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치권 돈봉투 살포. 구시대의 유물이 된 줄 알았는데 또 벌어졌습니다. 중심에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있는데요. 사업가 박우식씨에게서 9억4천만원을 받은 알선수재 혐의, 또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3억3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작년 10월 구속기소 됐습니다. 1심 결과가 나왔는데 재판부가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어요.
주목할 점은 이 선고형이 당초 검찰이 얼마큼 선고해주세요 라고 요청했던 구형보다 세게 나왔다는 겁니다. 검찰은 징역 3년을 요청했는데 법원은 4년6개월을 선고했으니까. 오히려 1년 6개월이나 늘린 거죠.
통상 검찰이 엄중한 혐의니 세게 처벌해 달라 지르고 법원은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 적정한 양형을 하는데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지 속사정 알아봅니다. 어게인 WHY뉴스 권영철 대기자 어서오십쇼.
[기자]
안녕하십니까?
[앵커]
상당히 액수가 큽니다. 만약 이정근 부총장이 공무원이어서 뇌물죄에 걸렸으면 양형기준상 징역 10년쯤은 나올 수 있는 액수거든요. 물론 알선수재는 최대형량이 징역 5년인데, 그걸 고려해도 검찰이 3년을 구형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기자]
먼저 검찰의 공식입장은 "적정 구형기준에 맞춰 구형했다.", "사실상 정치자금법과 알선수재 범행이 상상적경합의 범행으로 판단될수 있다는 걸 고려해서 구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상적 경합은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형법 제40조))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혐의가 각종 알선의 대가 9억4천만원 불법 정치자금 3억3천만원 합하면 12억7천만원이지만 검찰은 기소할 때 총 수수금액을 10억원으로 봤습니다. 알선의 대가로 받은 돈과 선거자금으로 받은 돈이 명목은 다르지만 같은 돈이라는 의미입니다.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같은 돈이니까 상상적경합이 돼서 하나의 범죄만 처벌하는 걸 감안해서 징역3년을 구형했는데 재판부가 분리해서 더 엄중하게 선고를 했다는 겁니다.
[앵커]
법원이 선고할 때 그런 고려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원래 검찰도 구형할 때 그렇게 반영을 하나요?
[기자]
검찰은 혐의가 발견되면 수사하고 기소해서 유죄를 입증해야 하고, 그 혐의에 맞는 처벌을 받도록 구형합니다. 피의자 입장을 고려해서 구형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죠. 재판부가 밝힌 범죄일람표를 보면 32가지 혐의이고 그 중 28가지 혐의는 유죄, 4가지혐의만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앵커]
액수도 크고 대부분 혐의 대부분이 소명이 됐다는 건데. 그럼 검찰이 구형에서 사실상 '봐줬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까요?
[기자]
매우 이례적인 구형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은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각각 무겁게 본다면) 최소 5년 이상, 심하면 10년 까지도 구형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플리바게닝' 사전형량조정제도(事前刑量調停制度)라고도 합니다만, 합법적인데,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흐름을 보면 이정근 전 부총장이 검찰수사에 매우 협조적이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요?
[기자]
첫 번째는 이정근 전 부총장이 자신의 사건 수사와는 별개로 검사실에 자주 다녔다는 겁니다.
[앵커]
자기사건 수사와 별개로? 확인이 된 사실인가요?
[기자]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몇회 출정했다' 이렇게 확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정근 전 부총장의 주변이나 변호인 등에게 확인해보니 여러 차례 검사실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심지어 검사실에 간다는 사실을 변호인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변호인이 물어보면 검찰청에 다녀왔다는 얘길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앵커]
무슨 조사를 받으러 간 건가요?
[기자]
자신의 추가 혐의에 대한 조사였다면 변호인을 배석시켰을 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검찰이 그냥 불러서 면담이나 잡담을 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이런 식의 조사가 많았지만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 문제가 되면서 통제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 다시 그 비슷한 수사가 이뤄졌다는 얘깁니다.
[앵커]
얼마나 자주 출정을 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 할 수 없나요?
[기자]
자주, 여러차례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몇회인지 확인은 어려웠습니다.
교정당국에서는 국회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 공식 요구하면 절차를 밟아서 낼 수는 있다는 입장이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 법무부에서는 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김남국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법무부에 구속된 수감자들의 검사실 출정회수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일체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관련해서 공여자로 수사를 받던 한만호씨(고인이 된)가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 검찰에 73번이나 불려갔지만, 법원에 제출할 만한 진술조서는 5회 분량뿐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돼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당사자가 출정한 횟수를 공개했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앵커]
수감생활을 하는 피고인 신분이잖아요. 검사실에 가면 뭘 하나요?
