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의 가장 큰 힘은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박해수의 연기력이다. 극중 '메피스토'는 노학자 '파우스트'(유인촌)에게 쾌락을 선사하며 그를 파멸과 타락의 길로 이끄는 악마다. 평범한 얼굴로 접근해 조금씩 '파우스트'의 영혼을 갈아먹으며 흡족해한다.
의기양양한 태도로 대극장 무대를 헤집는 박해수는 정확한 발음·발성과 넘치는 에너지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그런 가운데 박해수가 출연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따온 대사 "식사는 잡쉈어?" 같은 재미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과 3D 이머시브 비디오(Immersive Video)를 활용한 세련된 무대는 이 연극의 또 다른 힘이다. 거대한 숲과 동굴, 성모 마리아상, 탄화 코르크로 표현한 흙 등으로 채워진 무대를 타원형의 LED 패널이 둘러싸고 있다. LED 화면은 파우스트 서재, 아우어바흐 술집, 마녀의 부엌, 숲과 동굴 등 26번에 걸쳐 전환된다.
'파우스트' 역 유인촌의 노련미, '젊은 파우스트' 역 박은석의 패기, 연극 데뷔 무대인 '그레첸' 역 원진아의 섬세함이 어우러져 밀도 높은 극이 완성됐다.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주연배우 못잖은 존재감을 보여준 극단 '여행자' 배우들의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연출은 '페리 귄트' '페리클레스' '한여름밤의 꿈' 등 고전을 무대화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양정웅이 맡았다. 이번 작품은 '파우스트' 비극 1부인만큼 2부, 3부도 기대해 볼 만하다. 유인촌의 아들이자 연극배우인 남윤호가 양 연출과 공동 각색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메피스토'의 생각과 말은 우리 내면과 닮아 있다. 고전이 계속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관객이 대사를 곱씹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