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지율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김기현호(號) 출범 이후 컨벤션 효과는커녕 거꾸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상황이다. 주69시간제 논란, 대일 외교, 미국 도청 사태 등 외부 요인이 일부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내에서 불거진 지도부 설화와 전광훈 리스크가 핵심 원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홍준표 대구시장 해촉 등 '선후가 뒤바뀐 징계'와 같이 지도부의 엉뚱한 대응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광훈은 우리 당 사람이 아니다"라며 소극적 대처에 그칠 게 아니라,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등 적극적인 '전광훈 쳐내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는 원내대표 선출, 조직 정비 등의 핑계가 통했지만 이제는 진짜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전주보다 3.1%p 떨어진 33.9%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은 2.9%p 오른 48.8%로 집계됐다. 양당 간 지지율 격차는 지난주 8.9%p에서 14.9%p로 크게 벌어졌다.
이번 여당 지지율은 윤 정부 출범 이후 최저 수준(지난해 11월 셋째주 33.8%)으로 기록됐다. 전당대회가 열렸던 지난달 첫째주(44.3%)와 비교하면 10%p 넘게 빠진 셈이다. 전당대회 이후 컨벤션 효과를 통해 지지율이 상승하는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이번엔 거꾸로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새로 출범한 지도부에 대한 평가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으로선 무엇보다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TK(대구·경북)의 지지율 이탈이 뼈아픈 상황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TK 지지율은 48.4%로 전주(54.6%)보다 6.2%p 빠졌다. TK 지역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것 역시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민주당의 TK 지지율은 39.6%로 전주에 비해 9.2%p 상승했다.
게다가 최근 2021년 전당대회에서 수천만원 규모의 불법 정치자금이 오갔다는 이른바 '돈봉투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주당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은 비교우위 기회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지율 부진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당 내부에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당 안팎에선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이 지지율 저조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도부 설화나 전광훈 리스크 같은 악재가 터졌을 때 초기에 이를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질질 끌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나름 조치를 취했지만, 홍준표 시장을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는 등 칼을 엉뚱한 방향으로 휘둘렀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당을 뒤흔들고 있는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 전광훈씨가 국민의힘과 '결별'을 선언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한 것은 오히려 김 대표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홍 시장의 언급대로 "손절해야 할 사람에게 먼저 손절당하는 치욕"을 겪지 않고, 선제적으로 당 차원에서 전씨를 내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전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국민의힘"이라며 "국민의힘이 비록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 공산화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은 높게 평가돼야하며 대안이 없는 존재라는 것도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전날까지 국민의힘과 '결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루 만에 이를 보류한다고도 밝혔다.
그 대가로 전씨는 국민의힘에 공천권 폐지와 당원 중심의 후보 경선 등을 요구했다. 그는 "이것을 수용하면 새로운 정당 창당을 잠시 보류하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북한에 내줄 수 없으므로 반드시 광화문을 중심으로 자유 우파,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연대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당신들의 버릇을 고쳐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국민 국민의힘 가입 운동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전광훈 목사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선동하고 있다. 이는 반공주의, 국민 조직화 등 어떤 가치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내년 총선 공천에 관여하겠다는 시커먼 속내에 불과하다"며 "우리 당원도 아닌 사람이 당의 공천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작태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 지지를 이끌 수 있는 인물들을 당헌·당규에 따라 공정하게 공천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 전광훈 목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1도 없다. 국민의힘은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 절연을 여러 차례 명시한 바 있다. 전광훈 목사가 제아무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당을 흔들려 해도 국민의힘은 끄떡없다"고 강조했다.
앞선 "전광훈은 우리 당 사람이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무대응'으로 나섰던 것에 비해 대응 수위가 높아진 셈이다. 다만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행동으로 전씨 세력을 끊어내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전씨를 당 핵심으로 끌고 들어온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나, '전광훈 추천'으로 입당한 당원들을 전수 조사해 탈당시키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아스팔트 보수'라 불리는 강성 보수층에서 전씨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실제 결별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너알아TV'의 구독자가 46만명을 넘어섰고, 대표를 맡고 있는 자유통일당 당원 숫자도 약 15만명(2021년 기준)에 육박한다. 전씨가 광화문 현장에 동원하는 인원도 수만명에 이른다. 강성 보수층 전체로 넓혀봐도 전씨 만큼 조직력과 자금력, 영향력 등을 가진 이는 드물다. 지금껏 보수 정치인들이 전씨와 헤어지지 못한 이유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황정근 신임 중앙당 윤리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신임 윤리위원장을 중심으로 조만간 새 윤리위가 꾸려져 당 기강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징계 1호 사안으로 김재원 최고위원이 오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수여식에서 김 대표는 "외연을 확대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는 등 '외연 확장'을 주문하기도 했다. 예정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일정을 순연하고 4·19 혁명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최근 세월호 참사 추모식 참석 등 '중도층 확장'을 통해 지지율 급락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여론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0%p다. 조사는 무선 97%·유선 3%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3.0%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