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은 2022-2023시즌을 마친 뒤 흥국생명에서 FA 자격이 주어지는 6시즌을 채웠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일본, 튀르키예, 중국 등 해외에서 보낸 그는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FA로 풀렸다.
시즌 중 은퇴 고민을 드러냈지만 팬들의 성원과 본인의 우승에 대한 염원을 저버릴 수 없었다. 김연경은 최근 시상식에서 현역 연장을 공식화했다. "통합 우승을 이룰 수 있는 팀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밝히며 FA 시장으로 나왔다.
이에 김연경의 차기 행선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올 시즌 흥국생명은 정규 리그 1위에 올랐지만 챔피언 결정전 트로피를 놓쳐 통합 우승에 실패했다. 김연경이 직접 이적 가능성을 시사해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동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김연경을 올 시즌 건재를 과시했다. 정규 리그에서 득점 5위(669점)와 공격 종합 1위(45.76%)로 활약, 베스트7 아웃사이트 히터 부문 수상과 동시에 만장일치로 정규 리그 MVP(최우수 선수)를 거머쥐었다. 이런 김연경을 향한 수많은 러브콜은 당연했다.
올 시즌 정규 리그 2위에 오른 현대건설이 김연경의 유력한 차기 행선지로 떠올랐다. 리그 최고의 미들 블로커 양효진과 2년 연속 베스트7을 수상한 세터 김다인 등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건설은 김연경이 원하는 우승 전력을 갖춘 팀이었다.
현대건설 역시 올 시즌 개막 후 15연승을 달리는 등 상승세를 달렸지만 뒷심 부족으로 아쉽게 트로피를 놓친 만큼 김연경 영입을 통해 우승 염원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번 FA 시장에서 김연경에게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팀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은 계약 후 "생애 처음 맞이하는 FA라 생각이 많았다"면서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결정을 하고 나니까 홀가분하고 다음 시즌이 많이 기대가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번에 아쉽게 놓친 우승컵을 다음 시즌에는 꼭 들어 올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보통 FA는 3년 계약을 맺지만 김연경의 계약 기간은 단 1년이다. 김연경은 시즌 중 은퇴 고민을 드러냈던 만큼 장기 계약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상식에서 그는 FA 계약 기간에 대해 "3년까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매년 연장 여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여러 구단의 제의를 뿌리치고 흥국생명과 동행을 택한 이유로는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의 영향이 컸다. 김연경은 "감독님과 대화에서 많이 흔들렸다. 감독님의 다음 시즌 구상을 듣고 흥국생명의 미래에 기대와 흥미가 생겼다"면서 "또 한 번의 도전을 흥국생명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연경은 아본단자 감독과 인연이 깊다. 2013-2014시즌부터 4시즌 동안 튀르키예 리그 페네르바체에서 두 차례 리그 우승과 준우승, 유럽배구연맹(CEV)컵 우승 등을 함께 일궜다. 아본단자 감독이 2016-2017시즌을 마치고 이탈리아 리그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올 시즌 흥국생명에서 6년 만에 재회했다.
다음 시즌에도 김연경과 함께 하게 된 아본단자 감독은 "김연경은 배구 선수로서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이런 선수와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연경과 김수지는 원곡중과 한일전산여고(한봄고)에서 함께 배구를 하며 성장한 절친한 사이다. 최근 시상식에서는 김연경에게 김수지 등 친분 있는 선수들과 함께 뛸 생각이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김연경은 "같이 뛰어보자고 이야기를 나눈 선수들이 몇몇 있다"고 조심스레 답한 바 있다.
전력 보강을 하는 과정에서 급여 총액을 제한하는 샐러리캡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시즌 여자부 샐러리캡은 28억 원인데 김연경은 이번 FA 계약에서 여자부 보수 상한선인 총액 7억7500만 원을 받았다.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가운데 흥국생명이 어떻게 전력 보강을 해낼지 관심이 쏠린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감독 및 단장 경실 사태로 극심한 내홍을 겼었다. 특히 팀의 상승세를 이끌던 권순찬 전 감독을 부임 8개월 만에 돌연 경질해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과정에서 김연경은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를 감싸기 위해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에 대한 구단의 거짓 해명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김연경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을 터. 이에 흥국생명에 애증을 느꼈을 법 하지만 결국 친정 팀을 향한 애정을 택했다. 다시 한 번 흥국생명을 믿고 우승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전력 보강 등 우승에 대한 흥국생명의 의지에 관심이 쏠린다. 흥국생명은 약속했다. 이날 김연경과 FA 계약을 마친 뒤 "앞으로도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명문 구단으로서 팬들에게 우승컵을 선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