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대중 외교…파티는 끝났다?[베이징 노트]

14일 시진핑 주석과 만난 룰라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룰라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상하이에 위치한 '신개발은행(NDB)' 본부를 찾았다. NDB는 중국 주도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이 모여 설립한 국제금융기구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중심의 금융질서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룰라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는 매일 밤 왜 모든 나라가 그들의 무역 결제를 달러에 기초해야 하는지 자문한다. 달러가 세계무역을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며 미국에 견제구를 날렸다.

그는 같은날 화웨이 연구개발(R&D)센터도 방문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강한 제재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중국 기업이다.

중국을 떠나는 마지막날에도 룰라 대통령은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취재진에게 "미국은 전쟁을 부추기기를 그만두고 평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위안화에 힘을 실어주고, 미국의 중국기업 제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등 중국 관영매체에서나 할 만한 이야기를 남의 나라 대통령이 모두 해준 셈이다. 이정도면 중국에게는 종합 선물세트나 다름없다.


미국 눈치보기 보다 경제협력 택한 정상들

시진핑과 마크롱. 연합뉴스

룰라 대통령 보다 한주 전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베이징에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관련해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럽은 대만을 둘러싼 위기를 확대하는 데 관심이 없으며 미·중 쌍방으로부터 독립적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중국을 떠난 뒤 귀국길 기내 인터뷰에서 "초강대국 사이에서 긴장이 과열되면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시간이나 자원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결국 속국이 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역설해 미국의 심기를 건드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친중 행보를 놓고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원, 그리고 대만에 대한 위협 등 미국을 비롯한 민주진영을 위협하는 중국의 행위를 눈감고 있다는게 주요 이유다.

다만, 두 사람은 이같은 비판 보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사람이 기업인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대동한 것은 이번 방중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문지도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와 개혁개방 1번지 광동성 등이다.

결국 대규모 공급계약 체결, 중국 시장 개방 등의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챙긴 두 정상은 '친중 행보'라는 꼬리표가 붙든 말든 중국이 듣고싶어 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화답했다.


한-중 정부 고위직 인적교류 사실상 전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 외교부 제공

이렇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악명높았던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고 위드코로나로의 전환한 이후 본격적으로 안방외교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갈수록 강화되는 미국의 대중 고립전선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중국의 안방외교에 '한국'이라는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실종'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듯 하다.

위드코로나 전환 전인 지난해 8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박진 외교부장관이 중국을 찾은 이후 각 부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의 중국 방문은 전무한 상태다.

지난해까지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양국간 왕래가 없었던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정부 고위직 인사간 인적교류가 전혀 없었던 점은 납득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위드코로나로 전환한 직후 우리 정부가 중국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이는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한국에서 전체 수출 비중이 20%가 넘는 중국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최악의 대중 무역적자에도…'괜찮다' 말만

연합뉴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46억 2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지난해 3월부터 1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는데, 이 가운데 대중 무역적자가 27억 7천만 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60%를 차지했다.

특히, 이대로라면 대중 무역수지는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쯤되면 경제부처 실무자는 물론이고 경제부처 수장이 직접 중국 현장을 찾아 10개월 연속 내리막 길을 걷는 대중 수출 부진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중국은 커녕 미국을 찾아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우리 경제에 천천히 반영될 것이라느니, 대규모 무역적자는 없을 것이라느니, '인디언 기우제'식 발언을 쏟아냈다.

반면, 중국에 대한 고립전선을 펴고 있는 미국조차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 주석과 전화통화를 원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의 방중을 논의하고 있다.

하다못해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도 3년 4개월여 만에 하야시 외무상을 보내 중국 2인자 리창 총리, 그리고 친강 외교부장(장관)과 회담을 하는 등 교류에 나섰을 정도다.

우리 외교부를 비롯해 정부 부처 고위인사의 인적교류 논의가 현재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주요국 정상들까지 속속 중국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두나라 정부간 교류가 한발 뒤쳐졌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과 밀착위해 중국 이대로 방치하나?

출국하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굴종 외교', '혼밥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던 전임 정부의 외교노선과 차별화를 내세우면서 우리 외교의 축이 미국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밀착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처럼 '소 닭 쳐다보듯' 내팽개쳐놔도 될 만큼 중국이 만만한 나라는 아니다. 프랑스나 브라질 대통령이 미국이 중요한 우방인줄 몰라서 미국이 싫어할지 뻔히 알면서도 중국에 구애작전을 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지난해 8월 취임하자마자 중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운운하며 '파티는 끝났다'고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힘든 기업인들에게 격려는 커녕 불안감만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신중한 투자를 주문하다 나온 말실수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8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당시 그의 발언이 현 정부의 '대중 외교' 기조와 너무나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말실수로 치부할 발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40년지기 친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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