[기자]
감방생활이라는 게 하루가 길겠죠? 오전에 가족 접견을 하고 오후에 변호인 접견을 하더라도 하루가 길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혐의 조사와 관련된 거라면 검사실에 가는 게 싫겠지만 서울구치소의 경우 건물이 낡아 겨울에는 춥고, 식사도 별로겠지만 검사실에 가면 춥지 않을 거고 시간도 출정 왔다갔다 하는 시간까지 잘 갈거고, 식사도 좀 낫지 않겠습니까? 일종의 '슬기로운 감방생활' 이라고나 할까요?
두 번째는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하면서 별건수사의 길을 터줬다는 겁니다.
[앵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기자]
이정근 전 부총장의 녹음파일이 3만개나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실명이 거론되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20명 안팎이고 많게는 40명까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이 수사는 별건입니다. 이정근 전 부총장 사건은 사업가 박우식씨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브로커라고도 합니다만, 박씨와 두 사람 간 다툼이 발단이었습니다. 박씨는 2008년 터진 '부산자원 특혜 대출 사건' 등 두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습니다. 노웅래 의원에게 6천만원을 건넨 당사자이요.
이정근 박우식 두사람이 가까워 진건 박씨가 두 번째 구속됐다가 풀려난 2019년 하반기 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부터 민형사상 갈등이 시작됐고 7월에는 박우식씨가 이정근 부총장을 검찰에 진정하면서 사건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겁니다.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민주당 당대표 경선의 돈봉투 사건도 지금까지는 박우식씨는와 관련이 없는 별건입니다. 이미 불구속기소한 노웅래 의원 사건도 박우식씨만 관련된 별건이구요.
[앵커]
그런데 '이 전 부총장이 별건수사의 길을 터줬다' 라고 하기에는 수사 받는 피의자 입장에서 휴대전화 임의제출에 응하지 않는 것도 어렵지 않나요?
[기자]
물론 그렇습니다. 이정근 변호인도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임의제출하지 않으면 낼 때까지 탈탈터니까 도리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특수통 출신의 중견 법조인은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녹취록 건건이 별도의 영장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별건 수사의 경우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하기도 하구요.
세 번째는 이정근 전 부총장이 기댈곳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앵커]
기댈 곳이 없었다는 건 당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얘긴가요?
[기자]
그렇다고 합니다. 이정근 전 부총장은 사건초기 민주당이 손절한데 대해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이상 빚진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검찰에 기대게 됐을 것이고, 검사실에서 부르니까 자주 들어갔다는 거죠, 재판이 매주 열리니까 변호인이 접견을 하려고 했는데 검사실에 가 있어서 접견을 못한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검찰과 가까이 지냈다는 얘깁니다.
[앵커]
이례적으로 낮은 구형의 배경에, 이정근 부총장의 여러 상황과 수감자를 이용한 검찰 수사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런 맥락도 따져가며 봐야겠지만 지금 핵심은 2021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돈봉투가 뿌려졌다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의 파장이 일까요?
[기자]
국회의원 20명 이상이 돈봉투를 받았다는 녹취록이 나왔으니 엄청난 사건이죠. 국회의원 20명이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니까요.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건 민주당 윤관석 의원과 이정근 전 부총장의 통화를 뒷받침할 정황이나 근거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정치권에서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 뭐냐는 것 아니겠습니까?
윤관석 의원은 "정치 탄압 그다음에 국면 전환을 위한 무리한 검찰의 기획수사 쇼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성만 의원은 "사실무근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다퉈서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만, 앞으로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할 겁니다.
과거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 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돈봉투가 갔을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검찰이 입증한 건 폭로한 고승덕 의원 1명에 불과했습니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뿌려진 돈이 9400만원이라고 하는데, 2008년 전당대회 직전 박 전 의장이 1억9천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나머지 용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봐준건지 수사를 제대로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국회의원 300만원, 다른 당직자는 50만원으로 나오는데 모두 현금입니다. 계좌추적으로 밝힐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니까 입증이 쉽지는 않을 걸로 봅니다.
[앵커]
그래서 녹취록이 있더라도, 이정근 부총장은 물론이고 윤관석 의원이나 돈봉투를 직접 전달한 걸로 의심받는 관계자들 증언이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겠네요. 권영철 대기자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