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리원전 원자로가 설계수명 만료와 정비 등을 이유로 일제히 가동을 멈추는 진풍경이 연출된 가운데, 수명연장(계속 운전)을 위한 절차는 멈추지 않고 속속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10시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2호기 원자로가 설계수명 종료로 40년 만에 가동을 멈췄다.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2호기는 40년간 전력 199억kWh를 생산했다. 이는 부산시민 전체가 9.3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앞서 고리3호기와 4호기도 지난 3월 계획예방정비에 착수하면서 발전을 중단했다. 계획예방정비는 각종 설비 점검과 검사, 연료 인출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절차로, 통상 2개월가량 진행된다.
이에 따라 일시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고리원전 1~4호기가 모두 가동을 멈추는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1호기는 이미 2017년 영구정지한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렇게 원자로 가동을 동시에 멈춰도 전력 생산이나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고리본부 관계자는 "계획예방정비는 18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하는 절차기 때문에, 사전에 멈출 것을 전제로 전력거래소에서 미리 계산해 수급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가동을 멈추는 건 일시적인 현상이고, 다른 에너지원도 있어 전력 수급에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수원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영구정지하는 건 다른 문제며, 에너지 비용 절감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등을 이유로 수명연장(계속 운전)이 필요하다며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일 가동을 멈춘 고리2호기는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1호기와 같이 그대로 영구정지될 예정이었다. 원전 계속 운전을 위해서는 안전성 심사와 설비 개선 등 관련 절차를 3~4년가량 밟아야 하는데, 한수원은 당시 정책 기조에 따라 관련 절차를 미리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수원은 친 원전 정책을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지난해 4월 '고리2호기 계속 운전 안전성 평가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며 계속 운전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해 초안을 공람한 뒤 주민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졸속 진행이라는 비판이 잇따랐으나, 한수원은 그대로 절차를 마무리한 뒤 지난달 30일 원안위에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남은 절차는 운영변경허가 심사와 설비 개선인데, 한수원은 이르면 2025년 6월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 뒤 고리2호기를 재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한수원은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고리3·4호기 역시 계속 운전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고리 3·4호기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되는 부산 10개 구·군과 울산 5개 구·군, 경남 양산시 등 16개 지자체에서는 13일 계속운전 관련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일제히 시작했다. 이번 공람은 다음 달 23일까지 40일간 진행되며, 같은 달 30일까지 시민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이 같은 한수원의 거침없는 고리 2~4호기 수명연장 추진에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는 거센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고리2호기가 가동을 멈춘 지난 8일 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등은 고리본부 앞에서 '고리2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을 열고, "예정대로 영구정지돼야 할 고리2호기가 윤석열 정부의 핵 진흥정책에 따라 수명연장이 강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수원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요식행위에 불과한 공람과 공청회를 일방적으로 진행해 시민의 안전과 절차의 민주성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고리3·4호기에 대해서도 탈핵부산시민연대는 12일 성명서를 통해 "기존 60일이던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 기간이 엑스포 실사단 방문을 이유로 40일로 축소됐다. 이는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부산·울산·경주 등 동남권에 활성단층이 16곳이나 확인됐고, 설계 고려 단층도 5개나 포함되지만 고리원전은 건설 당시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노후 핵발전소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며 "부산시와 각 기초단체는 고리 3·4호기 평가서 공람에 협조하는 것을 중단하고, 시민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달라"고 촉구했다.