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시인' 펜 꺾은 활동지원사의 '성폭력'

'손가락 시인' A씨, 활동지원사 성폭력 피해
괴사된 다리 내팽겨치고, 머리 밟기까지 만행
대법원, 활동지원사에 징역 10년 확정
피해자 동생 "트라우마에 바깥 외출 전혀 못해"

연합뉴스

"검지 하나로 컴퓨터 하는게 오빠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손가락 하나로 울림있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중증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까지 희망을 전했던 50대 남성 1급 뇌병변장애인 A씨.

시인이 꿈이었던 A씨는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마련한 중고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003년 첫 시집을 낸 A씨는 세상과 단절되거나 삶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8년 뒤 한 글자씩 써 내려가 모아진 글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이 됐고 시인으로서 세상에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계기가 됐다.

'손가락 시인'이라는 어렵게 꽃피운 새로운 일상은 자신을 돕기 위해 온 남성 활동지원사로 인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A씨의 끔찍한 일상은 지난 2021년 2월부터 시작됐다. A씨의 활동보조 지원사였던 B(50)씨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A씨를 목욕시키며 성폭력을 시작했다. 완강한 거부 의사에는 폭력이 날아 들었다.

2021년 3월 B씨는 목욕을 마친 A씨를 방으로 옮긴 뒤 재차 추행했고 반항하려는 그에게 또 다시 폭력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괴사된 A씨의 다리를 들어 거세게 내팽개치기도 했다.

갈수록 범행 수위는 높아졌고 A씨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B씨는 피해자의 머리를 발로 차고 깔고 앉기까지 했다.

1급 뇌병변장애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행과 성범죄를 저지른 B씨의 범행은 피해자가 목욕 시간에 맞춰 몰래 자동으로 사진을 찍히게 한 프로그램에 의해 드러났다. B씨에게 추가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 자신을 "아는 사람이 봐주기로 했다"며 계약을 끝낸 뒤에야 증거를 갖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춘천지법. 연합뉴스

"장난이었다" 주장에 피해자 울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습관이 돼 버렸다고 해야 하나…"

수사기관에 출석한 B씨의 진술이다.

조사결과 B씨의 알코올장애선별검사(AUDIT-K) 점수는 19점으로 문제 음주자에 해당됐고 한국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척도(KSORAS)도 9점으로 재범 위험성이 '중간'으로 판단됐다. 정신병질자 선별도구(PCL-R) 점수도 11점으로 '중간' 위험 수준이었다.

장애인 유사 성행위, 장애인 피보호자 간음, 장애인 강제추행,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B씨는 일부 혐의를 부인하면서 "장난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10년간 신상정보공개와 아동·청소년·장애인관련기관 취업 제한, 7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장애인활동지원기관에 소속돼 장애인 활동을 보조하며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보호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미약한 피해자에 대해 유사성행위를 하려 시도하고 강제추행 및 폭행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척 충격이 크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중형 선고에 태도를 바꾼 B씨는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부득이하게 신체접촉이 있었는데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고 피해자에게 큰 상처가 됐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형은 바뀌지 않았다.

상고심까지 간 이 사건을 살핀 대법원은 B씨의 상고 이유와 법리를 검토한 끝에 상고를 기각했지만 피해자의 새 삶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렸다.

A씨의 동생은 "(오빠가)트라우마가 생겨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가해자를 지칭해서 욕을 한다. 바깥 외출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는 횟수가 늘었다. 컴퓨터가 유일한 낙이었고 손가락 하나로 글을 썼는데 지금은 어깨랑 골반 괴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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