전북본부는 징계 수위를 결정해서 장수농협 측에 통보할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 조합감사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에 합당한 징계 기준을 결정해 장수농협에 통보할 것"이라며 "(장수농협이) 통보받은 징계 수위 이하로 징계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임이사는 인사위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김 조합장은 인사위에 참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농협중앙회에 장수농협 인사위의 관리·감독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인사위에서 공정하고 합당한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감독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사위 구성은 농협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김 조합장에 대해선) 아직 수사 중인 사안으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이씨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따른 조사 결과가 담긴 회의록 등.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김대한 기자

합당한 징계?…농협 직장 내 괴롭힘 징계는 고작 견책·정직

한 청년이 지역 농협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그 직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무소속 윤미향 국회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7명으로 모두 경징계인 견책과 중징계인 정직에 그쳤다.
 
결국 농협중앙회가 "가해자에게 '중징계'를 내리라"고 장수농협 측에 통보하더라도 정직의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앞서,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장수농협에 과태료 8백만 원을 부과했으며, 신고자에게 인사상 불리한 처우를 한 이를 형사입건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청년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해 사측이 편향적으로 조사해 사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노동 현장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농협․수협에 대한 기획·감독도 엄정히 실시하고 결과를 국민에게 상세하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족의 고발장을 접수받은 전북경찰청은 김 조합장 등 4명을 강요와 협박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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